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기만의 인생 스토리가 있다
이 매거진의 초반에 올렸던 글에 언급했던 대로, 하와이 여행 전반에 드는 비용은 상당히 비싼 편인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 단연 "숙소"다. 그중에서도 마우이는 숙박 업체의 수가 다른 데에 비해 적은 편인 건지 유난히도 숙박비가 비쌌다. 매리어트, 하얏트 같은 호텔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호텔을 가려면 1박에 최소 100만 원 정도가 들 수 있다는 경이로운 사실. 사실 마우이에 대해 그렇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기도 했고, 애초에 고급 리조트는 묵을 생각도, 감당할 재력도 없었던지라 빅아일랜드와 마우이에서 한인 민박 숙소를 예약했던 터였다. 어린 20대 시절, 유럽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경험하기로는, 한인 민박의 저렴함과 숙소에서 친숙한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조건은 달콤하고 대체로 유용했다. 한인 숙소에서 묵으면 다른 곳에서처럼 언어가 통하지 않아 푸대접을 받거나 억울함을 당할 일은 없었고, 숙소가 맘에 안 들면 소심한 불평과 약간의 딜이라도 해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유럽에서는 민박집주인을 남녀 상관없이 사장님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이곳 하와이의 민박집 여자 주인은 모두 '이모'로 불린다는 사실이었다.
평소에도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정체성, 성격, 성향, 살아온 배경, 가치관과 태도를 유심히 관찰하고 탐구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여행이라는 짧은 시간을 통해 삶 일부를 엿보게 되는 민박집주인 그들이 그렇게 흥미로운 존재일 수가 없다. 뉴질랜드 교환학생 시절에 만나보았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한국인이라는 이름을 단 사람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한인 2세, 부모와 함께 이민하여 한국어를 할 줄 알지만 영어가 더 편한 1.5세, 부모와 떨어져 혼자 생활하는 유학생 등을 만나 대화하면서 한국을 떠나 외국에 거주, 이민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모두 그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었다. 대부분 그들은 아주 오픈 마인드이고, 같은 한국인에게도 우호적이었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이번에 예약한 마우이의 민박집은 좀 특이한 위치에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산 자락, 아니 중턱에 있다고 해야 할까. 사실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의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어 큰 고민 없이 한 번에 예약했던 곳인데, 이모가 집 근처라며 보내준 사진을 봤더니 그냥 숲 속 어느 자락에 2차선 도로 옆에 주택이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공항에 도착했다고 연락을 하니 대뜸 이모가 맥주 심부름을 시키신다. 숙박 요금에 아침, 저녁 식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오늘은 7시에 식사를 하자시며 시간 맞춰 오란다. 이때부터 뭔가 묘한 기운을 느낀 나는 약간의 마음 준비를 하고 숙소를 향했다.
‘이 분 뭔가 심상치 않은데…’
평소에는 입도 대지 않는 맥주 두 짝을 트렁크에 싣고 여기일까 여기가 정말 맞는 건가 집을 찾을 수 있을까 하며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도착한 우리. 이모는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누가 봐도 한참 요리를 하다가 나온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왜 늦었냐며 약간의 앙탈 섞인 타박과 함께… 예상은 했지만 더욱 예상 못한 스타일이었다. 누가 봐도 우리 이모뻘이라기보다는 한 세대 위의 나이대로 보였다. 이모는 차고 쪽에 있는 대형 냉장고에 맥주를 넣어달라고 부탁했고, 남편은 프로 일꾼처럼 순순히 짐짝을 옮겼다.
우선 짐을 풀라며 우리를 집 반대편으로 이끈 이모는 손님용 출입구 문을 열어주시더니 간단히 집 소개와 함께 집 열쇠는 숙박비를 지불하면 전해주겠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집은 좌우로 긴 형태의 구조였고, 오른쪽 끝은 손님방, 복도와 이런저런 공간을 거쳐 가장 왼편 주방과 이모가 머무는 공간까지 널찍하게 이어져 있었다.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집이었지만 말끔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밥을 해놨는데 이제야 왔냐며 성화를 내는 이모의 부름에 응하여 주방으로 급하게 향했다. 주방 앞에 위치한 마루에는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분이 있었다. 이모가 별다른 소개를 하지 않아 약간 민망했지만, 먼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먼저 건넸다. 주방으로 들어서자 낯을 가리지 않는 고양이와 갓난쟁이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강아지가 우리를 살갑게 환영해줬다. 첫 저녁 식사는 데리야끼 소스의 바삭한 치킨 윙, 묵은지 등갈비와 각종 나물 반찬과 밥이었다. 빅 알에서 세끼 챙겨 먹기가 고난에 가까웠던 기억이 떠오르며 갑자기 가슴에 웅장함이 밀려왔다. 한국 음식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누군가 차려줘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뒤로 약 10끼가량을 이모의 식솔이 되어 그곳에 머물렀는데, 하와이 마우이에서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메뉴들로 아침,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갈비탕, 소고기 뭇국, 박나물, 무생채, 콩나물무침, LA갈비…. 역시 밥은 어디에서 먹든 때 맞추어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이 최고였고, 외부에서 식비가 거의 들지 않아 편하기도 했다.
