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야근 안하고 정시 퇴근(혹은 빨리 퇴근)이 어디냐!"
아마 사람들이 나의 회사 생활을 들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 또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저녁이 훨씬 지나도록, 또 밤 늦게까지 일하며 정신적, 육체적 고난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 때로는 땔감처럼 내어준 나 자신에 대한 반대급부로 성취감과 보람에 젖어 몽롱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목적지를 모른채 그저 숨가쁘게 내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시달려가며 열정을 불태우는 삶을 살다보면, 시간 여유가 생겨도 더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피로감에 쩔어 온전히 '나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기 십상이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규칙과 언어가 명백히 주입되고,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익숙해진 내 삶, 그리고 매일의 물리적 한계에 굴복해버린 내 뇌와 몸뚱아리를 보면 하찮고 한심할 뿐이다. 그런 매일 매일이 쌓여 한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1년, ... 그리고 더이상 세지 않게 되는 시간, 그저 돌아보며 '아, 시간이 참 빠르기만 하구나.'하며 푸념하는 시간이 지나기까지 나를 내버려둔다는 것은 정말이지 용서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회사를 위해 나를 헌신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일을 한다는 것과 같은 회사 생활에 의미를 두는 태도와는 별개로 회사로부터 나를 지켜야하는 것도 직장인의 본분이다. 구분해보자면, 전자는 내가 이곳에 자발적으로 머무를 만한 상위의 이유나 목적, 후자는 내가 굳이 회사로부터 받지 않아도 될 나쁜 영향을 소거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없으면 그저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인간, 이중적인 직장인으로 남게 될 거고, 후자가 없으면 몸, 마음, 혹은 둘 다 병에 걸릴 것이다. 둘 다를 균형있게 관리하는 일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면이 분열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임에 틀림 없다.
이런 생각을 적용할 새도 없이, 회사에 속한 나의 하루는 아무렇지 않게도 다급하게 시작된다. 모두가 [긴급]이라는 라벨을 붙이고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문제가 생겼다, 빨리 해달라, .. 징 징 징.
나는 처음에는 나를 향한 요청(혹은 명령, 아니 무엇이건)들이 그저 성가시기만 했다. 혹은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 생각만 할까'를 궁금해했다. 어째서 그들의 인식 속에는 자기들이 해내야 하는 일, 그것에 필요한 다른 사람들의 순응만이 반짝이고 있는 것인지. 하지만 이내 한 발짝 물러서서 그들을 바라보면, 짠한 생각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진실로 무엇이 얼마나 그들 스스로에게 급한 걸까. 두 발 물러서고, 열 발만 물러서면 내가 억지로 맞춰줄 필요도, 또 그들의 악다구니에 감정을 상할 필요도 없음이 명백해진다.
당신은 [긴급]이지만, 사실 나에게는 [중간-긴급], [약-긴급] 정도로 걸러야 한다. 이걸 굳이 드러내지는 않아도, 그렇게 행할 용기가 필요하다. 최대한 신속히 일을 진행되도록 하지만, 모든 일에 앞장 서서 전력 질주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생각해보니 말이다.
아, 네. 그렇군요.
네네, 감사합니다.
네 그러면 어떻게 해드릴까요?
이렇게 진행할까요?
확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런 추임새도 양념도 아닌 말들을 가득히 앞뒤로 붙이며 몇 시간을 집중한 상태로 보이지 않는 공간을 옮겨다 다니다 보면, 눈이 침침해지고 머리는 조금 아파온다. 목과 어깨도 뻐근하다. 아무도 진정으로는 격려해주지 않는 오늘 나의 하루의 업무를 마무리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게 보인다. 아, 근데 어쩌지. 이런 상태로라면 그대로 침대에 드러눕고 싶어진다. 일찍 출근할 수록, 일찍 퇴근할 수 있지만, 일찍 지치는게 당연한 걸까.
눈이 풀리고 스르르 감겨오는 것 같다.
잠깐, 그럼 내 삶은?
책도 읽고, 자기계발도 하고, 사람들이랑 하하호호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퇴근만 하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오늘만큼은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