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천천히, 조금씩 오고 있다

2021. 제주 4월 여행 프롤로그

by 언디 UnD

2021년은 직장인에게 정말 악독한 해다. 왜냐? 평일 공휴일이 없어도 너무 없기 때문.

(*총 64일 중 10일만 평일에 공휴일이라고 한다.)

상반기 중 몇 안 되는 기회가 3월 1일, 5월 5일 어린이날, 5월 19일 석가탄신일인데, 다소 생뚱맞게 4월에 제주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3월 초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제주가 너-어무 춥다. 경험상 제주에서 겨울 칼바람 몇 번 맞고 나면 뇌 속까지 얼얼해지기 때문에 애초에 옵션으로 두지 않았다. 다음으로 5월 5일. 어린이날을 끼고 연차를 사용하면 연휴로 쉴 수 있지만, 그런 공휴일은 나름 성수기로 분류되기 때문에 어딜 가나 붐비고 항공권 값도 비싸지기 마련이다. 5월 19일도 딱히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좀 더 빨리, 꽃피는 계절에 제주를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 이런 심산으로 미리 1월 정도에 4월 13일 출발 표를 끊어두었기 때문에 항공권 가격도 저렴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기다리던 3월 말 경,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예년보다 개화시기가 급하게 시작되어 이미 유채꽃과 벚꽃은 만개했고, 4월이 시작되면서 하나 둘 져 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하, 꽃은 포기해야겠군.'

제주의 날씨와 온도에 대해 나름의 경험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난 멀었나 보다.


여행이 시작되기 2주 전부터는 일기예보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미묘하게 바뀌는 날씨와 온도를 하루하루 맘 졸여가며 복권 긁듯이 지켜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비가 오다 그친 뒤 도착하게 되는 첫날을 제외하고는 다행히 모두 맑거나 구름 낀 정도였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비 오는 날은 없었다. 좀 수상한 것은 출발 전날 서울이 급격하게 추워져 두꺼운 옷을 입고 집을 나서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하루일 것이라고 쉽사리 예상했던 것이 함정이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어떤 자연의 현상도 수치화한 것으로 완전히 이해될 수는 없는 것이다.


최고 온도가 17,18도를 오가면서도 때때로 추위가 몸으로 파고든다는 것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이 모든 것은 여행자가 제주의 바람을 잊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세 가지가 많아 삼다도라는 제주, 그중에서도 바람이 참 많은 곳이라는 것. 그 바람 앞에서는 어떤 기세 등등한 존재도 몸을 움츠리고, 휘몰아치는 위세에 그저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 도착한 봄이라 굳게 믿은 4월에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시간을 보냈다. 코 앞에 다가와 있는데, 만질 수 없는 햇살처럼 그렇게 봄이 야속했던 여행의 시간. 나는 기대하고, 자주 실망하지만 계속해서 '그곳'을 찾게 된다. 크게 절망하고 작은 것에 기뻐하며, 단순한 것에 만족하게 되는 나의 제주 여행. 같은 장소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때그때의 다른 감정과 느낌을 또다시 기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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