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지고 싶지 않은데
빚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빚도 자산이라는 말.
어쩌면 내가 심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일 수도 있다.
돈은 대가를 요구한다.
그만큼의 가치 있는 물건이든, 서비스든.
반대로 돈을 건네받는다는 것은 그것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대가인 월급이든, 전셋집을 위한 대출을 받기 위해서든. 돈을 얻기 위해 증명이 필요하다.
우리가 먹고 입고 사는 장소까지도. 어쩌면 내가 누리고자 하는 모든 것은 내가 생산할 수 있는 가치보다 높은 것 같다. 혹은 내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지 못한 가치를 생산하고 있는 사람이거나.
최근에 의도치 않게 이민자들의 유튜브를 많이 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타인의 평가와 비교 때문에 '나답게 사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리고 새롭게 찾아 떠난 그 세계에서 '나 다움'을 비로소 찾아가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또 한편, 그곳에서도 역시 갖가지 돈으로 인한 문제, 소통으로 인한 어려움, 집세의 부담감 등을 겪는 걸 보며 이제는 어느 나라의 영토에 사는지는 한 사람의 인생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도 하다.
No where is paradise.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해서 씁쓸한 마음과 동시에,
몰라도 되는 어른들만 아는 사실을 목격한 어린아이처럼 심적인 충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학교도, 외국 생활도, 직장도, 결혼도, 나이 들어감도.
그 어느 자격 증명도 완전한 안정감의 상태로 나를 이끌어주지는 못한다는 것.
알고는 있었지만 순간순간 삶에 적용하기에 목 넘김이 어려운 꺽꺽한 명제이다.
쳇바퀴처럼 살아가는 인생은 그나마 버틸만한 심플함인 것인지도.
그 쳇바퀴들이 서로를 굴려가며, 멈춰질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일상 속에 푸근히 빠져드는 것
누군가는 안정감과 정착, 혹은 존버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일상을 파괴하고 싶다. 너무나 강렬한 이 욕구는 때로는 날 숨 막히게 찌뿌둥하게 만든다.
노 프로 블롬이 되기 위하여, 수많은 프로 블롬을 몸으로 마음으로 삼켜버리고 뛰어넘어야 할진대
그런 에너지가 점점 떨어지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요일과 시간조차 감각하지 못하고 누가 돌리는 태엽 인지도 모른 채로,
죽음으로 향해가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누군가 심장을 두드려댄다.
나를 움직이는 무언가, 꿈이라고 한때 개념화했던 모든 것들이
희미한 허상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잃은 걸까 꿈이 날 잊은 걸까. 답을 내리기가 곤란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