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휴가
응급실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소연의 몸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휴가를 냈다.
휴가 신청서를 올리자 동료 연희가 물었다.
- 소연님 어디 좋은 데 놀러 가요?
- 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냥 쉬려고요.
- 일주일씩이나? 너무 아깝다, 그냥 쉬기엔.
- 그런가요? 근데 너무 지쳐서 누워만 있고 싶어요.
- 에구 어떡해요.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고 와요. 회사 생각 절대 하지 말고!
- 네, 고마워요.
소연은 웃었다. 미혼인 연희는 아직 모른다. 아이가 있으면 집에 있으면서 ‘그냥 쉰다’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남편은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그러면 몸은 쉬어도 마음은 아이 곁에 남아 있을 게 뻔했다. 쉬는 동안 시어머니에게 육아를 맡기는 일 역시 소연에게는 휴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소연은 집에 남아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휴가 첫날 아침, TV를 켰다. 평소엔 보지 않는 채널들이 낯설게 흘러갔다. 소연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화면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불현듯 일주일 뒤 메일함에 쌓여있을 메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소연은 고개를 저었다.
휴가 둘째 날 아침, 현관문이 열렸다.
- 소연아, 엄마 왔어.
친정엄마는 무거운 반찬가방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 너 아직 어린데 몸이 왜 그러니. 건강관리 잘해야 돼.
반찬을 하나씩 꺼내 놓으며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 에어컨 추우니까 사무실에서 가디건 꼭 챙겨 입고. 덥다고 아이스 음료 먹지 말고 따뜻한 거 마셔. 외식하면서 밀가루 기름진 거 많이 먹지 말고.
- 응, 알아. 그렇게 하고 있어.
- 근데 왜 이 모양이야!
- 몰라. 엄마 닮아서 약골인가 봐.
- 난 너 나이때 안 그랬어. 그땐 하나도 아픈 데가 없었어. 엄마는 지금 60대잖아.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 앉았다. 외식으로 상한 속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 같았다.
- 반찬 맛있다. 집밥 제대로 먹으니 너무 좋아.
- 좋은 건 못 먹더라도 나쁜 건 절대 먹지 마. 이제 엄마가 못 챙겨주는 나이잖아. 네가 스스로를 잘 챙겨야 해.
엄마는 반찬 하나하나를 설명했다. 둘은 평범한 이야기를 나눴다. 동네 슈퍼에서 파는 과일이 싸다는 것, 아이 유치원 선생님이 친절하다는 것, 요즘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것.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휴가의 시간은 유독 빠르게 흐른다. 엄마는 현관문을 나서면서도 한 마디를 더 보탰다.
- 배 꽉 조이는 옷은 피하고 신발도 편한 거 신고 다녀. 응?
- 알았어, 알았어. 빨리 가. 주말에 몸 나아지면 놀러 갈게.
문이 닫혔다. 소연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싱크대 옆에 엄마가 깜박 두고 간 반찬 가방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엄마, 나 사실 너무 힘들어.’
말하지 못한 한마디가 목구멍에 걸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 응, 엄마.
- 아니, 엄마가 거기에 반찬 가방이랑 돋보기 안경 두고 온 것 같은데. 챙겨서 주말에 가져와. 알았지?
- 응…
-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소연은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 아니… 오늘 엄마 반찬이 너무 맛있었어.
목소리가 떨렸다. 소연은 엄마에게 괜한 걱정을 주기 싫었다. 그런데도, 오래 눌러두었던 마음이 말끝에 묻어 나왔다.
- ……..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숨소리만 들렸다.
- 소연아. 우는 것도 좋은 거야. 울면 많이 씻겨 내려가. 힘들 때는 우는 것도 괜찮아.
엄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날 밤 소연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셋째 날, 소연은 백팩을 챙겼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 몇 권, 다이어리, 필통을 챙겨 동네 카페로 향했다. 나무 인테리어가 따뜻한 카페였다. 창가 자리에 앉아 페퍼민트 티를 주문했다. 햇살이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예전에 팀원들과 낮에 커피를 사러 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이 시간대에 책을 읽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저들의 삶이 궁금했고 그 여유가 부러웠다.
소연은 시원한 페퍼민트 티를 한 모금 넘기며 카페를 천천히 둘러본다. 유모차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며 아메리카노 하나를 테이크아웃하는 엄마. 사원증을 목에 건 채 우르르 들어와 소란스럽게 떠드는 회사원 무리. 노트북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타이핑하는 20대. 서류를 펼쳐놓고 통화하는 정장 차림의 사람. 소연은 가져온 책을 뒤집어두고 생각에 잠긴다.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나. 문득, 지나온 시간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친다.
어릴 때는 부모님 말씀에 어긋난 적이 없었다. 괜찮은 대학에 들어갔고 유학도 다녀왔다.
유명한 기업에 취업해서 좋은 성과도 냈다. 그야말로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길’을 따라왔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나.
입사 5년 차 때 백화점 외근을 나간 적이 있었다.
- 아, 저렇게 이 시간에 백화점에 유모차 끌고 다니는 여자들이 부럽다.
동료가 말했다.
- 저게 부러워? 나는 내 커리어를 쌓고 성장하는 게 좋지, 집에서 애기 보는 삶은 하나도 안 부러워요.
- 그래도 힘든 일 안 하고 편하게 사는 거 부럽지 않아요?
- 전혀. 재미없는 삶인 것 같아요.
소연은 공감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날의 기억이 오늘에서야 문득 되살아났다. 그땐 그렇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전업주부의 삶이 다시 보인다. 육아라도 확실히 할 수 있는 전업주부의 삶이 더 낫지 않나 싶기도 하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민준이 또래 아이와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는 아이 엄마를 무심한 듯 바라본다. 후줄근한 옷차림이지만 피부도 머릿결도 건강해 보인다. 소연은 혼란스럽다.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렸는데, 손에 남아 있는 게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뭐가 잘못된 걸까.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선택한 건 아닐까. 소연은 책을 펼쳐 몇 글자 읽다가 한 귀퉁이에 작게 적었다.
‘회사 밖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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