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예슬 May 13. 2021

세상의 주름


 어렸을 때부터 줄곧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 동네랑 내가 같이 나이를 먹는 느낌이다. 변해가는 도로, 변해가는 상가, 변해가는 풍경들을 보아왔지만 나 사는 것이 바쁘다 보니 하나 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뭐가 또 바뀌는구나, 그렇게 사는 편이다.


 어느 날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문득 다니던 초등학교 옆에 있는 문방구가 아직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다. 어릴 때 모습 그대로. 문방구 입구에 즐비한 뽑기 통들과 여전히 가게 앞에 걸려 있는 어릴 적 한 장에 500원인가 1000원 정도 했었던 피아노 악보들. 그리고 그 앞에서 나와 계시던, 이제는 허리가 많이 굽으신 문방구 아주머니. 아니 할머니..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타임머신 처럼 예전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문방구를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냥 그 때, 초등학교 때 공기와 그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과 무엇보다 주름 하나 없이 젊으셨던 우리 부모님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한없이 센치해졌다. 


 언젠가부터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너무 서운하다. 시간은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없고, 흘러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기만 한다. 아버지는 계속 더 늙어가실 거고, 함께 살아온 세월보다 앞으로 함께 살 세월이 더 짧을 수도 있다. 그치만 시간의 속도에 서운한 감정이 든다고 해서 시간이 나를 위해 발걸음을 늦추거나 되감기를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이 모든 과정, 세월의 모든 순리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자꾸 스스로 되새기려고 한다. 흘러가는 시간, 변해가는 세상의 모습, 부모님의 주름살, 삶에서 꼭 거쳐야 할 희노애락까지. 세상에 나고 떠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임을 그냥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대신 조금 슬퍼질 때마다 지금 이 시간에 조금 더 충실하기로 한다. 시간 그 자체에는 더 이상 정을 주지 않고,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고 전하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이 가는게 아쉬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