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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락 Aug 04. 2023

2. 위로하다 (1)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위로하다 [慰 위로할 위 / 勞 일할 로]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그의 슬픈 감정을) 덜어 주려고 따뜻한 말이나 행동을 베풀어 달래고 감싸다.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기 전, 나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나, 결과 나왔는데 어차피 아프고 수술해야 하는 거면 그냥 확진이면 좋겠어. 조직 검사하고 온 날 내가 암 진단금이 얼마인지 찾고 있더라니까.”


시간강사 일로 몇 푼 버는 나는 당장 쓸 생활비를 걱정할 처지였고, 거기에 이혼 전 내 명의로 빌린 (a.k.a 애아빠가 투자명목으로 날린) 대출 이자를 갚아야 했기에 차라리 큰돈이 생길 일이 터지길 바랐다. 그리고 막상 일이 그렇게 굴러갈 때면 우린 이렇게 말한다.


’입이 방정이야.‘


나의 말은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참된 ’입방정‘이었음이 밝혀졌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정신은 덤덤함과 멍함 사이에 있었다. 확진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갈까요?’라는 내 물음에 간호사 선생님은 ’그럼 조심히 오세요.‘라고 짧게 답했다. 내 몸에는 분명 큰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 원장님 앞에 앉았다. 사고 친 자식 때문에 학교에 불려 가 삐그덕 거리는 교무실 문을 열고 선생님 앞에 앉은 학부모마냥, 몹시 불안정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환자들 용으로 바깥을 향해 있는 커다란 모니터에는 영어로 가득한 차트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맨 윗줄의 ’left, 3시‘ 두 단어뿐이었다. 알파벳 속 유일한 한글, 3시. 그래 내 멍울의 위치구나.


“이렇게 나왔어요.”

“이게 뭔데요?” (선생님, 다 전문용어잖아요?;;;)

“암이에요.”


조직검사를 하던 날, 의사 선생님은 에둘러 ‘일반 양성종양도 이럴 수는 있어요.’ 라고 말했지만, 내 멍울의 모양새는 분명 안 좋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보통 나쁜 애들이 아니면 매끈하거든요, 동그랗게. 근데 지금 여기 보면 울퉁불퉁하죠? 여기, 이런 데. (찰칵), 그리고 이 사진 보면 빨간 점이 보이잖아요. 이게 혈액이 지나간다는 건데, 일반적인 애들은 이렇게 주변에 혈관이 생기지 않아요, 천천히  커지니까. 나쁜 애들이 영양분이 필요하니까 혈관을 끌어오고 만드는 거거든요, 빨리 크려고. (찰칵) 크기는 2cm 즈음. (찰칵) 조직검사를 해보죠. 일반적인 양성인 경우에도 이럴 수 있으니까. 검사가 어떻게 나오든 떼어내긴 해야겠어요.“

문제가 없다는 오른쪽에 비해 왼쪽 초음파 시간은 훨씬 길었다.


안 좋은 모양을 다 갖추었으나 의사 선생님은 희박한 경우의 수를 설명하며 애써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암선고를 내리던 날도, 그는 나를 눈빛으로 멘트로 손짓으로 위로해 주었다. 많이 울고 왔어요, 라는 엄마의 말에 의사 선생님은 예후가 좋은 경우라고, 6개월 간 치료 열심히 받으면 된다고, 내 무릎을 툭툭 치며 위로해 주었다. 위로의 말에 피식 웃었지만 이내 왈칵 눈물이 나왔다.


당장 예약이 가능한 근처 대학병원을 나열해 주시며 유방암수술은 외과수술 중에 어려운 수술에 속하지 않고, 또 모든 병원이 상향평준화 되어있으니 어딜 가도 괜찮을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중에 비교적 가깝고 오래전부터 암전문으로 알려진 병원을 선택해 의뢰를 부탁했고, 바로 다음날 예약이 잡혔다. 조직검사 샘플 슬라이드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 상급병원에 제출해야 할 준비물이 모두 준비된 것은 아니었지만 수술날짜를 빨리 잡으려면 첫 진료도 빨리 받아야 한단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우리 동네 풍경은 전혀 달라진 바가 없는데, 내겐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2차원으로 그려진 밋밋한 그림 같았다. 눈은 보고 있는데 관련 정보가 머릿속에 전혀 입력되지 않는 흐릿한 상태. 애 낳고 병원을 나서던 때와 비슷했다. 세상은 달라진 게 없는데 내 삶은 완전히 통째로 뒤바뀌어 있던 그 어느 날의 몽롱함.


“시옷아줌마랑 이응아줌마도 유방암이었는데 지금 건강하잖아. 요즘은 치료 잘 받으면 다 건강해져. 엄마가 전화해 볼게.” 엄마는 유방암을 극복한 지인들 이야기를 하시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응, 엄마. 시옷아줌마한테 전화해 봐.” 나도 엄마도 유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시옷아줌마는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언니, 유방암은 스트레스예요. 호락이가 스트레스 엄청 받은 거야, 어뜩해.”


그랬구나. 나 스트레스받아서 이렇게 됐구나, 저런.

뭘 어뜩해요~ 괜찮아요, 나. 잠시 다 내려놓고 치료받으면 괜찮아질 거야.



23.07.19. 수요일.

아이를 재우고 엉엉 울며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또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래,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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