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자랑해도 되는데 과소평가받아 속상한 우리 나라의 헬스케어 시스템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개인의 의견입니다)
프랑스에서 국제보건을 공부하는 내가 심심치 않은 빈도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유럽에서 저평가된 우리 나라에 대한 아쉬움이다. 나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한다는 가르침에 어려서부터 세뇌가 되어 아직도 여전히 자화자찬이 힘들다. 남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게 미덕인 우리인지라 요즘의 절은이들은 "헬조선"이야기는 낯 한번 붉히지 않고 해도 우리가 가진 좋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잘 꺼내지 못하는 것이라 순진하게 생각해본다. 외국 아이들과 조금만 시간을 보내다보면 금새 그들이 말하는 80점짜리의 무언가는 많은 경우 40점 짜리에 불과하고, 내가 생각하던 대한민국의 50점짜리는 그들의 잣대에 비추면 무려 90점짜리임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0. 답답하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 프랑스인 교수님들이 대부분이고, 몇몇 모듈에서는 미국의 유명한 대학 교수들이 와서 수업을 하기도 한다. 프랑스인들은 2000년도에 매우 편파적인 심사기준을 적용하여 출판 된 WHO의 전세계 각국의 보건시스템 비교 평가에서 1위를 한 사실을 16년째 우려 먹으며 자기들의 선진화된 건강보험시스템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고, 모든 "비교"와 "국제적 관점"에 등장하는 학술자료들은 EU에서 유럽의 국가들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 뿐이다. (아주 가끔 나쁜 예를 들기 위해 유럽연합 국가들 사이에 미국을 끼워넣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누가봐도 형편없는 보건 인프라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특유의 국수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순진함으로 사실은 미국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는 점을 역설하거나, 혹은 "세계는 곧 미국"인양 미국 특유의 자본주의와 연방국가 시스템에만 존재하는 법과 풍습들을 마치 전세계 공통의 관심사처럼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가끔가다 일본이 좋은 예로 등장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일본을 좋아하니까. 일본은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이상적인 건강보험 시스템을 갖춘 나라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의 보건시스템은 아직 세계최고는 아니다. 그렇지만 나의 국한된 지식과 주관에 의하면 한국의 보건시스템은 세계 최고라고 알려져있는 프랑스, 일본의 시스템과 견주기에 손색이 없다. 절대적 우열을 가리는 것은 힘들겠지만 (이제껏 각 나라의 보건시스템을 비교하려는 여러 학술적 시도들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널리 인정받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결과는 없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함께 논의되어질만 하다. 아직 국제보건분야에서 한국은 위치가 불분명하다. 우리가 나서서 교류하지 않는 이상 전문가들은 굳이 아시아의 어중간한 나라 한국의 보건시스템을 알려고하지도 않는다.
1. 국가 보건시스템의 기본구조
(*이하 기술한 내용들은 수업시간 주워들은 이야기들과 OECD 통계자료를 참조하였다.)
가장 간단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바로 <보건시스템 삼각형>이다. 삼각형의 각 꼭지점에 국민(돈을 내는 사람이자 보건혜택을 받는 수혜자), 돈을 관리하는 자, 그리고 보건 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급자가 존재한다. 삼각형의 가운데에는 이 전반적인 시스템을 아우러 관리하는 관리자 혹은 운영자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보건시스템은 크게 3가지 범주 내에서 분리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나 일본과 같은 사회보험제도, 프랑스같은 국가건강보험제도, 그리고 미국같은 사설보험제도가 그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국민은 건강보험공단에 소득 기준의 보험료를 납부한다.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해주는 것은 누가나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모여진 돈은 공단에서 관리하지만 실제로 공단의 예산을 승인하는 것은 삼각형의 가운데 있는 보건복지부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의무가입이며, 보험에 가입된 국민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시 10%의 본인 부담금만 지불하게 되고, 나머지 90%는 공단에서 의료기관에 지급한다. 보험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소위 비급여 항목 (성형수술, 미용 관련 의료 서비스, 혹은 몇 종류의 진단 테스트들)의 경우 공단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므로 100% 본인이 금액을 부담한다. 그나마도 우리나라 국민의 50% 이상은 사설 보험을 통해 비급여 항목들을 보장받고, 더 나아가 아프면 보험금을 용돈까지 버는 판이다.
