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는 공방전의 늪

회사가 아닌 사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by 언디 UnD

회사 생활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 문제가 가장 힘들고 까다롭다고들 한다.

이전의 나는 서로가 서로의 적, 어디에든 믿을 놈 하나 없다, 무한 경쟁, 이런 표현들이 그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일반적인 세태의 표현인 줄만 알았었다.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은 그 정돈 아니니까 다행이지 뭐.'하고 긍정적이고 대책 없는 마인드로 지내왔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가 녹여져 있는 매번 새로운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앞서 말한 일반적인 관계의 해악으로부터 나 또한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 더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있다는 논리는 치열하지만 조용하게 드러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멍 때리고 있다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만큼 기민하게 분위기를 살피고 있지 않던 사람은 갑자기 폭탄을 맞은 기분이 드는 순간이 닥칠 수도 있다. 기본적인 예의의 형식과 필요한 만큼 베풀어지던 호의 뒤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던 의도들은 돌아 돌아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돌려 깎는 행동으로 구현되곤 한다.


같은 집단 내의 누군가로부터 직/간접적 공격과 깎아내림을 당하면 처음엔 얼떨떨하기도 하고, 손 끝에 가시가 박힌 것 마냥 거슬리는 기분을 경험한다. 때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 행위가 소리 없이 누군가를 죽이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신뢰감이 현저히 떨어지며 안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회사에서의 자아가 망가진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물론 인간은 모두 사회적인 동물이고 경제성을 발휘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에게 유리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에게 더욱 충성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시하거나 혹은 더 나쁘게는 만만하게 보고 밟아올라서도 된다고 판단한다. 상대 평가라는 굴레 속에서는 무난하고 보수적인 사람도 '상대보다 내가 나음'을 공격적으로 드러내고 양껏 포장해야 하는 것이 국룰이다.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는 한 사람 개인의 인격적 문제겠지만, 사실 이러한 상황을 마음껏 방치하고 비효율적인 한 겹의 경쟁을 더욱 조장하는 회사가 먼저 시작한 일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고평가할 수 있도록 무드를 형성하고, 성과를 티 내고, 평가자에게 잘 보이는 것이 업무 외적인 또 다른 업무가 되어서 본 업무의 퀄리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되는 양상이다. 이런 분위기는 모두를 불필요하게 눈치 보게 하고, 멤버 간에 일어나는 작은 말과 행동 하나하나 의식하게 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또한 모두가 이 사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최대 이익을 위해 힘써 노력한다는 것을 바라볼 때 나는 처연한 심정이 든다.


모두가 이 방향성을 따르고 있는 게 명백한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그들과 똑같은 인간이 되어서 맞불작전으로 대처해야 하는 걸까? 마이웨이로 산다는 건 어쩌면 둔하리만치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로만 가능한 걸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누구보다 크고 대범한 심장을 타고나야 하는 걸까? 여기서 생존하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치가 떨렸다.


나는 정말 불필요한 공격도, 불필요한 방어도 하고 싶지 않은데. 그러면, 누군가 내 뺨을 치려고 할 때 양 쪽 뺨을 다 내어주고 헤헤 웃어 보일 수 있는 바보 천치가 될 수 있는가. 나는 생각보다 자존심이 세다. 일도 잘하고 싶고, 그에 따른 적절한 인정도 받고 싶은 보통의 사람이다. 다른 이에게 피해 입히지 않으면서 예의 바르고 따듯하게 인생을 칠해가고 싶은 그냥 정말 보통의 직장인이다. 이런 부스러기 같은 부분 또한 업무의 영역으로 인정하고 충분히 정치적인 사고방식과 사회생활을 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인지.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시키고 싶어 하는 건지, 왜 착취적이고 악마적인 본능이 이런 관계에서조차 슬몃 비춰지는 것인지 곤혹스럽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정답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있고, 해결책은 없는 것만큼 한심하고 감정적인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조언을 청했던 많은 선배들은 이런 모든 일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그냥 지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근데 내가 아무리 지나가도 그 자리에 이 지옥 같은 늪은 그대로 선명하게 있다. 나를 비난한 그가 나의 적인지, 자기보다 만만해 보이는 상대를 깎아내리고 자기를 증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를 조종하려는 리더가 진짜 적인지, 이 모든 상황을 알고도 모른 척 웃으며 넘어가는 다른 사람들이 적인지, 아니면 모두가 모두의 적인지 나는 판결을 내릴 수가 없다. 나는 외부의 세계에 세게 부딪친 달팽이처럼 조금 웅크리고 있다가, 또 꾸물꾸물 움직여보다가, 깊이 잠들고 싶어 졌다. 그렇게 꿈속에서라도 이 끈끈한 늪을 빠져나가는 나를 상상하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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