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상황이.
어이없다: (상황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다.
예방접종 주사를 맞으려면 예진표를 작성해야 한다. 현재 먹고 있는 약이나 앓고 있는 질병 등을 체크하고 개인정보 공유에 동의하는 문서이다. 신생아는 맞아야 할 주사 종류와 횟수가 많아, 지난 한 해 우래기를 낳고 대리자의 자격으로 꽤나 자주 작성하던 문서이다.
그리고 예방접종을 맞던 날, 오랜만에 찬찬히 읽으며 예진표를 작성했다. 대부분 ‘아니요’에 체크해 왔기에 꼼꼼히 읽는다고 해도 체크하는 속도는 빨랐다. 그런데 나를 멈칫하게 하는 문장 하나.
‘암, 백혈병 혹은 면역계 질환이 있습니까?‘
… ‘네‘.
그 아래 괄호를 보고 침을 꼴깍 삼킨다.
‘(질환명: )’.
기가 막히다. 또박또박 ‘유방암’이라는 세 글자를 적었다. 나와는 영영 관련 없는 문장이고 내용일 줄 알았다. 짧은 한숨을 내뱉고, 현실이 되었음에 정신을 차려본다.
그 아래에는 3개월 내 항암제 투여나 방사선 치료 여부를 묻는 질문도 있다. 다음에 예방접종을 맞을 일이 생기면, 여기에도 ‘네’하고 답하겠지.
주사 덕에 뻐근함이 극에 달한 오른쪽 팔뚝을 만지작 거리던 주말, 나는 알아볼 것이 많이 쌓여있음을 깨닫는다.
첫 번째. 가발. 검색어는 가발을 비롯해, 항암가발, 가발이 달린 모자 등이었다. 벙거지모자를 한참 검색했지만, 민머리에 모자만 쓸 수는 없었다. 가발로 유명한 업체가 여럿 있는데 다행히 집 근처에도 매장이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아주 친절하게도 ‘쉐이빙’ 서비스를 해준다. 미용실에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덕분에 한 시름 놓았다.
두 번째. 암환자 식단. (feat. 고단백 저염식)
“엄마, 나 암환자 식단 시켰어. 짜지 않게 만들어서 보내주나 봐. 오늘 시켰으니까 며칠 뒤에 도착할 거야. 이번에 먹어보고 괜찮으면 자주 시켜야겠어.”
“오! 우래기랑 같이 먹으면 되겠다, 저염이니까.“
맞네, 맞아! 우래기랑 먹으면 되겠다!
느무 효율적이야, 우리 엄마!!! ㅋㅋㅋㅋㅋ
친구들에게 암환자 식단을 시켰다고 하자, 친구 M이 묻는다.
“간 안 되어 있고 그런 거 아니지?”
“댓츠롸잇! 바로 그거야!”
“그거구나.”
이 모든 것은 추억이 되고, 경험이 될 거다.
깔깔 웃으며 말하는 날이 올 거다.
그래도 지금은 어이가 없네?!
23.07.22. 토요일.
요 며칠 계속 토요일 같았는데, 진짜 토요일이 되었다. 시간은 잘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