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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Oct 08. 2016

나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

내 영어 공부의 가감없는 역사

내가 공부하는 석사 과정은 국제 보건학인 관계로 모든 프로그램이 영어로 진행된다. 내 주변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영어를 한국어처럼 구사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불어를 영어만큼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석사 동기들 중에는 프랑스 학생들이 절반 쯤 되지만 나머지 절반의 외국인 학생들 중에서는 불어를 여전히 아예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불어를 배우기에 최적화 된 환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년 정도 파리에 살다보니 작년에는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프랑스 사람들과 농담따먹기하고, 프랑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꿀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입이 트인 것 같다. 다음주 부터 다시 파리 시청에서 하는 불어 수업이 개강하면 올 해는 좀 더 열심히 불어 공부를 해볼까 한다. 내가 일하고 싶어하는 분야에서는 불어를 잘하면 프랑스나 스위스의 각종 헤드쿼터들은 물론이고 서아프리카나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섬들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한껏 더 확장된다. 

 

공부와 관련해서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어떻게하면 영어를 그렇게 잘 할수 있느냐다. 명절에 모이면 만나는 친척들부터 시작해서, 엄마 아빠 친구들, 같은 회사 다니던 워킹맘 언니들까지 으레 말하는 "어휴 어쩜 이렇게 공부를 잘하니" 식의 칭찬이 아닌"그래서 영어 공부는 어떻게 했니?"식의 구체적인 질문들을 꽤 많이 받았다. 수학, 과학같은 다른 과목들에 대해서는 이런 비슷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는데 유독 영어 공부 비법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 걸 보면 아마 사람들은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처럼 외국어 공부에도 "영어, 몇달만 하면 김수영만큼 한다" 식의 황금비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보다. 특히나 내가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 이유는 내가 한번도 영어 공부를 하는 청소년기에 외국에 나가 산 적이 없는 소위 토종 국내파이기 때문이다. 돈 많이 들여 외국에서 공부시키지 않고, 대치동 유명한 학원을 보내지 않고도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나는 부모님들에게 보급형 롤모델 정도로 보이는 것 같다.  

 

질문에 대한 답부터 이야기하면 "전 좀 타고난 것 같아요."다. 하지만 이렇게 건방진 대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나는 항상 말문이 막혔었다. 한번은 아예 학부모 세 분이 나를 데려다 앉혀두고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내가 영어 공부를 시작한 시점부터의 공부 방법을 자세히 이야기 해 준적도 있었지만 아무도 내 공부 방식에 수긍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끝에 가서 결국 성토했다. 사실 나는 타고난 것 같다고. 그 때 그 아줌마들의 허탈한 표정이란. 가끔씩 혼자서 다음 번에 저 질문을 받을 때를 생각해서 그럴싸한 대답을 준비해놓으려고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 하지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깔끔하게 정리를 할 수 있는 대답이 아직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구구절절 한번 다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내 영어 공부의 역사와 내가 생각하는 외국어 공부의 핵심을.


서막: 영어 공부의 시작은 질투

나는 내가 영어 공부를 시작한 시점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우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필수 과목으로 배우는 첫 번째 세대였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라곤 고작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정도에 불과했다. 그때는 저 문장이 저렇게 떡하니 쓰여있어도 읽지 못했을거다. 그래서 나는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를 시작하게 된 시점은 초등학교 4학년이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서로 정의한다. 내가 살던 동네는 대구에서 우리 부모님 또래의 은행원이나 교수님 자제들이 많은 나름 떠오르는 학군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4학년 우리 반에는 유독 똑똑한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어울려 놀던 똑소리 나는 아이들 중에서는 이미 아빠 안식년을 따라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들도 몇 명 있었고, 그러지 않더라도 다들 당시 떠오르는 유행이었던 영어 학원을 다녀서 그 나이 또래치고는 영어를 잘했다. 나는 물론 똑똑한 축에 속하는 아이었지만 영어는 Apple 스펠도 하나 쓸 줄 모르는 영어 바보였고, 어린 나이에 나름 센 자존심에 그게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내 똑똑한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새로운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잘나가는 아이들만 접근할 수 있는 교실 칠판에 가서 영어 단어 쓰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심판이 알파벳 하나를 불러주면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아무 단어나 더 빨리 쓰는 사람이 이기는 뭐 그런 단순한 게임이었다. 나는 시시하다며 한번도 그 게임에 참가하지 않았고, 쿨한 척 구경만 했지만 속으론 자존심이 매우 상했다. 아직도 칠판에 July를 쓰는 친구를 보며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부러워하던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때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얘네보다 영어를 잘하게 될거라고.

