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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혜인 Feb 09. 2019

어쩌면 행복일 수도 있다

환경에 대한 고찰


 사람마다 고유의 재정 온도계가 있다고 한다. 재정 온도계는 스스로 얼마 정도의 금액이 있으면 살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정해둔 금액의 마지노선이다. 이 생계 유지비의 마지노선은 한번 정해지면 얼마가 오르든 얼마가 내리든 결국 다시 이것과 비슷한 금액에 맞춰 수입을 벌어들이게 된다고 한다.


 처음 이 개념을 들었을 때 가히 충격적이었다. 언제부턴가 내 재정 온도계에 입력된 금액은 지금껏 벌어온 한 달 수입 정도였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그 액수만큼의 돈만 벌었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내 재정 온도계는 그 금액에 맞춰져 버렸다. 그렇게 되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그 정도 선에 고정되어 버렸다.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에 맞게 천천히 변해갔다.


 각종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조건 높게 보고 넓게 생각하라’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의식적으로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현재 내가 처한 환경에 맞춰서만 생각하게 되어버릴 수가 있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든다. 현재의 환경이 어떻든 그 환경에 그냥 맞춰 생각하고 사는 게 나쁘기만 한 걸까.




 대학 시절, 주변 사람들에게서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첫 직장은 좋아야 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첫 직장이 그리 좋지 않더라도 일단 일을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일을 시작하면 내 능력은 점점 좋아질 것이고 그러면 내가 처한 환경도 더 좋게 바꿔나가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 재정 온도계라는 개념을 한 번 듣고 나니 첫 직장은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때 그들이 첫 직장이 좋아야 한다고 말했던 이유는 어쩌면 이 재정 온도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돈을 벌기 전까지는 사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다. 그래서 그때가 재정 온도계에 관한 기준이 가장 자유롭다. 하지만 한 번 돈을 벌기 시작하면 세상을 보는 시각도, 경제 흐름을 보는 시야도, 인심도, 씀씀이도, 돈을 버는 방법도, 직장도, 취미도, 여가 활동도, 내가 버는 수입의 선에 맞춰진다.


 사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불만이 매우 컸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왔는데 왜 이 정도밖에 벌지 못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신기하게도 조금씩 괜찮아졌다. 그건 내 수입에 맞춰 생각하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조금씩 ‘나름 살 만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쁜 게 아니다. 어찌 보면 그런 식의 생각 변화가 현실 만족으로 가는 시작점일 수도 있다.


 현재의 환경에 불만이 없다는 것. 어쩌면 행복일 수도 있다. 행복이 내가 처한 환경에 맞춰 생각하고 즐기는 개념이라면 더 가져야 한다는 마음을 근간으로 하는 자기 계발서의 지향점은 어쩌면 행복보다는 쟁취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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