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도 고추장도 담고 김장도 해요. 커피콩도 후라이팬에 그냥 볶아 마시죠
두 계절은 지나야 먹을 수 있는 잔뜩 짜거나 시큼하거나 단 음식들은 생생한 맛과 전혀 다른 매력이 있는데, 조금씩 베어 먹어도 충분하며, 두고두고 먹으니 간편하고, 마음은 항상 든든하다. 어쩐지 소화도 잘 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깜빡 잊고 그것이 있었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지금 함께 하는 우리들에 집중하게 될수록 나는 정반대로 오래 묵혀야하는 된장이나 고추장, 김장김치처럼 지금 당장이 아니라 조금 기다려야하는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상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는 ‘내가 만든 맛’에 대한 의지가 좀 더 심화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보다는 생생한 현재에만 집중하느라 나도 모르게 놓치고 있는 오래두어야 더 빛나는 것들에 대한 갈증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것, 배워서 익힌 어떤 것이라기 보단 느낌적인 느낌, 즉흥적인 움직임 이면에 항상 부족하게 느낀 전통과 기본을 원하는 마음 같은 것.
2월 즈음엔 장을 소독하고, 물을 길어다 메주를 소금물에 잘 묵혀 된장을 담고, 계절마다 신선한 채소로 장아찌를 담았으며, 무른 과일을 떨이로 사다가 쨈을 만들었다. 쌀쌀해지는 겨울이 올 때면 잘 익은 배추와 무를 사서 배추김치, 백김치, 동치미, 채식김치를 담아보았다. 곰탕 국물을 넣어 시원하게 맛을 낸 그때의 김치 맛이 아직도 생각난다. 심지어 재개발로 곧 이주해야하는 여름에 우리는 매실청을 담았다. 더 이상 함께 나눠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물론 동치미는 너무 짜게 담아 먹지 못하였고, 같은 비용에 힘들여 만들어야하니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이 자본주의 세상!) 너무 적게 담아 금새 다 먹어버려 아쉬웠던 기억도 있지만 즐거웠다. 가끔 마켓에 나가거나 다방에 놀러오는 친구들에 조금씩 포장해서 팔았고 소소하게 월세에 보탬이 되었다.
직접 만들어 먹는 재미, 항상 다른 맛을 보는 재미, 같은 값이면 함께 만드는 재미까지! 직접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친구들 사이에서 ‘직접’ 전도사인 멜리언니로부터 생두를 후라이팬에 볶는 방법을 전수 받은 후로는, 줄곧 생두를 직접 볶아서 드립커피를 내려마셨다. 커피 한잔에 3,500원이라면 생두가격은 1/10 이니, 경제적이기까지 해서 나중에는 야매로 볶은 커피콩 100g을 6,000원에 팔기도 했다. 판매 수익의 10%였던가? 모아서 강정마을을 후원하는데 보탰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정치적일 수 있다는 작은 깨침은 모든 것을 직접 해 봄으로써 비로소 생활에 깊이 자리 잡았다.
나의 현재는 이전 경험의 영향 아래에 있지만, 7년이면 몸의 모든 세포가 새로 재생된다고 하니 7년 전 생각다방 산책극장을 열었던 그때의 내 몸의 세포는 지금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의 선택과 반복 속에 생긴 생활 습관이 내 생각과 행동을 내일로 이끌어주고 있다. 그 시절 함께 해 본 일들은 여전히 내 삶에서 어떤 시도를 해 볼 수 있게 용기를 준다. 굳이 안해도 사는 데 지장없는 일들도 놓치지 않고 계속 해보고 싶다.
생활이 예술이 되려면 직접 기술의 장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 쓸데없고 쓸모없는 일부터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