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생활글1 25화

불편한 습관, 불편함과 습관

생활글_20170909

by 히요

손가락빗으로 쓸어내린 머리카락이 매일매일 여지없이 수북이 빠진다. 긴 머리는 더 많이 잘 빠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도 같고, 이렇게 많이 빠지는데 여전히 많고 긴 털이 두피에 콕콕 박혀있다는 것은 내 몸은 내가 잘 때도 부지런히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겠지. 잊을만하면 머리는 어느새 덥수룩해지고 미용실을 갈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 어제는 꿈을 꾸었다. 머리를 자르기는 했는데 파마를 하지 못한 꿈. 결국 오후 4시가 다 된 시간, 한적한 동네 미용실 문을 과감히 열고 들어갔다.

평소엔 번화가의 익명성이 보장되고 수많은 손님 중 한명일 수 있는 체인점에 가는데, 몇 년에 한번 가끔 가는 손님이라 내 얼굴을 기억하는 미용사는 없지만 나는 그곳을 단골가게라 생각했다. 그게 더 편했다. 나에게 더 잘해주려고 하지도 않고 내가 더 잘 해달라고 하지도 않을 수 있는 가격정찰제 그리고 변함없는 미용방식, 계산을 하고 다시 받는 20% 할인쿠폰. 싸고 좋은 물건이 많은 동네 시장보다 마트가 편해서 더 자주 가게 되는 것과 결국 다르지 않은 이유로.

어쨌든 나는 미용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밝은 불빛, 비싸지는 않을까 항상 의심하게 만드는 어떤 것, 이제 더 이상 재밌지 않은 패션잡지들, 꾸미기 위해 들뜬 마음이 모여 있는 곳, 멋을 애써 부리는 불편함,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해도 어차피 그 느낌은 연출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체념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는 것, 제때 관리되지 못한 내 머리카락을 두고 하는 미용사의 잔소리를 각오해야 하는 곳.

그런데 오늘은 집 근처 미용실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한적하여 소음이 적을 수도 있고, 미용사가 수다스럽지 않다면 나에게 많은 말을 걸지도 않을 테니, 롤을 말고 중화를 하는 동안 나는 내가 가져간 책을 조용히 읽고, 미용실에서 주는 서비스 차 한 잔을 마시며 거울 속의 작업 과정을 살피면 되는 일이었다. 아마도 지난 가을에 (의도하지 않은 고급스런)파마를 하고 거기다 조금 욕심을 내서 옅은 갈색으로 염색을 했었다. 그 후, 단 한번 기러난 머리카락을 끝부터 한 뼘 잘라낸 것 말고는 매일 고무끈 하나로 질끈 동여매고 다녔는데, 가슴높이만큼 긴 머리카락을 매일 빗어주지도 않고 감고 나면 수건으로 훌훌 물기를 털어 낸 채로 마를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는 건 그냥 나의 생활 습관이라 생각했다. 정성스레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예쁘게 말려주는 일은 귀찮기도 하지만 어차피 묶어버릴 것이기에 쓸데없는 일에 불과했다. 내 머리를 조각조각 나누어 세심하게 빗고 나는 평생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는 나의 뒤통수를 이리저리 만지는 미용사의 표정이 어둡다. 하지만 그녀는 별말 없이 나의 머리를 숭덩숭덩 자르고 능숙한 손길로 도르륵 머리카락을 롤에 감았다. 시계를 몇 번 보고는 그대로 나를 두고 카운터에서 투닥투닥 컴퓨터를 하다가 무심하게 다시 한 번 머리를 감겨주고는 드라이기로 꼼꼼히 말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어깨에 닿지 않는 발랄한 파마머리로 변신했다.

20센티의 머리카락이 품은 시간을 오늘 나는 싹둑 잘랐다. 긴 머리가 불편하면서도 자르지 못한 것은 어쩌면 그 시간을 내 몸에서 잘라 버리는 것이라 착각한 건 아닌지. 이미 긴 머리카락이 스스로 시간을 정리해내고 있음을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머리가 가벼워졌다. 그러니 몸이 한결 거풋해졌다.



+덧 붙이는 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생각하다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그냥 써 내려왔다. (욕심을 내자면)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몇 가지 굵직한 글쓰기 프로젝트가 마음속에 있지만... 나의 일상을 길어 올려 가계부 적듯 부지런히 종이 위에 옮겨보는 것부터 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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