(왼쪽이 한국, 오른쪽이 프랑스)
프랑스의 국가보험 시스템이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은 국민들이 "보험료"가 아닌 "세금"을 재정경제부로 낸다는 것과, 그 세금 중의 일부를 재경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떼어 준다는 것이다. 세금은 우리나라 소득세처럼 소득 구간에 따라 과세율이 증가하는 시스템을 따르며, 프랑스의 경우 의료비의 최대 60%까지 본인 부담을 해야한다. 프랑스는 대부분의 사회계층 (학생, 직장인 등)이 필수적으로 사설 보험에 추가 가입해야하는데, 그 보험금은 매우 작다.
미국같은 개인 자발적 보험가입 시스템은 "국가 보험" 혹은 "사회보장제도" 자체의 개념이 보건 분야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바마 케어 액트 역시 사설 보험 가입을 의무화 한 것이지 국가에서 보험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모든 의료비는 100% 본인 부담이고, 우리나라처럼 국가가(정확히 말하면 심평원이) 의료수가를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가 부르는게 곧 값이다. 미국에서는 한 번 앞으면 가정이 파산한다는게 농담이 아니다. 그나마 보험 가입을 한 사람들은 미리 내놓은 보험금이 대부분의 의료비를 커버해주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덜 한 편이지만, 그 마저도 보험의 보장항목이 어떻게 다르냐에 따라 달라지므로로 개인의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위험요소가 많다.
2. 한국의 보건 시스템. 뭘 그렇게 잘해서 나는 이런 글을 쓰는가.
소위 국제 사회에서 건강보험 및 보건 복지 제도로 알아주는 나라를 뽑으라고 하면 프랑스, 일본, 스웨덴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도 서로의 시스템이 낫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세개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세 시스템과 우리 나라의 보건 시스템을 비교하여 보면 결코 대한민국이 이 셋에 비하여 뒤쳐지지 않는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나라는 국가 GDP의 약 6.7% 정도가 보건복지예산 (Health Expenditure)으로 사용된다. 참고로 일본은 10.1% 정도, 프랑스는 10.9% 정도가 2015년 OECD 통계 기준 수치다. 프랑스와 한국, 일본은 보건복지의 중요한 평가 기준은 기대수명 (Life Expectancy)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 보험의 혜택 또한 전국민 의무가입으로 원칙적으로는 국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 또한 여러 다른 나라들이 갖지 않은 장점 중 하나다. 앞의 세 나라 모두 원칙적으로 전국민 모두에게 보험 혜택이 주어지지만 스웨덴의 경우에는 거주하는 "주"에 따라 내는 세금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에 따른 격차가 꽤 크다. 기대 수명과 혜택의 공정성 이외의 평가 기준에는 "사용자의 서비스 만족도"와 "안정적인 재정운영", "시스템의 효율성" 등이 있는데, 재정 운영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어 뭐라 할 수 없지만, 일본이 보건복지 예산 적자 운영으로 몇 년 째 고생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웨덴은 실제로 전세계에서 GDP 대비 보건복지예산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 중에 하나이다. 인풋 대비 아웃풋을 언뜻 보기에 한국은 나쁘지 않다.
사용자의 서비스 만족도에 대해서는 월등히 한국이 앞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사실 우리 나라처럼 동네 슈퍼가듯이 병원을 들락날락 거릴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일본이 그나마 제일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거다.) 국민들 스스로 최고임을 자부하는 프랑스에서도 특유의 "서비스 정신"의 결여로 인하여 병원을 가려면 갑인 의사님에게 미리 전화를 하여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렇게 의사를 만나게 되면 몇 가지 질문만 하고 별다른 진료없이 처방만 해주고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하고도 진료비로 20-30유로 가까이를 지불한다. 의료비의 환급은 부지런히 사후 정산으로 신청을 해야 몇 달 뒤에 들어온다. 우리가 감기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가서 콧물빼고 상담하고 처방받아 5천원을 내는 것에 비교하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것저것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스웨덴은 완벽해보이는 헬스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평균 18주가 넘는 예약 대기 시간을 꼽는다. 스웨덴과 프랑스 모두 보험에 가입함과 동시에 본인이 지정한 주치의(GP) 1명만 보험으로 커버가 되기 때문에 우리처럼 아플 때 마다 병원을 골라가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시스템이 효율성에서 한국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데이터의 전산화 및 중앙집중 처리"와 이에 따른 시간과 비용의 효율성이다. 아마 우리나라처럼 국가 차원에서 개인의 건강 보험료, 자격 요건, 진료 기록 등을 전산으로 관리하는 곳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병원에 가서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고 진료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프랑스에서는 학생 보험을 신청한 후 보험증이 도착하는데에만 6개월이 넘게 걸린다. 일본은 전산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모든 의료기록이 종이로 관리 되고, 보험증을 가져가지 않으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실제로 일본 지진이 났을 때 병원에서 관리하던 진료기록들이 모두 엉망진창이 되는 바람에 고역을 겪었다고도 한다. 우리는 연말정산 일원화 시스템이 엉망이라고 매년 불평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원클릭으로 의료비 교육비 및 각종 소득의 통합 정산을 하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수반되는 "개인정보보호" 논란도 있지만, 우리는 비교적 프라이버시의 개념이 정착되기 이전에 이미 전산화를 해버렸기 때문에 현재의 시스템에까지 올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고, 다른 여러 선진국들에 비하여 극명하게 작은 나라 사이즈 및 인구수도 이러한 효율성에 크게 기여하는 요소 중 하나인 것 같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는 프랑스의 절반정도 되는 GDP 대비 보건예산으로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의 보건복지 분야의 성과를 내고, 사용자의 서비스 만족도(비용, 시간, 사용 편의성)나 시스템의 효율성(일원화 되어 빠르고 정확한 전산처리)은 전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우수하다.