 

내 영어의 비법 1: 무대포로 사전찾기

그 날부터 집에가서 엄마 아빠에게 영어 학원을 보내달라고 징징댔다. 우리집은 찢어질듯 가난하지만 않았지만 형편이 넉넉하지도 못했기 떄문에 엄마 아빠는“영어 선생님 딸이 영어 학원 다니는 건 부끄러워 안된다.”며 내 투정을거절했다. (그 당시 내가 보내달라고 조른 학원은 영어 학원 뿐만이 아니었지만 엄마 아빠는 단호박처럼 그 어떤 학원도 보내주지 않았다.) 그리곤 아빠가 어느 날인가 미국에 있는 큰 아빠가 보내준 미국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들을 잔뜩 들고 왔다. 그러곤 나에게 원래 영어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라며 아무 책이나 집어들고 사전을 찾으면서 모르는 단어들을 다 찾아보라고 했다. 좀 황당하긴 했지만 어차피 나는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지만 나에겐 없었던 영어 공책이 매우 사고 싶었기 때문에 그 구실 마련을 위하여 제일 표지가 예쁜 책 (그 당시엔 읽을 줄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제목이 Spelling이었다)을 골라들고 그 날부터 새로 산 영어 공책에다가 그 책에 나와있는 모든 문장들을 받아 적고 사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몇몇 단어의 스펠링을 알았고, 모르던 단어들을 알게 되었고, 아빠가 옆에서 슬쩍 가르쳐 준 덕분에 동사는 과거형이 있다는 것과, 복수형에는 s가 붙는다는 것 등의 기본적인 규칙들을 알게 되었다. 

몇 달이 걸려 저 책을 다 보고 나니 나는 친구들이 모르던 필기체도 쓸 줄 알게되었고, 사전으로 단어를 찾는데 나름 재미를 붙였고, 스무 페이지 정도 되는 알라딘 동화책을 사전을 찾아가며 읽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 때 나에게 사전을 찾는다는 것은 조금씩 틀어진 영어의 과거형, 미래형, 복수형들의 원형을 찾는 암호 해독같은 놀이였고, 영어를 “읽는다”는 것은 단어들의 뜻을 모두 찾아 나열해놓고 적당한 문장으로 “조합하여 추측하는” 행위였다. 마치 내가 암호의 숨은 의미를 해석하는 탐정이 된 것 같아 그 재미에 영어 공부를 했다. 어차피 학원도 안 다녀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었고, 누구도 나에게 맞다 틀리다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겐 만족감과 성취감 외의 부담감, 조바심이 없었다.

 

첫 영어 학원

험난했던 시작 이후 내 영어 실력은 물 흐르듯 조금씩, 학원을 다니는 내 또래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늘어갔다. 비록 시작은 조금 특이했지만 그 이후엔 영어를 더 잘하려고 특별한 걸 한 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친구 경민이를 따라 “지구 어학원”이라는 회화 중심의 영어 학원을 몇 달 다녔는데 (추운 겨울에 다닌 것만 생각나는 걸 보니 오래 다니진 않은 것 같다.) 말이 회화 중심이지 학원비가 싼 대신 문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원어민 선생님이 1시간 내내 말만 시키는 수업이었다. 우리 반 선생님은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Cynthia라는 젊은 여자였는데 나는 그 수업에서 I am going to 는 I am gonna가 되고 I want to 는 I wanna가 된다는 식의 일상적인 말투나 How are you 대신 쓸 수 있는 What’s up 등의 슬랭을 배웠다. 조금씩 무언가를 배우긴 했지만 입밖으로 내진 않았다. 나는 수업에서 가장 조용한 학생 중 하나였다. 다들 원어민같은 발음에 자기 의사표현은 웬만하면 영어로 할 줄 아는 6학년 언니나 중학생 언니 오빠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내 짧은 영어가 부끄러워 선생님이 시키기 전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멍청해 보이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내 성격 때문에 내가 완벽한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나는 좀 처럼 입을 떼지 않는다. 그 학원을 생각하면 기억에 남는건 Cynthia선생님의 문신과 (엉덩이 위에 슈퍼맨 문신이 있었다) 잘나가는 일진 오빠였던 Chris와 Brian 뿐이다. 

 

내 영어의 비법 2: 문법은 맨투맨 영어, 읽기는 텝스 독해, 쓰기는 펜팔

혼자서 어느 정도 영어 공부를 하다보니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즈음에 한계에 부딪혔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모르는 “과거 분사” “have+p.p” “수동태” 등의 외계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문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겐 모두 생소한 단어들이었고, 나는 다시 엄마에게 문법 학원을 보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로부터 돌아온 것은 맨투맨 성문 영어. 엄마는 고등학교 독일어 선생님이었지만 예전 시골 학교에 있을 때 영어를 가르쳐 본 적이 있다며 나를 매일 앉혀놓고 맨투맨 성문 영어문법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설명이 너무 길고 딱딱한 그 책은 그 당시 내용의 30%도 알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대충 “수동태”라는 것이 있고, “과거 분사”라는 것이 있구나 정도의 큰 그림은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원을 다녀도 마찬가지였을테니 학원 안다니길 잘했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깨달은 점 하나는 언어는 단시간 내에 문법을 숙지한다고 익혀지는 것이 아니라는거다. 충분한 시간을 들이며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과 읽히는 것이 거부감없이 소화될 때에 가장 빨리 몸에 베는것이 언어인 것 같다.

