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가장 빛나는 때가 있다.

내 인생 가장 찬란한 순간, 그 찬란한 바다.

by 언디 UnD

도시에서의 빛은 대체로 정오와 그 이후 몇 시간 동안 가장 밝다. 이에 비해, 도시의 일몰은 찬란하기보다는 조용히 저물어 가는 아름다움이 있다. 와글와글 정신 없이 시끄럽다가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는 저녁 시간과 비슷한 얼굴이다. 어쩐지 제주에서는 도시의 공식이 들어맞지 않는 듯하다. 제주의 가장 찬란한 순간은 아마도 일몰 전후 한 두시간 정도. 한낮의 시간동안 태양은 다른 것들을 비추느라 자기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눈이 부시게 밝다는 느낌은 있지만 해를 똑바로 쳐다볼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슬몃 기울어질 시간이 되면 사람들의 시선으로 들어와 불타는 자기 스스로를 한껏 보여준다. 이전과는 다르게 이 시간만큼은 바다도 아름다운 푸른 빛 자신의 색깔을 지우고, 온몸으로 태양을 비추어 낸다. 이 장면에서 멈추어 서서 한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건 나 뿐만이 아니겠지. 그렇게 거무스스레해질 때까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결국 정면으로 만끽하는 제주의 일몰. 그렇게 깜깜해지고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적막한 어둠에 휩싸여 조용히 침묵하는 제주.


나는 어떤 한 대상을 파고들어 정보를 최대한 끝까지 습득하는 것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얼마 전에는 한참 기사면을 가득 채우던 그녀, 오스카 상을 수상한 대배우 윤여정이 정보 탐색의 대상이었다. 여러 자료들 중에서 오래전 힐링 킴프라는 프로그램에서 노희경 작가가 언급한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윤여정이 고두심 같은 멋진 엄마 역을 자기에게는 왜 안주냐고 여러 번 이야기 했었다고 하면서, 노 희경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한테 윤여정은 여자이지, 엄마는 아니라고. 늙은 여자도 아니고, 분냄새가 나는 여자 같고, 멜로를 젤 잘할 것 같은 배우라고.

역시 작가는 작가다. 그 말에 삐죽거리는 윤여정의 마음이 나에게까지 스며들었다. 나에게 있어 저렇게 깊이 탐구하게 되는 상대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에게 저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퍼뜩 제주에 대한 내 마음도 조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 잡고 배 타는 곳, 그런 뻔한 어촌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제주. 아니, 그런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은 제주. 나에게는 그게 제주다. 가장 빛나는 때를 모두에게 경험하게 해주는 제주라서, 나는 제주를 사랑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그 때, 제주의 빛 아래에 있으면 나도 그 순수한 푸름과 매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같은 황홀한 착각에 빠진다. 제주의 풍경 속 사람은 다 아름다워 보인다.

이런 감정은 여행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일시적인 낭만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제주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게도 삶을 여행처럼 사는 여유와 기쁨이 느껴진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오고 가도 제주는 닳고 닳아 그저 그런 곳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실 여기서 사는 건 어려워, 같은 현실적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나와 당신이 본 그 빛으로 사람들을 황홀하게 비춰주는 낭만 여행이 계속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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