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생활글1 26화

이별례: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생활글_20171203

by 히요

pm 5:00
다음 날의 출근을 위해, 몇 가지 반찬을 만든다. 냉동실에서 잔멸치를 꺼내 후라이팬에 우수수 부어서 기름을 두른 뒤 불을 켜둔 채, 파와 고추를 조금 썰었다. 그 사이 깻잎 한 뭉치가 남아 있길래 간장, 물, 설탕을 섞은 양념을 부어서 깻잎장아찌를 만들었고, 무채를 썰었다. 냄비를 하나 더 꺼내서 무채와 (큐브로 얼려둔)다진 마늘을 넣고, 그 위에 (외숙모 할머니에게서 받은) 들기름을 둘렀다. 첫 번째 냄비에서 파삭파삭 멸치가 튀겨지는 소리가 난다. 나는 ‘휘휘’ 저으며 빠르게 간장과 고춧가루, 청주, 설탕, 참기름을 더했다. 보통은 간장으로만 간을 하거나 고추장을 섞어서 멸치 볶음을 하는데 오늘은 괜히 고춧가루를 뿌렸더니 매운 냄새가 온 집에 퍼졌다. 에이-취! 기침을 하면서 멸치 볶음을 완성했고, 바로 옆 냄비에서 달달 볶은 무채는 뚜껑을 덮어 푹-익혔다. 투명해질 때 쯤 참기름과 국간장을 더해서 간을 했고 오늘은 무나물을 성공했다. 무로 할 수 있는 요리가 한 가지 늘었음에 뿌듯해하며 다음 냄비를 불에 올렸다.
(메모-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재료들과 매일 이별하며, 새로운 음식을 먹고 있다.)
지난 2주 동안 주말마다 김장을 했다. 내가 가진 김치냉장고는 작은 편이라 틈틈이 얻어 둔 김치만으로도 꽉 차있는데, 올해 새로 담은 김치를 한 통씩만 받아 왔는데도 해묵은 김치들이 갈 곳을 잃었다. 그래서, 내일 저녁은 참치김치찌개로 정했다. 멸치와 다시마 그리고 말려둔 파뿌리를 물에 넣고 육수를 우린다. 김치와 참치를 센 불에 볶다가 우려낸 육수를 더하고 양파, 파, 고추를 숭덩 집어넣고 팔팔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 액젓으로 간을 하고, (며칠 전 티비에서 봤던 대로 ‘완전히 익지 않은 김치’로 찌개를 끓일 때 넣어 준다는)식초를 한 스푼 넣었다. 물이 1/3 가량 줄어들 때까지 끓였다. 아-근데 원하는 맛이 아니다. 아쉽지만 먹을 수 밖에.
(메모-김장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였다는 보상같다. 한 해를 잘 보내고 이별하는 때, 매년 하게 되는 일. 예를 다하여 겨울을 준비하는 일)

pm 6:30
저녁을 먹었다. 엄마가 끓여 준 배추국을 다시 끓여 식탁에 올리고, 방금 만든 멸치 볶음 한 스푼, 무나물 두 스푼, 그리고 시모가 만들어 주신 연근조림 2개, 조미김 하나, 김장 김치를 종지에 조금 꺼내고 밥을 펐다. 너무 단촐하지만 두 사람이 배불리 먹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식사 후,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슬슬 하면서 부엌에 나 혼자 남았다. 이제 시작이다! 이별을 위한 요리를 준비하는 시간!
(메모-식탁 위 식탐을 줄여보았다. 나만 좋아하는 반찬만 올리는 이기적인 행동을 자제하니, 먹고 난 그릇이 깨끗하다. 이런게 밥상 위 평화인가)

am 11:00
내내 생각했다. 마지막 모임에 함께 먹으면 좋을 음식이 무엇일까? 하고. 버스를 타고 찜질방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검색했다. ‘사모사? 멘보샤? (지난번 문학의 곳간때 만들지 못한)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어볼까? 또르띠야?’ 새로운 메뉴로 떠올리려니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토성동에 있는 찜질방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대중 목욕탕에 갔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목욕탕에 갔었던 정인씨 생각이 났고, 뜨뜻한 온탕에 몸을 푹-담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찜질을 했다. 외국으로 몇 달 여행을 갔다 오면 꼭, 목욕탕에 들러 몸을 데우고 깨끗이 씻었다. 그래야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었는데, 어제의 몸과 그렇게 이별의 예를 갖추었던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2017년이 참 길게 느껴졌는데, 12월 첫 주가 되어서 나는 목욕탕에 다녀왔고 지나온 시간과 잘 이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냉장고 안의 재료를 써서 만들기로 정했다.

