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와 사과

모두가 할 수 있는데 안하려고 하는 것

by 언디 UnD

회사 생활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실수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신입 사원일 때 처음 한 달 혹은 더 길게 일정 기간은 실수하러 출근하는 것이다. 단순히 실수만 해서는 안되고 그 실수를 통해서 질문하고 배우고 혼나고(!) 익혀서 노하우와 스킬을 갖추게 되는 것이겠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엑셀형 인간이 아니다. 자료나 파일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도 아니고, 책상 위나 컴퓨터 바탕화면도 자연스레 어질러져 있는 편이다. 직설적 말하면 '철저한 꼼꼼함'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꼼꼼함을 포기했다고 해야할까. 괜한 완벽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삶을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었다는 건 핑계려나. 90% 정도로 꼼꼼하면 된다는 나의 마음 속 수치는 언젠가부터 기본 설정값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굉장히 이성적인 성향으로 비춰지는 나는 나의 이런 성향을 대체로 잘 숨기고 아닌 척 하지만, 때로는 내 비밀이 업무적으로 드러날까봐, 아주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 성향과 무관하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게 된다. 신체적인 컨디션이나 마음의 상태도 그날 그날 그때 그때 다르고, 주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있기도 한데, 사람의 뇌는 이런 내/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도록 민감하게 프로그래밍 되어있다. 어떤 때는 내가, 또 다른 때는 다른 사람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중차대한 사안에서 심각한 실수를 하는 것을 볼 때도 있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인 경향을 고려했을 때 실수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또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이야기할 에피소드는 바로 실수와 사과 영역에서의 내로남불에 대한 것이다.

엑셀형 인간이 아니지만, 엑셀을 주로 다루어야 하는 업무를 담당할 때였다. 결과물을 넘긴 뒤에 이해관계자로부터 오타가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업무관계자와 내용을 두고 메일이 오가면서 수정이 여러번 있을 수 있는 업무의 특성 상 별스럽지는 않은 경우였으나, 속으로는 민망하기도 하고 뜨끔했다.

'한번 더 체크하고 보냈어야 했는데..'

'한번에 많은 양을 처리하느라 눈이 깜깜했구나..'

'한동안 빼먹었던 맞춤법 검사를 반드시 해야겠다.'

등등, 갖가지 생각이 머릿 속에 오가면서 손으로는 바쁘게 수정을 진행했다. 단순오타가 난 것 같아 죄송하다. 바로 수정했으니 확인해달라는 회신과 함께. 그렇게 문제 없이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던 업무였는데 . .


며칠 후에 우리 팀 리더에게 메일이 왔다. 바로 단순오타 건으로 메일을 주고 받았던 담당자의 리더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그 팀 리더의 말에 따르면, '최근 업무 내용을 보니, 그 쪽 팀에서 야기한 수정 건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은데, 업무 프로세스를 보완하는게 어떨지'라는게 핵심 메시지였다. 그리고는 단순 오타건을 포함해서 반드시 수정이 필요했던 다른 내용들까지 한번에 리스트업해서 메일 말미에 표로 붙여 '실 사례를 보내드리니 참고하시라'는 친절함까지.

점잖게 우리 팀의 문제에 대한 보완책을 제시해준 것 같지만, 타팀의 리더가 팀의 업무 내용에 대해 피드백 할 뿐 아니라 프로세스까지 바꾸라고 이야기하는 건 월권에 가깝고, 그가 굉장히 무례한 태도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실무 담당자에게도 단순 오타에 대해서 사과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저렇게까지 반응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고, 모든 관련 담당자를 수신인에 넣어 한 개인인 나를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그 팀 리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그 일을 야기한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당황스러웠다. 괜히 우리 팀 리더에게 죄인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일을 꼬바지른 실무 담당자에게도, 그 팀 리더에게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같은 팀의 다른 담당자가 또 다른 메일을 보냈다. 나는 이미 그 전 일로 인해 많이 곤두서있었고, 더이상 책잡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집중을 최고조로 올리고 있던 상태였다. 아니, 사실은 메일을 읽는 것조차도 괜히 두려웠다. 그 담당자 말로는 내가 담당한 부분에서 필요한 내용이 반영이 안되었다고 하는데, 두 눈을 뜨고 봐도 그 '분'이 보낸 자료에는 내가 누락한 부분이 없어보였다. 몇번 더 찾아보고, 확인해봐도 여전히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분이 뭔가 착각하고 항의에 가까운 메일을 보낸 거였다. 점잖게 제 선에서 잘못한게 없으니 다시 확인해보시라고 답장을 했고, 확인 후 결국 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 담당자는 자신의 실수와 무례함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고 결과적으로 일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자 메일을 통한 대화를 종료했다.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무지는 죄악이라는 것, 그리고 무지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은 없구나, 깨달았다. 실수와 사과가 모두 내 몫이 되고 만 과거의 나는 서러움을 느꼈다. 잘못은 남이 하고, 사과는 내가 해야 하는게 회사생활이라면 빨리 끝내는 게 좋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끔찍한 상황에서는 눈을 가리고 못본 척 할 수 있다지만, 마음도 그렇게 눈을 감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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