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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혜인 Nov 27. 2018

월세방의 추월차선

당연하지 않은 것의 당연함


상경하여 산 지 어느덧 5년. 이제 내게는 서울에서의 혼생 라이프가 부모님과 같이 사는 삶보다 더 익숙하다. 서울에 집이 없었기에 주기적으로 집을 옮겨 다니는 유목민 생활을 했다.


내 첫 번째 집은 넓고 깔끔하고 예쁜 집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보여준 네다섯 집 중에 가장 눈에 띄었다. 인테리어에 반해 냉큼 계약해버렸다. 70에 70. 보증금 없이 월세 한 달분을 선입금하는 방식이었다. 거기다 관리비 10만 원 별도. 여기에는 아무것도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매달 5만 원 정도 더 내야 했다.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이 계약이 앞으로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방을 덥석 계약한 대가로 한 달 월급의 절반 이상을 싹둑 잘라 건물주에게 갖다 바쳐야 했다. 처음에는 80만 원이던 월세는 다달이 조금씩 올랐다. 날짜가 밀리기도 했고, 전기, 수도를 평소보다 더 많이 쓴 달도 있었다. 결국 여섯  만에 그 집에서 나왔다. 밀리고 밀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비용은 선입금한 금액에서 채웠다. 넓은 평수의, 깨끗한 욕실을 갖춘 예쁜 집이라는 사실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




두 번째 집은 조금 나았다. 평수를 줄이더라도 감당 가능한 월세의 집으로 가자. 그렇게 고르고 고른 5평 남짓의 좁은 방 한 달 월세는 관리비까지 포함해서 40만 원이었다. 게다가 관리비에 포함 항목이 세 가지나 있었다. 추가로 나갈 비용을 생각해봐도 이 이상으로 드는 비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 작다는 건 아늑하다는 거니까 됐어. 몇 개월 살았다고 잔뜩 불어난 짐은 집안 구석구석을 가득 차지했고 좁은 집은 더 좁아졌다. 불편한 건 그뿐이었다.

 

카톡, 카톡.

따르르릉.

위이이잉.


더 큰 문제는 얼마 안 있어 드러났다. 새 집은 가벽을 사이에 둔 반쪽짜리 방이었던 것이다. 옆방 남자와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했다. 제 구실을 못하는 벽은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없앴고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서로의 사생활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옆방 남자는 나와 생활 방식이 꽤나 달랐다. 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옆방 남자는 밤에 조금이라도 시끄러우면 벽을 치거나 고함을 쳐댔다. 나는 매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 같았다.


기본. 그게 뭐길래.


세 번째 집을 구할 때는, 정말 '이 정도면 기본'이다 싶은 기준을 만들었다.


적당한 월세.

그리고, 적당한 방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살리라. 내 생활에 빨간 불을 켜는 액수의 월세집은 당연히 쳐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신중하게 고른 방을 중개인이 보여줬을 때, 가장 먼저 확인했던 게 벽이다. 툭툭 치자 꽉 막힌 둔탁한 소리가 났다. 괜찮다. 씨익. 드디어 찾은 것이다! 기뻐하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

.

으드드. 덜덜덜덜.


돌아온 겨울의 추위는 역대급이었다. 책상 위에 올려둔 물이 꽁꽁 얼었다. 집 밖이 냉장고라면 집 안은 냉동실이었다. 오들오들 떨며 이불을 꽁꽁 싸맸다. 이불 밖으로는 나오지도 못했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다 결국 집 밖으로 쫓겨났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였던 이 집은,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 멀쩡한 집 놔두고 찜질방을 전전하는 유랑민 신세로 그 겨울을 났다.




원룸을 바꿀 때마다 나는, 이번만큼은 기본이 잘 갖춰져 있기를 바랐다. 감당 가능한 월세,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방음, 집을 집처럼 느끼게 해주는 냉난방.... 그 기본의 조건은 집을 옮길 때마다 하나 둘 늘어났다. 그래서일까. 전에는 너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당연한 게 아닐까 봐 겁이 나기 시작했다.

     

“더 좋은 방을 원하시면 금액이 올라가죠.”


기본을 누리는 데에 돈이 더 필요하단다. 그렇게 대단한 걸 원하는 것도 아닌데. 내 한 달 월급으로는 그 금액을 절대로 맞추지 못한다. 누구를 탓하랴. 기본이 잘 갖춰졌다는 건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이상에 가까운. 그래서 기본을 추구하면 부족한 것들이 보였다. 어쩌면 기본적이지 않은, 부족함이 있는 게 평범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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