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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Oct 24. 2019

다시, 일하는 마음

제현주, <일하는 마음>을 읽으며

다시 일하러 가는 날까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휴직 전까지 아이의 하원을 도와주셨던 이모님께도 미리 연락을 드려 우리 집에 오시는 날짜를 확정했다. 같은 분이 다시 오실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회사원의 일이란 직급과 부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전문가'라는 호칭을 붙이기에는 다소 평범한 수준의 일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만약 전문성을 키워 회사 밖에서도 '**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일을 맡아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다면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운은 따라주지 않았는지 복직 후에는 아마 기존에 하던 것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바꿔 말하면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휴직으로 회사를 잠시 떠나 있는 동안 '일(Job)'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재직하고 있는 회사 이름을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것인지, 회사 내부에서만 유효한 수준이라 전문성을 갖췄다고 말하기엔 민망한 직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맞는지 헷갈렸다.

특히 우리 회사의 경우 (도대체 왜 하는지 잘 모르겠는)'직무 순환' 제도가 있어서 같은 부서에서 5년 이상만 근무해도 금세 그 업무의 달인이 될 수 있다. 대부분 5년이 되기 전에 팀이 바뀌거나 직무가 변경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10년쯤 회사생활을 해보니, 그리고 휴직을 계기로 회사 밖 사람들을 만나보니 무슨 일을 하더라도 '주특기'를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다.

회사 내부에서는 부서를 옮겨도 내가 잘하는 주특기를 살려 나름대로 직무를 소화하면 되는 것이고, 회사 바깥에서는 내가 잘하는 그 특기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사실 회사 밖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주특기를 이제와 어떻게 만든 담, 꼭 전문적이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약간의 우려가 되었다.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 독의 제현주 대표가 쓴 <일하는 마음>을 읽었다.

책날개의 화려한 이력만 봐도 분명 뛰어난 능력을 가졌을 그도 회사를 다니며 많은 번민을 느꼈고, 회사 밖에서 본인의 일을 하면서도, 다시 회사에서 일하는 방법을 택했을 때도 '일'의 속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고 한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들, 본인을 단련시키는 방법들, 주변 사람들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나 어떻게 지지세력을 만들어 가는지 등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했다.

그중에서도 복직을 앞두고 걱정을 했던 '전문성'과 관련된 대목이 있었으니, 책의 일부를 발췌해보면 아래와 같다.



탁월하게. 이 단어가 내 눈길을 잡아끌며 튀어 올랐다. 전문성이 아니라 탁월함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을 해오던 터이기도 했다. 전문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이라면, 탁월함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이다. (p.166)


탁월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럼에도 더욱 가지기 어려운 것이다. 탁월성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자격 조건 같은 것은 없지만, 시스템의 내부에 안착해 그저 시간을 쌓는 것만으로 탁월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별개로, 자기만의 만족 기준, 달성하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탁월성을 만들어낸다.  <중략>  스스로 탁월성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 목표를 향해 자기 기준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은 외부의 훈장이 주어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일의 보상을 누린다.

(p.168~169)


제현주, <일하는 마음>, 어크로스, 2018



전문성보다는 탁월성을 갖추자는 대목에 눈이 번쩍 떠졌다.

사무실에서 보낸 시간이 길다고 생기는 게 아니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통해 내 기준에 맞춰 일을 해야 생기는 것이 탁월성이란다. 그렇다면 일을 탁월하게 하는 데는 내가 원래 갖고 있는 역량보다는 그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를 붙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바꾸지 않는 한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주어진 과업을 해결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일 텐데 이 상황에 탁월성을 적용하려면 "Do, What you love" 보다는 "Love, What you do"에 가까워야 한다.

결국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가짐만 잘 갖추면 된다는 결론이다.


아이가 하나 일 때는 어찌어찌해냈던 것 같은데, 이제 둘이 되고 보니 다시 시작할 회사생활에 어떤 목표를 둬야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성취하고 싶다.

누군가는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조언한다. 챙겨야 할 식구가 한 명 더 늘었으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

회사원이 아니면서 엄마일 수는 있어도, 엄마가 아니면서 회사원일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책 속의 '탁월성'이 더 와 닿았다.

전보다 많은 일을, 중요한 일을 할 수는 없어도, 혹은 외부에서 보기에 멋진 일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내가 즐겁게 일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게 탁월하게 일하는 방법이고 그렇게 쌓인 탁월성은 훗날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만약 회사를 나오게 되더라도 어디서든 빛을 발해주지 않을까?


역시 이 책에 소개된 'n 잡러'(둘 이상의 소속을 추구하며 다양한 방식과 역할을 가지고 일하는 이들)라는 단어에도 가슴이 뛴다. 회사에 특별히 불만은 없어서 당장 퇴사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아마도 당분간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유지하겠지만 언젠가는 나도 n 잡러 가 되고 싶다.

보다 전문적으로 글을 써보고 싶기도 하고(여기서의 '전문적'은 수입이 생기는 글쓰기를 의미한다), 우리 아이들이 커갈 지역 사회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기도 하다.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과 관련된 일도 좋고, 아니면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영역의 새로운 일도 좋다. 시간은 충분하므로 생각을 정리하고 틈틈이 기록을 남기면서 찾아볼 계획이다.


이제 정말로 휴직이 끝나간다.

잔여 휴직일 수가 남아있긴 하지만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도 가능하면 휴직 없이 넘겨보려고 한다.

지금은 욕심이 앞서지만 막상 회사에 돌아가면 마음가짐도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탁월하게 일하기'를 항상 염두에 두고, 즐겁게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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