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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예슬 Jun 29. 2017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런던



내가 한국을 벗어나 가장 처음으로 발을 딛은 도시, 바로 런던이었다.

2012년 한겨울 부터 초여름 까지를 런던에서 지내며 런던을 비롯한 영국 곳곳을 눈에 담았고,

그 후로 영국은 항상 내 마음 한 켠에 제2의 고향으로 애틋하게 자리하여 왔다.


알을 깨고 나온 아기새가 처음으로 눈동자에 담긴 상대를 어미라고 따르듯이, 런던도 단순히 내가 나고 자란 곳을 벗어나 내 눈에 가장 처음으로 담긴 도시였기 때문에 늘 그렇게 숨 막히도록 그리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후로 한 차례 두 차례 계속 런던을 다시 찾으면서, 또 런던이 아닌 다른 나라 다른 도시들도 다녀보면서- 사람과 국가, 혹은 도시와의 궁합이라는 것도 분명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런던, 그리과 영국과 내가 궁합이 잘 맞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1년 365일 대부분 비가 오고 흐리다는 것, 너무 덥거나 너무 춥지 않은 날씨를 가진 것, 내가 동경하는 예술가들이 나고 자란 곳이라는 것, 록 음악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곳이라는 것, 원할 때면 진귀한 공연과 페스티벌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 공원과 강이 발달한 곳이라는 것, 동네의 소박한 펍에서도 다양한 풍미를 자랑하는 훌륭한 맥주들을 맛볼 수 있다는 것, 그런 펍에 혼자 가서 맥주 한잔 즐기는 것이 전혀 낯선 일이 아니라는 것, 회색빛 단조로운 도시가 아닌 여러 가지 빛으로 반짝이는 도시라는 것..





햇살 좋은 날이면 공원 잔디밭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다가 강가의 헤엄치는 백조와 오리들에게 빵조각을 나눠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해가 질 즈음이면 근처 극장가에 가서 남아있는 가장 싼 좌석의 티켓 한장 사서 뮤지컬 구경도 하고. 친구들이 모여 사는 동네의 단골 펍에서 한둘씩 모여드는 친구들과 함께 지난 하루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맥주를 마시다가, 새벽이 되고 펍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 늦은 시간까지 열려 있는 조그만 슈퍼에서 맥주 한캔씩 더 사들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우리와 같이 흘러가는 밤이 아쉬운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같이 건배를 하기도 하고.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에 들러 오래된 역사들을 들여다 보다가, 근처 카페에서 담백한 스콘과 함께 애프터눈티를 즐기기도 하고. 템즈 강변으로 가 잔잔한 강바람 맞으며 산책을 하다가, 강가에 드문 드문 자리한 버스커들의 연주를 눈 감고 잠깐 감상해 보기도 하고. 주말이면 버스 타고 근교의 다른 조그마한 도시로 가 런던과는 또 다른 영국의 풍경들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변덕스러운 영국의 날씨에 우산을 들지 않은 채 잠시 비를 맞으며 걸어보기도 하고.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드는 대도시이지만, 그 어느 도시보다 많은 녹색 풀밭의 공원들을 가지고 있어 언제든 일상 속 여유와 평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도시. 갈색 벽돌집, 빨간색 전화박스, 알록달록한 대문들이 여러 빛깔로 수놓은 도시 곳곳에 예술과 유흥과 자연이 적절히 스며들어 있어 그 도시를 지나는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도시'. 어디든 혼자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개인의 영역을 존중해 주면서도, 동네 펍이나 공원에 가면 언제든 반가이 맞아주는 친구들이 있는 도시. 새로운 것들을 환영하면서도 오래된 것들 역시 존중하고 그를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보존하여 다채로운 매력을 풍기는 도시. 누구든 비틀즈, 데이빗 보위, 오아시스와 같은 팀의 음악을 즐기며, 훌륭한 뮤지션의 라이브를 도시 어디에서든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도시. 적당히 꿈 같고, 적당히 인간적인 도시. 그런 도시가 바로 '런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어디로 여행을 가든 종착점을 런던으로 삼으며,

나와의 궁합이 가장 잘 맞는 런던에서 언젠간 다시 한 번 더욱 제대로 삶을 살아보리라는 꿈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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