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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Oct 17. 2019

남편의 출장

나도 가고 싶다, 혼자 가는 출장 

이번 주말 남편이 출장을 간다. 그 날은 공교롭게도 내 생일이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며 생일 이벤트를 거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도 하필 내 생일날 출장을 간다니 왠지 모를 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남편은 출장을 자주 다닌다. 

공대생이었던 남편은 대학 때 그 흔한 해외 배낭여행도 한번 다녀오지 않았는데 처음 해외를 나간 것이 출장 때문이었다고 한다. 첫 회사에서 우연찮게 해외 출장이 잦은 포지션으로 배치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쭉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첫째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도 남편은 출장을 갔고, 둘째가 생후 3주쯤 되었을 때도 출장을 갔다. 

언젠가는 추석명절을 끼고 출장을 간 적도 있다. 

(양가 어른들은 멀리 계셔서 주위 도움의 손길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뭐, 내 생일에 출장을 가는 것도 사실 별 일이 아니다. 


업무 상 가는 것이므로 못가게 하거나 투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남편의 출장 일정만 잡히면 혼자서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약간 두려워(?) 지면서 출장을 떠나는 남편이 조금은 부러울 뿐이다. 아이가 둘이 되고 보니 더더욱 그렇다. 평일에는 그래도 괜찮은데 주말을 끼고 가기라도 하면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것도 일, 끼니를 챙기는 것도 일, 설거지하고 씻기고 재우고 그 와중에 나도 먹고 씻고 할 것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왠지 모르게 신나보이는 남편의 표정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혼자서 공항버스 타러 가는 길도, 공항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는 것도 부럽다.

물론 일을 하러 가니 본인은 긴장과 부담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누적된 피로로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혼자 훌쩍 떠나는 그 일정 자체가 마냥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휴직하고 집에 있다 해도 아이 둘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이상 혼자서 멀리 다녀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아마 답답한 마음이 많이 쌓여있나 보다. 남편의 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부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재작년 가을쯤, 나도 회사에서 출장을 갈 기회가 있어 혼자 영국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웅크려 앉아 잠을 청해도, 천장이 낮은 지하철에서 노선을 헤매도, 혼자 마시는 플랫 화이트 한잔의 맛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여행과 출장은 엄연히 다르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여행도 사실 '여행지에서의 육아'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차라리 혼자 다녀온 출장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첫째가 18개월 무렵이었을 때 가까운 타이완으로 여행을 갔다가 비행기 안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아이 케어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해외여행은 둘째가 적어도 36개월이 지나고 가자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복직을 앞두고 어디 해외라도 다녀오라는 권유에도 차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마 여행지에서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즐길 내 역량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나는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며 내 체력을 쏟아붓는 여행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혼자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비록 출장일지라도. 


잦은 출장을 당연하게 생각할 만큼 우리의 결혼생활도 햇수를 더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 둘을 남겨둔 채 내 생일에 출장을 가는 것이 내심 미안했는지 남편은 자꾸 면세점에서 뭘 사라고 한다. 면세점에서 사 오는 초콜릿이 제일 아까운 나는(우리 아들은 제일 반기는 선물이지만) 초콜릿보다 훨씬 실용적인 물건을 몇 개 고른다. 

별 일 없이, 무사히 잘 다녀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겠으나 정 나에게 뭔가 주고 싶다면, 복직 전 혼자 다녀오는 여행을 선물 받고 싶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즈음 남편이 하루 반차 내고 출근 길에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다녀온 후에 씻기고 먹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재우고 그리고 나면 다음 날 점심쯤 내가 도착하는 것으로. 목적이라면 무수히 많이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나도 하루짜리 출장을 기획해서 다녀오고 싶다. 과연, 남편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가고 싶다 나도,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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