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 Oct 10. 2019

집에 대한 긴 생각

요사이 나는 여유가 생기면 동네 구경을 한다.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중고거래를 하러 낯선 동네에 가서도, 볼 일이 있어 멀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내려 ‘걸어서’ 동네를 살펴본다.

물론 가기 전에 부동산 어플에서 면적과 향 등을 따져 특정 아파트 단지와 동을 염두에 두고 채광이나 조망도 보고 근처 환경을 유심히 본다.

초등학교는 얼마나 가까운지, 상가나 학원가는 있는지, 지하철 역이나 버스 정류장은 어떤지 실제로 살게 된다면 어떨까 생각하며 동네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사를 할 계획이냐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뛰지 말라는 잔소리에서 해방되고 싶어 1층으로의 이사를 고려했던 것이 발단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마음 편하게 지내고 싶은데 둘째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를 고려하면 앞으로 10년, 그 정도 시간이라면 추천 의견보다 만류가 많은 아파트 1층도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자 집을 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 사는 곳의 환경도 충분히 만족스럽긴 하지만 매일 지나다니며 1층 세대를 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의 1층은 화단 앞 주차가 가능한 것이 좀 아쉽다.

3층 필로티 세대가 딱 2곳이 있는데 밖에서만 봐도 수리가 잘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매물로 나오기는 쉽지 않겠다 싶었다.

혹시 다른 동네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그런데 첫째가 내년이면 벌써 일곱 살이니 학교 배정을 위해서는 내년 하반기까지는 결정을 해야 한다.

복직을 하고 나면 이렇게 여유롭게 돌아볼 시간이 없을 테니 지금부터 미리 좀 봐 두자는 생각으로 한 두 곳씩 정해놓고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다.


일단 1층 매물이 있는 곳 위주로 가보기 시작했다.

아직 남편과 완전히 협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동산 중개업소는 들르지 않고 그냥 혼자 여러 가지를 체크해본다.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이사해서 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 동네 저 동네 둘러보니 동네 사람들 표정도 보게 되고 동네 구경 자체가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동네 구경을 하면 할수록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30년이 다 되어 가는 낡은 아파트가 주를 이루는 곳.

지하주차장까지 엘리베이터는커녕 계단으로 연결된 아파트도 많지 않을 정도로 아파트 자체의 상품성은 거의 비슷한 동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면적의 같은 1층인데도 동네마다 가격 차이가 꽤 많이 난다.

왜 이렇게 가격차이가 날까? 실제로 각 동네에 가서 이것저것 체크해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중교통 접근성, 학군, 상가나 학원가, 지역단위 개발계획, 직주근접 등을 이유로 땅 덩어리에 시멘트 구조물일 뿐인 이 아파트라는 재화에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붙고 각 요소 별 편차에 따라 가격차이가 발생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수요에 따라 공급과 가격이 결정되니까 당연한 이유겠지만.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1층 매물인데 초등학교를 끼고 있는 단지와 그렇지 않은 단지 간에도 차이가 난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있는 집이 초등학교가 가까운 단지를 선호할 것이고, 그런 집 중에는 1층을 선호할만한 이유도 있으니까(나처럼)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아파트 단지마다 1층의 특색도 다 다르다.

요즘의 신축 아파트 단지는 지상에 차가 없지만, 90년대 지어진 이 지역 아파트들은 대부분 지상주차가 허용된다.

대부분 앞에 화단이 있고, 전면주차만 가능하게끔 주차를 허용해놓은 형태가 많지만 어떤 아파트는 놀이터를 중심으로 차를 다니지 못하게 해서 광장을 만들어놓은 곳도 있고 또 어떤 아파트는 아예 1층 세대에게 개인 정원을 주고 펜스를 칠 수 있게 해서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게 해 놓았다. 또 어떤 아파트는 1층 앞에 화단과 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주차선을 화단과 떨어뜨려 반대편 아파트 담장 쪽으로 그려 놓아 주차장과 1층 베란다 간 거리가 상당히 넓은 경우도 있었다. 물론 장단점이 있는데 광장에 놀이터가 있는 1층 세대는 여름이면 밤늦게까지 아이들 소리가 시끄러울 수도 있고, 사생활 보호로 세워둔 펜스 때문에 일조량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고, 화단과 떨어진 주차장이 만차라면 이중 주차한 차량 때문에 자동차 소음과 매연이 그대로 들어올 수도 있고... 아마 다양한 케이스가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며 동네 구경을 하고 다닌 지 어느덧 두 달가량이 되었다.

휴일인 어제 아이들, 남편과 함께 근처 천변 산책을 하며 내가 구경 다녀온 단지 이야기를 해주면서 정말 이사를 할까, 말까를 논의했다.

긴 산책을 마치고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자 포근함이 느껴졌다.

아마 그래도 정 붙이고 산 시간이 있으니 익숙함이 감정의 절반이겠지만 이 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서 산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서운함마저 느껴졌다.

실제로 이사를 하든 하지 않든 동네 구경을 하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다.

집의 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요소를 생각해보고 무엇 때문에 특별히 비쌀까, 혹은 무엇 때문에 같은 면적/층인데 가격 차이가 날까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원하는(욕망하는) 것이 보인다.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돌아다니기 시작했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추후 복직해서 일을 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동네 구경을 하고 올 때마다 개인 블로그에 조금씩 기록하고 있다.

다른 어떤 재화보다 ‘집’은 참 많은 의미를 가졌다.

우리 가족이 매일 살아가야 하는 보금자리이자,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개인 소비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아마 나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남지 않은 휴직기간 동안 더 열심히 동네 구경을 해볼 참이다.


 




 




이전 15화 플랜 B를 찾아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