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왜 휴가를 떠나지 못했나

휴가를 갔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였다

by 언디 UnD

2020년 2월 경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고, 2020년 하반기 경 재택 근무가 허용되었다.

눈치밥 먹으며 감질나게 부분적으로 시행되던 재택이 전 직원으로 확대되고 나서야, 나를 포함한 팀원들은 공식적으로 재택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까지 거의 1년에 가까운 꽤 긴 시간 동안 재택을 하면서 내 내면 의식 속에는 묘한 심리적 딜레마가 있었다. 하루 빨리 이 지독한 코로나가 끝나기만 바라야 할지, 아니면 코로나 덕분에 재택을 시작하게 된 거니 코로나가 지속되어야 이 편안함도 유지될 지, 어느 쪽을 기대해야할 지 가끔 헷갈리는 것이었다. 각각의 장단점도 너무나 확실했기에 어느 한 쪽도 선택할 수 없는 이상한 우유부단함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이런저런 풍랑이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우리 팀 리더는 단 한번도 재택 근무를 하지 않았다. 원래 리더가 열정과 능력을 둘다 갖춘 에이스 지위의 사람이기도 했지만, 관리자의 입장이라는게 할 일도 많고 위로부터 들어야 하는 지시 사항도 많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왜 리더가 재택을 하지 않을까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한 날은, 아마도 자녀가 있으면 집에서 밥 얻어먹으면서 일하기가 쉽지는 않겠다라고 넘겨짚기도 했다. 아무튼 진실은 그렇게 조용히 묻은 채, 리더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피스 출근을 했다.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저 사람은 뭐지.'

'숙명의 굴레를 가슴깊이 받아들인 사람인가...'


그런 리더가 한번은 길게 열흘 가까이 휴가를 냈다. 나는 퍼뜩 아 이 분도 사람이었지... 를 상기했다. 나는 리더가 휴가 소식을 알리자마자

'그래, 휴가는 열흘 정도 내줘야 맛이지.'라며 신나게 놀고 오실 그 분의 행복을 잠깐 내 것처럼 상상했다.


하루 정도 그는 메신저에 휴가 표시를 해두고 거의 업무 상황에 나타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 급한 메일이 한 두어개 정도 오가는 것 정도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 사흘 정도 지났을까. 아니, 아마 사흘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으레 습관대로 메신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보내고 받는 공식 업무 메일의 양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푹 쉬고 오세요!"라는 팀원들의 응원과 지지가 무색하리만큼, 그는 그 뒤로 늘 우리와 동행했다.


회사의 모든 일은 [긴급] 라벨이 붙어 있었다. 누구나 다 자기의 일이 급한 것이었으며, 각자가 그때마다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스탑이 되버리거나 지연이 되고마는 큰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뒷짐을 지고 물러서서, 아니 굳이? 저게 뭐 대단한 구렁텅인가? 하며 혼자 시니컬 모드를 시전한다. 내 눈엔 회사의 시계에 미쳐 돌아가는 사람들이 조금씩은 다 웃겨보인다. 물론 그들의 노고를 비웃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주객 전도를 넘어서서, 뭐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건가 하는 자괴감 섞인 회의감과 허망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는 것 뿐.


아무튼, 그는 그렇게 요구되는 모든 긴급 사항들을 휴가를 떠난 상태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과 동일하게 수행했다. 중요한 안건을 공유했고, 필요한 스텝을 지시했고, 리더로서 입장을 전달하며 일이 돌아가게 하는 사람으로 역할했다. 그렇다, 그는 일이 돌아가게 하는 사람,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회사가 그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반드시 기대대로 이루어져야 하며, 최소한의 그 일이 아니고서는 그는 필요되어지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걸 그도 매일 느낄지는 모르겠다. 그는 성취감과 자부심에 젖어 행복한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렇다고해도 나쁜 일도 아니며, 욕할 꺼리도 아니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나는 그이처럼 되고 싶지 않다. 그가 부럽거나 그의 성취에 대해 순수한 감탄을 할 수도 없다. 휴가를 떠난다고 말했지만 떠나지 못한 그 이를 연민한다.


그의 휴가 열흘이 끝났다. 그는 처음으로 재택을 신청했다. 내가 오랜만에 출근한 그 날 그는 자리에 없었지만, 그는 늘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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