pm 8:00
이사하기 전에 얻어 둔 고구마를 박스에 넣어 둔 채로 베란다에 방치하였다. 썩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도마와 칼을 들고 껍질을 까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니 제법 양이 갖춰져서 스틱 모양으로 썰었다. 그 위에 기름을 둘러서 잘 섞어 준 뒤 에어후라이기에 넣고 20분을 돌렸다. (기름없이 튀길 수 있는 기계인데, 기름을 바르지 않고는 영 맛이 없는 재료가 많아서 이렇게 따로 기름을 발라서 넣는다. 그래도 튀기는 것 보다는 훨씬! 편하다) 감자를 8알 흙만 씻어서 냄비에 넣고 물을 부었다. 설탕 한 스푼, 소금 한 스푼을 뿌리고 뚜껑을 덮어서 센 불에 삶았다. 이것 역시 30분 가까이 시간이 걸려서, 다른 재료부터 손질했다. 양파는 채 썰어 찬물에 담궈서 매운맛을 제거하고, (올 여름에 담아둔)할라피뇨 피클을 송송 썰었다. 사용하지 못해 남아있던 베이컨을 잘게 썰어 볶아두고, 계란을 3개 삶았다. 식초를 몇 방울 떨구는 것을 잊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 띵- 에어후라이기가 요리를 마쳤다. 고구마 튀김은 성공이다. 큰 볼에 삶은 감자와 삶은 계란을 넣어 식힌 뒤 으깨어 두고 할라피뇨, 구운베이컨, 양파, 마요네즈, 소금, 후추를 넣고 전부 섞었다. 적당히 진득한 샐러드가 완성되었고, (어제 친구가 만삭의 몸으로 우리 집에 들러주었는데, 집들이 선물은 저어했더니 빵을 한보따리 사왔다.) 모닝빵에 며칠 전 맛이 궁금해서 사둔 선드라이토마토 페스토를 바르고, 계란감자샐러드를 듬뿍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빵이 모두 10개. 내일은 모임에 몇 명이 오려나? 냉장고에 사과 한알은 그냥 들고가고. 가만있자, 내가 직접 삭힌 음식 한 가지를 더 챙겨가면 좋겠다 싶어서 봄에 담은 ‘우메보시(일본식 매실절임)’를 세 알 챙겼다. 핑그 빛으로 잘 물든 우메보시랑 맥주랑 마셔야지! (오이지를 보면 내 생각이 날 지도 모른다는 설혜씨의 말을 나는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군밤을 꿀에 버무렸다. 꿀밤.
(메모-내 부엌엔 항상 재료가 있는 편이다. 버리지 않고 남기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요리를 해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기본 채소와 소스, 면류, 쌀통엔 쌀을 항상 가득, 계란과 김과 김치와 라면을 쟁여두고, 조미료는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 둔다. 결국, 먹지 못해 버리는 것이 있긴 하지만 차츰 줄어들고 있으니 앞으로 10년만 더 살림을 살면 지금보다 베테랑이 될 것이라 믿으며 곳간을 충분하게 채워두고 살기로 한다.)

2017.12.04. am 12:00
새벽이다. 마지막 준비가 남았다. 지금까지 나의 ‘이별례’는 언제나 ‘나눠먹는 음식’이었지만, 우리는 글을 써서 만났으니, 좀 길게 적었다.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어서 그렇다. 혼자 쓰는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매주 힘을 북돋아 주었고, 부족한 글을 꼼꼼히 읽어 준 동료들에게 너무 고맙다. 끝을 알고 준비하는 이별은 오히려 기꺼이 즐겁다. 헤어지는 마지막 일주일까지, 어떻게 헤어지면 좋을지, 나는 그동안 어떤 이별을 해왔는지 짚어 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주제를 정해준 대성씨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내일의 잔치를 기대하며 저는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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