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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킁개 Jan 18. 2023

내 이름은 지두부, 꾸러기죠.

두부 사전에 겁이란 없다.

 

화창한 가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은 맑고 선선했고 산책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산책을 하다가 신이 나면 두부는 달리기를 한다. 이미 달리기를 몇 차례하고 난 뒤 휴식을 위해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사방이 배수로로 둘러싸여 있어서 두부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장소였다. 어린 두부는 그곳에서도 탐색놀이를 하면서 쉬지 않고 돌아다녔고 신이 났는지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서 전력으로 달려 나간 두부는 성인 남자도 뛰어서 건너야 할 정도의 배수로를 건널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힘차게 멋있게 점프를 했다. 두부는 절반도 못 건너고 그대로 떨어져 흙탕물 범벅이 됐었다. 비가 온 다음 진흙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크게 다칠 뻔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설마 거기서 점프를 할 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방심했던 내 잘못이 너무 컸다. 두부에게 너무 미안했다. 진흙범벅을 하고 배수로에서 가만히 앉아있던 두부의 모습은 말 그대로 웃픈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게 기억난다. 그런 두부를 품에 안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두부 사전에 겁이란 없는 것 같다.


 산책을 하다가 대형견들을 만나도 반갑다고 꼬리 치며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싶어 하고 높은 곳에서도 잘 걷고 잘 앉아 있는다. 어릴 땐 계단을 내려오는 것도 무서워하고 침대 매트리스에서 내려오는 것도 겁이 나서 낑낑거리던 그 두부의 모습은 내 기억에 잊힌 지 오래다. 어떤 상황이 그런 공포를 극복하게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짐작이 가는 부분이 하나 있긴 하다.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두부와 놀거나 산책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를 보낸다. 그때마다 심심해할 두부를 내 무릎이나 책상 위에 두부 공간을 만들어주고 쿠션에 올려주고 일을 하곤 했다. 아마 이렇게 높은 자리에서 나와 함께 있었던 기억 때문에 공포를 느끼지 않고 덤덤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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