사전으로부터 출발해서 영어를 글로 배운 나의 강점은 “독해”였다. 문법을 몰라도 웬만한 문장은 사전의 단어만으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영어로 된 문장을 읽는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 나를 위해 아빠는 텝스 영어 독해 책을 얻어다 주었고, 나는 하루에 짧은 지문 두 개씩, 정말 재밌어서 스스로, 해석을 해서 엄청 빠른 기간에 책 하나를 끝냈다. 독해왕이 된 기분이었다.

독해가 좀 되다보니 문법은 안되더라도 영어로 무언가를 써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그 당시 유행하던 외국인 친구와의 펜팔이었다.무작정 펜팔을 찾는 사이트에 가서 내 소개를 올렸더니 별별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 중에는 게임보이를 사서 선물로 보내달라는 가나 남자아이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꾸준히 메일을 주고 받게 된 친구는 캄보디아 오빠였다. 얼굴도 모르고 연결 고리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겁 없이 문법에 구애받지 받고 편지를 썼고, 주고받는 메일의 양이 늘어나면서 작문 실력도 쌓이고, 우정도 쌓였다. 4년이 넘게 연락을 주고 받다가 우리 가족이 캄보디아에 그 오빠네 가족을 만나러 가기도 했고, 이번 여름인턴 역시 그 때의 인연이 계속 이어져 그 집에서 무전 취식을 했다. 

 

내 영어의 비법3: 관찰력. 문화의 이해. 언어는 문법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떄 엄마 아빠가 나와 내 동생을 미국 큰아빠네 집으로 보내줬다. 가서 영어도 좀 늘어 오고, 어렸을 때 보고 못 본 사촌 언니 오빠도 만나고 오라는 취지였다. 방학 내내 미국에 있었지만 90%는 한국말을 썼다. 그 당시 내 영어 실력은 원어민이 말하는 70% 정도를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도무지 그들의 대화에 낄수가 없어 나는 늘 꿀먹은 벙어리였다. 가장 큰 이유는 대화의 컨텍스트와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점심에 타코를 먹을까, 부리또를 먹을까 하는 일상적인 대화에도 타코와 부리또가 뭔지 몰라 내 의견을 피력할 수 없었고,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물어도 내가 좋아하는 책은 그들이 몰라 대화를 이어 나갈 수가 없는 식이었다. 거기다 그들과 다른 엑센트마저 의식이 돼 더더욱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나는 셜록홈스처럼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관찰을 하면서 그들의 제스처, 그들이 자주쓰는 단어들, 이를테면 교과서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Holy crab, Holy cow 같은 표현들을 새롭게 배웠고, 사람들이 말을 할 때 like, you know 같은 연결어를 많이 쓴다는 것도 알았고, 우리가 “우와” “오오” 하는 대신 그 사람들은 “wow”“shit” 을 한다는 것을, “응?” 대신“huh?”, “응~” 대신 “yeah” 하는 것 따위의 잡다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문화적인 디테일들은 외국어를 유창하게 해보이게 하는데 꽤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아무리 우리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이라도 문장 사이에 “umm” 하거나 “wow” “damn”같은 감탄사를쓰면 갑자기 확 외국인 느낌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컨텍스트의 말을 하느냐도 크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나는 외국인에게 다짜고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How old are you?)라고 묻거나, 연애에 관한 질문을 하면서 "며칠이나 사귀었어?" (How many days have you been dating your boyfriend?) 라고 묻는 지극히 한국식 컨텍스트의 질문은 아무리 유창한 억양으로 이야기하더라도 상대방에게는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그들이 그 질문 속에 숨겨진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 나에게 “넌 영어를 잘해서 외국인 친구도 많고 좋겠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토플 점수가 높다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 쉬운 것은 아니다. 친구를 사귀려면 그들의 문화적 컨텍스트를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이야기를 하면 된다. 무조건 그 사람들처럼 이야기하라는게 아니라 그들과 나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인지하고 그 차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거다. 같은 한국말을 하면서도 아재 개그를 하는 아저씨와 중학생은 대화가 잘 안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반대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면 어휘력이 부족해도 자간과 행간의 의미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문장 안의 모든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대충 때려잡아 추측하면 얼추 맞게 된다. 나는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말을 할 때에도, 책을 읽을 때에도 이런 추측을 꽤 많이 사용한다. 단어를 많이 안다고, 발음이 좋다고 원어민처럼 말을 하고 그들과 거리낌없이 섞일 수 있는 게아니다. 언어는 단어와 문법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

 

득도드디어 남들보다 영어를 잘하게 된 것 같다.

