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영 May 15. 2016

평생 본 것 중 가장 세찬 비가 오는 밤

쿨하지 못한 고민

현실적인 고민들은 참 싫지만 요즘들어선 누가 일깨워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서 하고있는 나를 발견한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는 나의 자유로워 보이는 라이프 스타일을 동경 혹은 질투하면서도 속으로는 "저러다 시집은 갈수나 있으려나 걱정이다." 생각하는 어른들과 "저렇게 살면 좋아보여도 시집 못가고 기쎈 노처녀로 늙겠지." 하며 삶의 공평함에 위안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으레 여자가 이십대 후반이 되면 이런 고민을 해야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일평생 노출된 학습의 결과인가보다 하며 나의 "완벽하게 쿨하지 못함"을 탓하다가도 이런 한심함도 내 모습의 일부인 것을 생각하면 이왕 고민할 것 피하지 말고 냉철하게 정면돌파해보자는 생각도 든다. 


캄보디아에서는 내 나이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노처녀로 취급을 받는다. 오늘 낮에 얹혀사는 집의 일곱살 난 여자아이와 놀아주고 있자니 아이의 증조할머니가 와서 내 손을 잡고 물었다. 혼자여서 외롭지 않냐고. 어린 아이의 서툰 번역이라 이렇게 노골적으로 전달된 것이겠지만 혼기 꽉찬 아가씨가 이 먼 타지에서 뭐하고 있는 것인가 내심 궁금하고 걱정도 되셨던 모양이다. 아이를 가르키며 옆에 친구가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했더니 작은 한숨같은 것을 내쉬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할머니의 손녀 중 나와 동갑인 여자 아이는 작년에 결혼을 하여 한달 전에 남자아이를 낳았다. 그 손녀의 결혼도 여기서는 늦은 나이였다고 하니 나는 그 할머니의 눈에 나는 체감 나이 불혹을 바라보는 노처녀로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갖고 있다. 요즘 속속들이 결혼하는 주변의 친구들과 언니들을 보면 결혼은, 혹은 결혼식은, 참 아름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우 현실적으로 조건을 따져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사람들도 물론 없진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혼은 지금의 감정에 매우 충실하게 치우친 결정으로 보인다. "신부가 아깝다." 혹은 "너무 빠른 것 아니냐." 아니면 "그래 이젠 뭐 결혼할 때도 됐지." 따위의 걱정은 곧 "감정을 배제하고 현실의 선례와 확률에 입각한 매우 냉철한 시각으로 너희 부부가 앞으로 함께 할 삶을 예측해보면 이 결혼이 확률적으로 성공적인 결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네가 굳이 이 사람과 헤어지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다면 너의 결정을 존중한다." 정도의 의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백퍼센트 성공을 확신하는 결혼도 없다. 재보고 따져가며 한 결혼도 실패할 수 있고, 모르는 것 투성이의 도박같은 결혼도 동화처럼 끝나기도 한다. 결국 데이터를 믿을 것인가, 직감을 믿을 것인가 하는 것도 취사선택인 것이다.


 나의 엄마와 아빠는 전자에 속한다. 소위 나이가 찼고, 시기가 되어 여러 번 선을 보고 한 옛날 사람들의 중매 결혼이다. 자라면서 보아 온 엄마와 아빠의 모습은 그저 화목하고 단란한 부부의 모습만은 아니었기에 나에게는 현실적인 조건보다는 나의 감정에 충실한 선택을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허나 따지고 보면 첫번째 상자를 열었더니 아무 것도 안들어있어서 두번째 상자에는 분명히 무엇이 들어있다고 확신하는 멍청한 빠찡꼬 논리다. 누구에겐 백점짜리 답도 다른 이에게는 오십점도 안될 수 있는 이런 문과식의 문제는 나에게 너무 어렵다.


늘 내가 하는대로 내버려둘 것만 같았던 엄마아빠는 요즘은 틈만 나면 딸이 시집 생각이 없어보이는 것에 대한 푸념과 걱정을 거리낌없이 표출한다. 반대로 결혼 생각이 없었던 나는 요즘들어 더욱이 누군가와 함께 일상을 나누며 평생을 함께 사는 것에 대하여 동경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도 총명함이 퇴색되고 시집과 단란한 가정을 바라는 보통의 노처녀가 되어가는 건가 걱정이 덜컥 들었지만 이제는 이런 고민과 바람도 사람이라면 응당 하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놓치기에는 꽤나 아까운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커지면 커질수록 지금의 감정에 휩쓸려 현실적이지 못한 결정을 덜컥 내리면 어떡하나 하는 경각심도 커진다. 결혼을 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정작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은 나타나면 바로 느낌이 온다는 소리를 종종 한다. 소녀같은 마음에 정말 그런 운명같은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이미 엎질러진 물에 대한 정당화겠거니 속으로 코웃음도 친다. 그렇게 따지면 매 연애 때 마다 적어도 기대에 가득 차 있던 분홍빛의 시기에만은 항상 상대방은 내 귀에 종소리를 들려주었던 것 같았고, 그 때마다 나는 확신에 가득 찰 뻔 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가장 하고싶은 상대는 남자친구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혼에 관한 고민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본의 아니게 부담주는 여자친구가 될 것이므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를 폭로하는 심정으로 쓰는 글이다. 얼마 전부터 꽤 혼란스럽게 고민하고 있는 주제였는데 오늘 맥주 한잔 하며 무한 도전의 웨딩싱어를 보다 왈칵 눈물이 나는 내가 우습고 외롭고 그렇다. 누군가와 일상을 나누고 평생을 함께 한다는 맥락에서 어떨 때에는 결혼이 너무 하고싶다가도, 어느 날엔 또 한없는 냉소의 대상이 되고 그렇다. 어느 덧 새벽 한시가 다되어 가는데 프놈펜에는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세찬 비가 천둥 번개와 함께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소리보다 비내리는 소리가 더 무섭게 우렁차다. 마치 도시 전체가 거대한 오성 호텔 수압 급의 해바라기 샤워 밑에 있는 것 같다. 뜬 눈으로 밤을 새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다. 

매거진의 이전글 캄보디아 정착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