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빛 가득해 보이던 날들이 당연해지는 순간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는 휴가를 내야지만 느낄 수 있는 평일 낮 시간은
내가 가질 수 없는 평온의 세계인 것만 같았다.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는 엄마들,
백화점이나 카페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대부분 사무실에 갇혀 보내는 낮 시간에
바깥세상은 이토록 다채로운 색깔로 가득 차 있구나 하며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그 세계는 모두가 평화로워 보였다.
휴직이 시작되고 둘째를 유모차에 태워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나도 무지개 빛 세상으로 좀 나가보기로 했다.
집 근처 산책길을 걷고 있자니 온 몸으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카페에 들러 커피도 한 잔 주문했다.
잠에서 깬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하면 곧바로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한 그 평화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던 중 집 근처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둘째는 아직 첫 돌도 안되었지만 첫째도 그랬듯 복직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가야 할 터였다.
자리가 있을 때 보내지 않으면 내가 보내고 싶을 때는 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첫 한 달은 1시간, 두 번째 달에는 2시간,
돌이 가까워진 요즘에는 낮잠 적응을 시도하고 있다 보니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갑자기 너무 많은 자유시간이 생겼다.
처음에는 이렇게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얼마만이냐며
복직 전까지 즐겁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필라테스 수업에 등록했고 책을 빌리러 도서관을 찾았다.
그동안 못 만나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기도 했다.
그러는 것도 하루 이틀, 슬슬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방 정리, 빨래 돌리기 등 간단한 일과를 처리하고 나서
뭘 해야 할지 갈팡질팡 했다.
나가면 괜히 돈만 쓰고 돌아오는 것 같아서
어쩌다 있는 약속이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오히려 둘째가 집에 있을 때는 낮잠을 자는 오후 1~2시간의 여유가 너무나 달콤해서
잠에서 깨기 전까지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수첩에 내일 낮잠 시간에는 뭘 할지 적어놓고 체크해가며 일을 처리하기도 하고,
그 시간을 쪼개 중국어 공부를 하거나 집 안의 잡동사니를 비워내거나 했는데
시간이 많아지니 긴장감이 줄어들었다.
오늘 꼭 하지 않아도 나에게는 내일도, 모레도 시간이 많았다.
특히 가장 큰 고충은 점심은 뭘 먹을지 정하는 것.
혼자 있다 보니 차려먹는 것이 귀찮아지고
겨우겨우 식사 준비를 하더라도 혼자 먹는 시간이 참 외롭다.
회사에 다닐 때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재미도 있었는데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 몇 가지와 식은 밥을 앞에 두고 있자니 식사 시간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렇게 허기를 때우고 치우고 저녁식사 메뉴를 대충 구상해놓고
잠깐 스마트폰을 보며 멍하니 있다 보면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 된다.
이제야 깨닫는다.
넘치면 부족한 것 만도 못하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예전에는 그토록 갈망하던 혼자만의 자유시간,
그것도 평일 대낮의 한가롭고 조용한 평화가 당연해지니 또 다른 불안이 엄습해온다.
알랭 드 보통은 책 <불안>에서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라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욕망해오던 한낮의 평화가 당연해지니
더 활기차게, 바쁘게 살고 싶다는 다른 욕망이 스멀스멀 생긴다.
복직까지는 이제 4개월 남짓.
아마 복직 이후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지금 이런 생각이 아주 사치스러운 것이었군!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 그렇게 말할 것이다!)
계절은 점점 여름의 한가운데를 향해 흘러가고
이제 곧 휴가 시즌이 시작되면 눈깜짝할 사이 시간이 흐르겠지?
그동안의 나태함과 게으름에서 벗어나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선물에 감사하려고 한다.
이렇게 나의 생각과 소소한 생활을 기록하여 이 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 꺼내야겠다.
시간을 저축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여유로움을 글 속에 잔뜩 묻혀서 나중에 언제고 맛 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