남들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고 처음으로 느낀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미국을 다녀와서 예전에도 듬성듬성 보던 길모어 걸스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미국 코네티컷 중산층 가정의 소녀 로리가 성장하며 연애를하고, 대학에 가는 모습을 몇 년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미국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고, 로리의 발음을 따라하며 자연스레 미국식 억양을 갖게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대구시에서 뽑는 영어 영재반과 과학 영재반 시험을 두 개다 볼 기회가 생겼는데, 공부를 안하고도 영어 시험에서 꽤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남들보다 영어를 잘하나보다 하는 인지를 하게 됐다. 그러고나니 남들 앞에서 영어를 하는 것도, 영어로 무언가를 쓰는 것도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 실수를 남이 알아채는 것이 부끄러웠다면 한번 검증을 받고 나니 틀려도 모를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겨서였던 것 같다. 

 

내 영어의 비법4: 휴식기

이론적으론 설명할 수 없지만 여지껏 내 외국어 학습의 패턴을 돌아보았을 때 실력이 가장 폭발적으로 느는 시기는 2번 정도 찾아온다. (1) 나보다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이 생겨서 닫혀있던 입이 트이는 시기와 (2) 공부를 안하고 쉬는 시기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영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2년 정도 수학의 정석과 하이탑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만 열심히 공부하다 대학에 갔더니 영어가 꽤 많이 늘어있었다. 그 동안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열심히 쑤셔넣은 것들이 쉬는 기간 동안 제자리를 찾아 정리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머릿속에서 혼잣말과 생각을 꽤 많이 하는 편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 그 기간 동안 나는 꽤 자주 심심하면 내가 하고싶은 말들을 머릿 속에서 영어로 해봤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앞에서 너무 지겹게 수업을 하면 “Why the fuck is he so boring? Why can’t I just leave?” 따위의 쿨한 미국 고등학생 흉내를 머릿속으로 혼자 내보는 식이다. 예전에 독일에 살 때에도 학기를 다 마치고 배낭 여행을 하면서 터키에 갔을 때 터키 사람들 앞에서 독일어를 (엉터리로) 하면서 독일어가 꽤 많이 늘었고, 6개월 넘게 여행을 하고 베를린으로 돌아갔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독일어가 꽤 많이 늘어 있었다. 불어도 작년 겨울에 모로코에 가서 모로코 사람들 앞에서 엉터리 불어를 하면서 말하기가 꽤 많이 늘었고, 이번에 불어 청정 지역에서 인턴을 하고 돌아왔더니 불어가 또 늘어 있었다. 공부를 잠시 내려두고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없이, 부담없이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뱉을 수 있는 시기가 적어도 나에게는 꽤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영어를 잘하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대충 이렇다.

1.   독기와 욕심
2.   관찰력과 문화의 이해, 혹은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
3.   무조건 입이 트이기보다는 충분한 자신감이 생길만큼의 기초를 다지기
4.   공부가 아닌 표현의 방식으로써 언어를 받아들이고 갈망하게 되는 휴식기
5.   그리고 위에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국어를 잘하는 것은 모든 외국어 구사의 기본이라고생각한다. 특히나 고급스러운 언어 구사를 위해서는 풍부한 어휘력이받쳐주어야 하는데, 우리말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고 내 밑도 끝도 없는 잘난척과 여전히 영어 공부를 잘하는 법에 대한 답이 없음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혹은 이 글을 읽고 캐캐묵은 맨투맨 문법책을 다시 꺼내본다던가, 길모어 걸스를 보기 시작한다던가, 외국인 펜팔을 찾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 내 영어 공부의 비법을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영어도 수학도 사실 제일 중요한 건 타고난 머리와 하고자 하는 자발적 욕심인것 같다. 내가 남들보다 언어를 빨리 배우는 가장 큰 원동력은 잘하고 싶어하는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추진력이다. 열정과 추진력이 없었던 공부는 나도 남들과 똑같이 고전했고, 실패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자...) 나의 공부 방법을 가르쳐 드릴 수는 있지만 결국 가장 효과적인 공부는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각자가 맞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 가능하다. 그것마저도 스스로 찾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남의 방식을 따라하고, 엄마 아빠가 아무리 돈을 들여 시켜봤자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황금 비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공부는, 특히 외국어 공부는 사실 구구절절 할 수 밖에 없다. 단시간에 문법과 단어를 익힌다고 원어민처럼읽고 쓰고 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고, 이건 시간이 걸리는 구구절절한 과정을 수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행을 바라고 이 글을 읽었다면 짜증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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