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핑계가 여러 개 필요한 무력감 속에서

by 언디 UnD

이제는 일상을 완전히 떠나야지만 쓸 수 있게 돼버린 것 같다.


일상의 나를 그대로 쓰기엔 별스럽지 않은 날 것의 적나라함이 부담스럽고 다른 세계를 꿈꾸기엔 상상력이 가난해져 버렸다.


그간 혹시 내가 일종의 우울증에 걸려버린 것이 아닐까 싶은 시간을 보냈다. 브런치 앱을 켜 보기도 했지만, 떨어지지 않은 구독자 수에 거짓 안도감만 채우고 이내 다시 닫아버리고 만 날이 한 달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아무도 동기 부여해주지 않는다. 결과물이 나에게 어떠한 보상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왜 쓰는 걸까?


나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 걸까?

그다지 정보성 글도 아니고, 직업적 전문성이 드러나는 글도 아니며, 아주 특별한 삶을 살아내고 있지도 못한데, 결국 나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써왔던 것 같다는 부끄러운 결론에 이른다.

자신의 일시적 만족과 배출 그 자체만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면 다른 것으로 만족하고 배출하면 될 것이 아닌가 자조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다. 어떠한 내용으로든 매일 8시간을 담보 잡힌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기에 매일 주어지는 24시간도,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내 노동의 인생 경력도 1/3은 내 것이 아닌 것에 사용할 것을 계약하고 말았다. 언제든 내려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아무 때나 내려놓을 수도 없어서 속이 타는 기분이 든다. 잠도 충분히 잔다면 하루 평균 8시간 정도는 자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오롯이 자유로운 기회는 날마다 33.3%에서 시작된다. 벌써 이마만큼 가능성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뺏기고 남은 것은 낭비하기 죽어도 싫은 시간인데, 허투루 흘려보내고 머릿속이 멍해진다.


진정 우울한 삶은 죽음을 기다리는 삶일 것이다. 의미를 찾아야 할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있거나, 모른 척 고개 돌리는 삶일 게다. 그렇게 똑같은 매일과 매 순간을 보내다 보면, 계속 그 모습 그대로 반복되어야 할 당위성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래도록 깊은 우울에 침잠된 사람에게 죽음은 아픔도 슬픔도 아닌, 지루함의 종말일 뿐이다. 상대적인 나음better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 인간 종류라면, 죽음도 더 나은 선택으로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 공감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말이다.)


또 한편, 우리 모두는 죽음을 기다리는 삶을 산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들은 시작만큼이나 끝을 기다리고 있다. 그 끝을 기다리는 과정이 모두 같지 않겠지만 말이다. 언제일지 모르는 그 끝을 무의식적 중에 의식하며 각자가 가진 에너지와 색깔대로 주어진 시간에 대응하며 삶을 소모한다. 과거가 될 시간을 현재로 의식하며, 미래를 바라보며 예측하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죽음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할까? 시간은 너무 짧고, 또 인생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데.


과거를 반추하며 시행착오를 피하고, 현재에 집중하며 지금을 충만히 누리고, 미래를 꿈꾸며 대비해야 할까?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살아도 그냥 주관적인 내가 좋으면 된 걸까? 더 큰 관점으로 다른 사람들이나 더 큰 단위의 무언가에 도움이 되고 기여하는 삶이 보람될까?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고 답을 내리려 했던 문제들이 나에게 코웃음을 치는 것만 같다. 나름대로 찬찬히 세웠던 원칙들이 나를 패대 기치고 비웃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마주한 문제들에서 완전히 무능력한 걸까, 돌파할 용기가 없는 것일까, 좋은 것들을 부분적으로만 취하려는 안일함에 빠진 걸까.


똑똑한 사람들은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누구도 어떠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만 배설하고 만다. 나는 점점 더 멍청해지고 있고, 그래서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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