3. 그런데 왜 우리는 국제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할까?
가장 큰 이유로는 일본의 위치 선점이 있다. 사실 우리 나라의 의료보험 시스템이 일본의 아류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실제로 모든 의료보험 관련 시스템은 일본에서 소개되면 10년 뒤에 우리 나라에 들어온다는 농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술계에서도 아시아의 좋은 예를 찾으면 굳이 일본을 선택하지 우리를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보다 잘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관련 데이터의 전산화라던가, 혹은 요즘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의료관광 등은 일본은 할 수 없지만 우리가 선도하고 있는 분야들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 밖에서는, 혹은 아시아 밖에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모른다. 오히려 밖에서 보기에는 이런 점들이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의료수가의 고정으로 인하여 우리 나라 의사들은 각종 미용의료 서비스 (성형, 피부과 관리, 교정 등)를 제공하며 돈을 번다. 워낙 병원가는 일이 쉽다보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비급여 의료 서비스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자연히 우리 나라의 보험 급여 외 의료비 지출 (Out-of-pocket expense)는 일본이나 프랑스에 비하여 훨씬 크다. 실제로 OECD의 최근 통계에서 우리 나라의 보험급여 외 지출 의료비는 30-40%에 육박했는데, 헬스케어 시스템을 전공하시는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발견한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어쩌면 의료관광을 오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병원에서 지출한 의료비 역시 여기에 잡힐 수도 있다는 거였다. (회계의 편의상 그렇게 잡힐 확률이 많다고 하셨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 보건시스템의 평가에서 보험급여 외 지출이 많다는 것은 치명적인 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험급여 외 지출은 건강의 유지에 꼭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여 발생한 필수지출이라기 보다는 과도하게 편리한 의료서비스를 남용한 사치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이런 건강과 미용에 대한 "의료 사치"의 일반화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결정적으로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국제 학술계 및 국제 기구에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원인에는 우리 나라와 그들의 미약한 연결 고리, 그리고 우리의 의지 부족이 크다고 생각한다. 다들 나서서 서로 자기 잘났다고 자랑할 때 우리는 익은 벼랍시고, 혹은 언어의 장벽을 핑계 삼으며 나서서 교류하지 않는다. OECD나 월드 뱅크, WHO에서 자료 조사를 요청하여도 아마 우리 나라의 고위 공무원 아저씨/할아버지들은 무시하거나, 어디 말단에 넘겨 낮은 이해도에서 비롯된 형편없는 완성도의 자료를 넘겨주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 내가 가서 공부하고 싶을만한 "국제보건학" 혹은 "공중보건학" 학부나 석/박사 과정도 없다. 공중 보건학은 아직도 의대졸업생들의 전유물이다. 실제로 이런 헬스케어 시스템이나 보건경제학은 의사가 아닌 다른 전문가들이 다루어야 하는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이다.
3. 다짐
나라도 우리 나라의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해서 내가 공부하고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에 이런 나라에 이런 시스템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전세계 어느 국제보건학 과정에 가도 교수님들이 파워포인트에서 한국을 "좋은 예"로 인용하였으면 좋겠다. 실제로 그럴만한 수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보건복지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비단 보건 분야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못난 점에 대해서는 줄곧 부끄러운줄 모르고 떠들어도 정작 우리가 잘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거나, 알아도 굳이 다른 이들과 공유하지 않는다. 요즘같은 국제화 시대에 한국은 아직도 많이 닫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세대는 그 닫힌 문을 여는 세대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