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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요 Sep 16. 2023

백수,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않았으므로

 2014년 봄,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각자의 삶의 경험으로 채워 넣을 <우리들의 사전>을 만들고자 하니 친구와 동료들의 삶의 방식에서 길어 올린 어휘를 설명하여 회신해 달라는 <생활예술모임 곳간>의 요청이 있었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고유한 어휘로 ‘백수’를 꼽아주었는데, 그때는 내가 쓰는 말이 무엇인지 일일이 따져 생각할 겨를이 없을 만큼 매일 새롭고 재밌는 일들이 넘쳐났고, 뒤를 돌아보는 시간은 불필요하다고 여겨질 만큼 순간에 충실했기에 아마도 끝내 답장을 쓰지 못했다. 그 후 어느 때, 장소의 시간이 멈추었고 나는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헤매는 몸이 되었다. 밖으로 나설 수도 없고 지난 시간을 넉살좋게 회상할 수도 없이 마무리 짓지 못한 마음, 이름 없는 마음을, 미움과 분노로 어찔한 나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 ‘조금만 더 자고 싶어’하는 나와의 싸움은, 아침 7~8시에는 등교를 해야 했던 학창시절부터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의심 없이 자책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도 늦었다’는 누가 정해놓은 지도 모를 기준에 나를 맞추던 삶이 싫었다. 원 없이 늦잠을 자겠다! 고 선언한 방학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그리고 스스로 생활양식을 구축해나가야만 했던 20대가 되면서 나는 다시 의구심을 품었다.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건가?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라는 생각 이후에 생략된 말들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나는 곧 어딘가 취직을 해야 하니까 다시 쳇바퀴에 올라타야 하는 순간이 올 거야. 그러니까 그전까지만 이라도 이렇게 자유롭게 마음껏 늦잠이라는 호사를 누려야지!’ 그런데, 눈치 보며 시작한 하고 싶은 대로 해보는 생활은 그럴듯하게 백수다워졌다. 


 스스로를 백수로 칭하며 “백수란 자고로...” 따위의 말들을 서슴 없이 하던 때, 여러 번 ‘백수’를 혼자서 검색해보았다. 츄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오징어 다리 하나를 잘근잘근 씹으며 동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사람, 한량이라 부를 만한 남성들(여성은 백수를 떠올릴 때조차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다). 이것이 틀에 박힌 백수의 모양새였다. ‘백수는 나이를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온갖 짐승을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아무 하는 일 없이 노는 건달을 말하는 것이냐?’ 일반적인 백수에 대한 이해를 한데 모은 이 한 문장에 나는 묘한 반발이 일었고, 내가 백수의 이미지를 바꿔 보겠다고 으밀아밀 으스댔다. 


 나를 먼저 이해해야 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돈만 벌기위해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구직활동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파트타임 일은 주 5일 하루 6시간을 해도 겨우 50만 원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지만 그만큼 여유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돈은 아껴서 살면 되는 일이었다(단, 그러기 위해선 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전셋집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빚이 없어야 가능하다. 빚만 없다면 아껴서 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 미술학원에서 취미미술을 배우기도 했고, 경험해보고 싶어 영화 제작 워크숍이나 연극 아카데미를 수강하기도 했다. 부지런히 배우고 부딪히고 맞섰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나를 백수라 소개했다. 


 서울에 계속 살 수 없었다. 커다란 건물과 문화와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한 다채로운 삶의 도시였지만 숨 막혔다. 너무 바빴다. 점점 소외되었다. 반지하의 좁은 방엔 햇살이 전혀 들지 않았고, 나는 자주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짧은 1년의 서울살이는 피로를 남겼고 나는 부산으로 왔다. 작지 않은 두 번째 도시는 생각보다 덜 복잡했고, 오히려 숨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왜냐하면, 아직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으니까. 그런 도시이기에 적당한 긴장감과 인구밀도로 그다지 허전하지 않은 이 곳이 백수생활을 영위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지역에서 청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위축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지방은 훨씬 더 청춘이 서식지를 이루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4년 전, 4명의 친구들과 함께 공동주거 생활을 2년 정도 했다. 그곳엔 잘 사는 집에나 있었을 것 같은 둔중한 6인용 식탁이 부엌 가운데 놓여있었다. 아침이라 하기에 너무 늦은,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아침시간이었던 정오의 모임. 누구하나 늦게 일어났다고 눈치 주는 이 없고, 꼭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강요도 없는 편안한 아침. 지금까지도 내가 기억하는 가장 즐거운 아침 시간이다. 한 사람이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으면 슬금슬금 방에서 나와 한 잔 얻어 마시고, 주제 없는 대화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나누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약속이 있으면 그제야 씻고 나설 준비를 시작하곤 했던, 칠산동 낡은 주택에서의 함께 살기. 느슨한 생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다 주체적으로 하루를 꾸려 살았고 작은 행복을 충분히 누렸던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백수의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손’은 바쁘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자유롭고 무엇이든 손에 쥘 수 있다. 손을 내밀어 타인의 손을 잡을 수도 있다. 빈손은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받쳐 들 수도 있고, 요리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수도 있는 것이 백수의 손이다. 가진 것이 없어 매 순간, 진심으로 진지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생존의 기본이 되었다. 돈이 들지 않는 불편함은 생활의 일부여야 한다. 그래서 생활이 예술이 될 여지가 있고, 노동인지 놀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계에 있지만 그것이 백수의 삶이라 여기며. 무엇이 되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백수가 백수인 채로 아름다운, 존재하는 백수로 살아야 한다. 모두에게 필요한 백수라는 시간이다. 요새 유행한다는 라이프 스타일들(예를 들면, 미니멀리즘, 휘게, 소확행, 라곰, 오캄 같은)은 하나같이 소박하고, 소소하고, 여유롭고, 적당하고, 고요하며 한적하다. 이것은 내가 생각해 온 백수의 생활양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실천을 징검돌로 놓으며 살아보는 수 밖에는 없지만, ‘백수’란 한때의 한량한 시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평생을 두고 실험해 보아야 할 삶과 같은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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