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또 월요일
아침 8시 25분. 소연은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형태의 하트를 만들어 유치원 셔틀버스 안, 창가 쪽에 앉은 아들에게 보여준다.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입 모양으로 ‘사랑해’를 연신 외치다 버스가 출발하면 보폭을 크게 하여 잠시 쫓아 뛴다. 아이가 활짝 웃는 얼굴을 확인한 뒤에야 버스의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이상한 걸음걸이. 손목의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고 앞만 보며 걷는 그 걸음은 시간에 대한 강박으로 가득 차 있다.
8시 35분. 다행히 오늘은 지하철이 일찍 도착해 5분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머릿속에는 오늘 해야 할 업무들이 스치기 시작한다. 오전에는 업체 미팅, 내일 보고서 준비, 오후에는 다른 부서와의 회의까지. 그래도 다행이다. 지난주 한 달 가까이 몰입했던 중요한 보고를 끝내 극한의 스트레스는 한바탕 지나간 상태다.
지하철을 갈아타려 환승 통로를 걷다가 멀리 예전에 같은 팀이었던 선배를 발견한다. 반가움보다는 긴장감이 먼저 밀려온다. 선배와 스몰 토크를 나누기에는 아침부터 에너지 소모가 클 것 같다. 소연은 에어팟을 귀에 깊숙이 꽂고, 빠른 걸음으로 선배와 멀찌감치 떨어진 승강장 출입구로 향한다.
지하철의 까만 유리창에 비친 소연의 얼굴이 유독 지쳐 보인다. 정수리 위에서 떨어지는 하얀 조명 탓인지, 아침 화장대 앞에서 봤던 얼굴과는 다르게 다섯 살은 더 늙어 보인다. 더 우울해지기 싫어 고개를 돌리지만, 눈은 까만 유리창 바로 옆 광고판에 꽂힌다.
<붓기 없는 동안 시술, 다음 날 출근 가능한 리프팅 레이저>
‘이번에 인센티브 나오면 한 번 해볼까?’
순간의 고민을 끊듯 휴대폰 사내 메신저 알림이 도착한다.
- 소연님 어디예요? 커피 샀어요?
소연은 빠르게 답장을 보낸다.
- 10분 뒤 도착해요. 근데 오전 미팅 준비가 아직 안 끝나서 저는 모닝커피 패스할게요.
9시가 거의 다 된 시각. 북적이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떻게든 먼저 타기 위한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소연은 사람들을 살짝 안쪽으로 밀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선다. 마치 누군가에게 밀려서 탄 것처럼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겨우 올라타는 데 성공한다. 제법 자연스러운 연기에 스스로도 뿌듯해진다.
자리에 도착해 의자에 앉자마자, 한숨인지 쿠션이 꺼지는 소리인지 모를 만큼 소심한 숨을 내쉬며 컴퓨터를 켠다. 끝난 지 오래된 프로젝트 일정이 적힌 포스트잇과 알록달록한 메모들이 모니터 한켠에 붙어 있다. 모니터 뒤편은 훅 불면 잿빛 먼지가 날릴 것 같지만, 소연은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늘 겪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월요일 아침이다.
한참을 집중해 일하다 눈이 뻑뻑해져 인공눈물을 넣고 눈을 깜박인다. 잠시 창밖을 보다 햇빛 가득한 풍경에 멍해진다.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린다.
- 벌써 봄이네..
집과 사무실을 바쁘게 오가다 보니 계절의 변화조차 놓칠 때가 많다. 이런 날에는 반차라도 내고 공원을 걷고 싶지만, 늘 생각뿐이다. 그런 사치를 부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소연에게는 없다.
점심시간, 12시 땡.
시계를 확인한 소연의 눈빛이 달라진다. 잿빛 먼지가 날릴 것 같던 모니터 뒤편에서 비로소 살아 있는 표정이 솟아난다. 오늘은 오랜만에 다른 회사로 이직한 유정을 만나는 날이다. 새로운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괜히 더 설렌다.
멀리서 눈이 마주치자마자 두 사람은 동시에 웃는다.
- 새로운 회사는 어때요? 분위기 괜찮아요?
- 비슷해요. 일은 많고 사람은 부족하고. 왜 소연님, 이직하게? 그냥 거기 있어요. 나와봤자 별거 없어요. 소연님은 집도 회사에서 가깝잖아. 가까운 데가 최고야.
- 그치. 나 정도면 회세권에 산다고 봐야져. 하하… 하.
소연은 농담처럼 받아치지만 마음 한켠이 씁쓸해진다. 정 안 되면 이직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텨왔는데, 그 희망마저 흐릿해진다. 유정은 장점보다 더 힘들어진 점만 줄줄이 늘어놓는다. 서로 누가 더 힘든지 겨루듯 애로사항을 털어놓다 보면 위로 아닌 위로가 된다. 상대의 고통이 나보다 더 커 보일 때 느끼는 묘한 안도감. 그렇게 둘은 또 한 번 동지애를 확인하며 다음 점심을 기약한다.
점심 이후 빠듯했던 오후 일정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벌써 퇴근 5분 전이다. 집으로, 육아 출근을 할 시간이다. 서둘러 가서 시어머니와 바통 터치를 하고, 아이 숙제를 봐주고 씻기고, 키즈 카페가 되어버린 집을 정리해야 한다.
지하철역으로 뛰어가다 문득 내일 외근인데 노트북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닫는다. 뒤돌아서 회사 쪽으로 다시 달려가다, 소연은 문득 멈춰 선다. 웅장한 사옥이 밤빛에 유독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다가 마주한 건물이 낯설게 느껴진다.
- 내가 방금 여기서 나왔던 건가?
소연은 멍한 표정으로 회전문을 열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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