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도, 생각도, 기분에도 청소는 계속 필요하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꿀꿀한 기분으로 나는 침대에 오래도록 누워있었다.
앞으로 평생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면 이렇게 계속 있고 싶은 기분에 잠겼다.
피로의 결과인지, 병의 증상인지, 정체 모를 잠을 한참 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눈이 떠지자 멍했다. 어떻게든 이 무겁고 답답한 기분을 씻어내 보려고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일단 씻자.'
침대에서 지척인 화장실에 들어와 샤워실 문을 닫으니 바닥과 벽이 맞닿는 모서리를 따라 줄눈에 거무튀튀한 물때가 끼어있는게 보였다. 매일 같이 씻으러 들어오면서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게 이상할 정도로 오래도록 거기 있었던 모양새다. 닦고 닦고 또 닦아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상존하는 그것을 보며, 자잘한 스트레스가 느껴지는 동시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습하고 갇혀있는 환경인, 안방 화장실 모서리 부분에서 갑자기 시작되어 버린 저것에는 사실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 자연스럽게 생겨나서, 그냥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아무도 저렇게 될 때까지 관심쓰지 않았을 뿐이고, 그렇게 얼마를 더 그곳에 있을지, 닦아져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일이 된 것이다.
자연의 속성은 그렇다. 그대로 두면 그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 어떠한 외부적 환경에 의해 때가 끼고, 녹이 슬고, 닳고 부서진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사람의 삶에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건 없다. 흘러가는 물결에 몸을 내맡기거나 하는 것은 그다지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의 건강한 지속은 자꾸 껴버리는 물때랑 비슷하다. 수시로 살피고, 관심있게 들여다보고, 세제와 솔을 가져오고, 박박 벅벅 부지런히 문질러 주어야 원래 그 상태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른 척 하기 쉽다. 귀찮으니까, 혹은 내일, 나중에 해야지. 같은 이유를 대면서, 언제든 기회가 똑같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과의 갈등이나 관계의 깨어짐은 지극히 큰 공포이고 스트레스 요인이다. 소중한 만큼 기대한 것이 많았을 것이고, 또 기대한 만큼 호혜적인 희생을 감수해왔다고 느낄 것이고, 각자 자신이 베푼 배려와 받은 배려를 계산하며, 내 것만 크게 느껴질 때 스스로를 연민하면서 슬픔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인간은 왜 갈등을 대가로 지불하면서까지 이기적임을 선택하는 것일까. 철저한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눈이 멀어버리기도 하고, 온전한 선택을 할 수 없는 경우도 태반인 데 말이다. 불편한 진실은 나 조차도 나 자신을 벗어나는 생각은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기심에는 타협이 없다. 그저 내가 다른 이를 배려할 수 있는 유일한 최대한의 방법은, 나 아닌 누군가 조금 더 그 일을 능숙하게 한 사람을 떠올리며 흉내를 내는 것 뿐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내가 비난하는 그 이기심의 함정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미치게 한다. 동시에 관심받지 못한 내 감정은 나를 무너져 내리게 한다. 한 평생 스스로를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믿어온 나는 이제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나를 내맡기고 그저 가만히 있는다. 어떤 것에도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맨몸으로 마주해서 당장 해결이 안되는 문제들이 있다. 그런 문제에 계속 다가가서 손 내밀고, 파헤칠 수록 상처를 입는다. 너무 뜨거운 화염 같은 것이다. 차라리 내버려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시간이라는 만병통치약이 있으니까. 그런데 까다로운 점은, 그 불씨가 없다며 무시하고 고개 돌리거나, 그 자리를 완전히 떠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아마 주변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소리도 없이 집어삼켜져 소멸될 것이다. 그렇기에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끝까지 바라보아야 하는 책임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있다. 내 몸이 불타지 않으면서 불을 끄는 방법을 알아가는 일, 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너무도 어렵고 달성 가능한 수준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진정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어어어른이 되려면, 나 자신과 다른 이에게 어느 정도로 거리를 두어야 하고, 얼마나 거리를 좁히고 가깝게 느껴야 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것도 핑계댈 수는 없다는 것. 나의 선택,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말과 행동 모두 내 선택이고, 다른 이가 유도했거나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러했다 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샤워기 물 속에 충분히 나를 담그고, 따뜻한 물로 씻어내리니 기분이 아주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치고 물 때 위에 욕실용 세제 스프레이를 뿌렸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 후에 다시 와서 솔로 부지런히 문지르고 물로 흘려보내면 말끔한 상태가 될 것이다. 흐려진 감정, 어두워진 마음도 이렇게 되면 좋겠다. 조금 더 나아진 나를 상상할 수 있다면, 다른 이에게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이전보다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조금 더 지혜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없이는 단 한 순간,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당장은 아니라도, 수많은 질문들에 하나 하나 답을 내려갈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