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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락 Aug 03. 2023

1. 침착하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


침착하다 [沈 잠길 침 / 着 붙을 착]
: (사람이나 그 태도가) 어떤 일에 들뜨지 아니하고 찬찬하다.


“암이에요.”


예정된 결과 확인 일자보다 이틀 앞당겨진 수요일, 간호사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덕에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벨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네, 호락님. 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서요. … 네, 그럼 오늘 못 오시는 건가요? 빨리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무슨 일이 나긴 났는데, 어차피 오늘 가나 내일 가나 무엇이 달라질까 싶어 난 웃으며 다음 날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빨리’라는 말을 여러 차례 뱉은 간호사의 다급함을 보아 이모와의 저녁 약속이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 지금 갈 수 있어요.”


집에서 한창 저녁 약속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을 엄마에게 연락했다. 병원에서 빨리 오라네,라는 말에 엄마는 침착한 듯 하지만 초조함이 담긴 목소리로 같이 가자고 하셨다. 혼자 가서 듣다 보면 아무것도 안 들릴 거라고.


친구 모임에 같이 나갔던 우래기를 아빠에게 맡기고 엄마를 태워야 했기에 내비게이션 속 목적지는 병원이 아닌 우리 집을 찍었다. 집에 도착해서 엉엉 울면 엄마, 아빠가 걱정하실 테니 도착 전에 펑펑 울어두자 싶어 눈물을 훔치며 운전했다. 백미러로 잠든 우래기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집에 도착해 주차장에 나와 계신 아빠에게 차에서 졸고 있던 우래기를 안아 품에 안겨드리고 그 염려스러운 눈빛을 못 느낀 척 밝고 씩씩하게 다녀올게요, 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엄마는 웃으며 내게 “울었구나? 인생이 나한테 왜 그러냐고?!”라고 하셨고, 나는 엄마에게 “엄마도 울었어?”라고 물었다.

“응, 나한테 왜 그러냐고…”.


그러게, 도대체 얼마나 더 무얼 어떻게 하라고. 힘든 일은 한 번에 온다지만, 뭐 이렇게까지 매몰차고 혹독한 것인지. 끝내 ’삶‘은 나에게 마리오에 나오는 최종 보스 쿠파 대마왕을 내밀었다. ’이 걸 넘어야 해, 이번 게임은.’


만 나이가 적용되어 한 살 어려진 나는 ‘만 36살’에 암환자가 되었다. 몇 달 전 ’이혼녀‘ 딱지 단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번엔 ‘암환자’ 란다. 해도 너무 하다, 정말.


내게 삶은 참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렵다. 고되고, 피곤하다. 지금 이 병은 내게 그저 일스럽다. 치료의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매체에서 숱하게 들어 본 항암치료의 수순과 정도를 몰라서 그런 건지, 통증의 아픔보다 ‘강사로 일하는 학교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우래기 어린이집 적응기간에 입원하면 복잡하겠네.’, ‘결혼했는데 이혼을 했으니, 수술동의서에 보호자는 또 우리 부모님이네. 부모님만 고생시키는 짐이다, 나는.’ … 그냥 그런 생각뿐이었다. 치료와 관련해서 걱정된 건 출산 후 숙숙 빠지는 머리칼이 조금 더 쑥쑥 빠지겠구나 싶어 아쉬운 것 정도…


너무 고통스러우면 뇌에서 자체적으로 지운다더니,  막판에 힘주던 기억은 사라졌지만 자연분만을 무사히 마친 나는 바로 ‘엄마’ 아니던가. (내겐 자연분만부심이 조금 있다.) 암 치료도 잘 받을 수 있겠지. 내가 걸린 암은 예후가 좋다잖냐.


그럼에도 오랜 시간 잊었던 하느님을 찾는다.

감히 마음속에 성호를 긋고, 더 큰 일은 없게 하소서, 아멘.



23.07.19. 수요일.

아주 평범한 오후, 나는 하루아침에 암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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