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 그 한 끗 차이

흘러간 세월을 느낄 때 난,

by 류혜인


정말 친한 친구가 결혼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0대 초반에 친했던 친구고 지금은 일상을 거의 공유하지 않는 친구다. 하지만 지난 8년간 우리는 크고 작은 대소사를 함께 해왔다. 서로의 중대사에 대해선 알고 있었고 일 년에 한 번씩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계속해서 친분을 쌓아왔었다. 그렇다. 친함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개념인지라, 이 정도면 친하다는 범주에 속하긴 할 것이다. 비록 내 체감적인 친밀도는 예전만 못하지만. 어쨌든.


결혼식을 위해 도쿄까지 날아갔다. 정말 신기한 결혼식이었다.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려서 한 건 결혼식이 아닌 결혼 파티였다. 나도 나중에 결혼하게 된다면 양이 아닌 질적으로 정말 소중한 사람들만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을 통해 본 친구의 삶은 내가 살아온 삶과 너무나 달랐다. 24살에 영어 선생이라는 꿈을 이룬 친구의 삶에는 취업 준비생의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이 결혼한 건 처음 있는 일인지라 기분이 아리송했다. 이제 우리가 결혼 연령대에 들어온 건가 싶었다. 스무 살은 너무 먼 과거가 되어버렸다. 나는 전혀 변한 게 없는데 나를 둘러싼 환경은 이다지도 변해 있구나.


도쿄에서조차 너무너무 바빴다. 당장 이틀 뒤에 기획안 발표를 해야 했다. 그건 또 팀 미션이었기 때문에 나는 팀원들이 만든 기획안에 계속해서 피드백해야 했다. 우리 팀원은 둘 다 능력자들이었다. 필기 합격자는 필기 합격자의 포스가 있었다. 그 포스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알 거 같았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도중 온라인 스터디를 함께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서 공부를 잘하고 있느냐는 카톡이 왔다. 그 친구는 자기가 만든 자료까지 내게 보내주었다. 이렇게 조력자가 많으니 언젠가 꼭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이 숨 막히게 지나가고 드디어 맞이한 화요일. 오랜만에 집안 대청소를 하고 진짜 오래간만에 쾌적한 사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이유 없이 힘들었다. 계속 웹툰 보면서 누워 있다가 방 청소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날도 너무 더운데 집안 에어컨은 또 제대로 작동도 안 한다. 관리인은 또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이런 기본적인 건 제대로 관리해주지도 않았다. 관리비는 그렇게 받으면서. 빨리 이사 해야겠다.


진짜 뭔가를 준비하는 것을 안 하면 이렇게 인생이 편하고 좋은데. 이제는 준비하는 것도 지치고 나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지친다. 이제야 지친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지만 항상 나이 압박을 받는다. 과거를 보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순간 중 지금이 가장 늙은 순간이기 때문에.


하지만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지금이 가장 젊은 순간이다. 그러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베일에 가린 미래를 보는 것보다 화석이 되어버린 과거를 보는 게 더 편하다. 불행은 비교에서 오는 것. 과거도, 미래도, 어느 시점과도 비교하지 않는 현재를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회사 업무는 이제 내 손바닥 안에 있다. 너무나 바쁜 2분기 정산 시기를 지나면서 나는 모든 회사 업무를 내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진짜 멍청하다. 왜 진작 이러지 않았을까. 돈 이체도, 세금계산서 발행도, 입금 확인도 모두 휴대폰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마치 이 회사가 내 회사 같다.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일이 밀려서 욕 들을 일은 없을 거라는 것. 컴퓨터보다 휴대폰으로 일하면 더 빠르니까. 나를 믿어주는 대표님이 고마웠다. 비록 피곤할 때면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는 게 상사이지만, 지금 누리는 자유만으로도 대표님이 무척 고마운 건 사실이니까.


어쩌면 말이다. 미래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품지 않는 게 더 현실에 충실할 방법일지도 모른다. 변화를 꿈꾸고 싶지 않다. 변화의 순간은 지금껏 내가 쌓아온 시스템을 무너트려야 만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있다. 어떤 빛을 보면서 달려가 낯선 어둠을 만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안정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지만,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꿈을 버린다면 좀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행복은 쟁취하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욕망하는 것을 버릴 때 내 앞에 잠깐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 아이러니함.


그렇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변해도 변하지 않았던 꿈을 버릴 수가 없다. 나는 언제쯤 내가 원하는 모습에 도달할 수 있을까. 꿈을 버리고 행복한 것과 꿈을 취하고 불행한 것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꿈을 취하고 불행한 것을 택한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 배팅을 건다. 사주를 통해서라도 미래를 짐작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사주 앱으로 미래를 점쳐봤더니 그리 밝은 말들이 없다. 이런, 사주는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그래도 오늘 내 운세 점수는 80점이니 여기에 만족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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