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의 틈새 사색
힘이 든 날에 집시의 음악을 들으면 가슴 속에 치밀 듯 올라오는 서러움이 있다. 오늘은 가다가 멈춰 불이 반쯤 꺼진 지하철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아저씨와 마주했다. 그렇게 어스름한 지하철 한켠에서 창 밖의 동굴을 쳐다보며 집시의 아코디언을 듣고 있자니 힘들었던 하루가 눈 앞에 천천히 지나가면서 고전 영화의 엔딩 크레딧 속 작은 화면에 내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층 더 청승맞은 표정을 지어 봤다. 지금 딱 이 상황에서 내 앞의 저 무슬림이 자켓을 열어 젖히고 알라의 영원함을 외치며 폭탄 조끼를 터뜨리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집시의 아코디언 소리가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죽음은 참 드라마틱하겠다 생각했다. 까만 동굴 속에 화염이 꽃처럼 피어나고 파편들이 슬로우모션으로 날리는 장면도 혼자 그려 본다. 불이 다시 켜지고 지하철이 천천히 속력을 붙이며 달리기 시작한다. 아코디언 아저씨도 수금을 마치고 다른 칸으로 건너간다.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닌 현실의 나도 다시 표정을 추스리고 소매치기 당하지 않으려고 가방을 한번 더 꽉 고쳐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