이모의 저녁 식사는 암묵적으로 7시였다. 특이했던 것은 이모가 요리를 정성껏 해주시면서도 저녁 식사를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루에 1끼만 먹는 습관이 들어 오래되었단다. 대신 우리 곁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따서 본인의 이야기를 안주삼아 치즈 조각과 함께 조금씩 꺼내놓으셨다. 그렇게 5일 간 저녁 식사를 하며 이모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모는 정말 부단히도 열심히 살아온 삶이었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비행기 표만 가지고 하와이에 왔고, 일거리를 찾아다니며 기회가 있으면 늘 적극적으로 쟁취하여 마우이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도 하고 지금의 이모부를 만나셔서 마우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사실 나는 소파 첫인사 때 이 이모부가 마우이 한인회 티셔츠를 입고 계셔서(ㅋㅋ) 당연하게도 한국분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일본인이셨다. 일본인 부모님이 계시지만 일본에서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아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한다며 이모가 놀려댔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모와는 서로 “여보-!”라고 호칭했다.) 이모부와는 짧은 영어로 몇 마디 대화를 한 것이 다이지만,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식사 시간엔 이모 옆에서 우리 대화를 묵묵히 음악처럼 감상하고 계셨다. 파란만장하고 뜨거웠던,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영화 같은 스토리들로 가득 찬 저녁 시간의 추억 여행을 함께 하면서 나는 이모가 주인공인 어떤 영화에 잠깐 단역으로 출연한 것 같은, 혹은 관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구 어딘가에선 일어났을 법한 사람들 사이의 드라마가 내 과거처럼 생생히 전달되어왔다. 어쩌면 인생에 단 한번 마주할 일도 없을 것 같은 상대가 나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특별하게 기억될 일이었다.
나는 사실 해외에서 한국인이 민박집을 하면 경제적인 이득이 주된 목적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근데 사실 이모는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모는 생각보다 훨씬, 엄청난 부자였다. 직접 지은 그 기다란 집을 포함한 뒤쪽 구릉 지대의 어마어마한 평수의 땅이 이모부 소유라고 했다. 놀랍게도 그 집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 꽃사슴 1마리, 돼지 4마리, 염소 3마리, 고양이 4마리, 개 3마리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돼지와 염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프거나 다쳐서 찾아온 아이들을 임시 보호하다가 식구가 돼버렸단다.(돼지는 키우다 보니 불쌍해서 잡아먹을 수 없게 돼버렸다고)
이모네 집은 아늑한 산속 아지트 같았다. 이모네 집에서 창을 내다보면 마우이의 가장 큰 산과 바다가 모두 굽어보였다. 일출, 일몰 맛집을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되고, 저녁에는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보면 충분했다. 그런 이모는 왜 굳이 힘들게 밥을 차려주어야 하는, 청소하고 집을 정돈해야 하는 민박업을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한 동안 자리해 있었다.
처음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갈 곳도 없고, 식사할 돈도 없어 택시를 타고 한인마트로 가 밥 한 끼만 달라고 했다던 이모. 지금은 이모네 집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배 터지도록 맛난 밥을 해주고 계신다.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모는 어쩌면 현재를 통해 그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보상해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와이를 찾아오는 신혼부부, 젊은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언젠가 자신도 가졌을지 모르는 반짝거림과 행복함을 상기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렇게 사람들에게 누울 자리를 제공하고, 먹을 것으로 배를 채워주면서 치유의 여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도착한 지 3일쯤 지났을 때 이모는 맥주 심부름값을 한동안 까먹고 있었다며, 금액을 물어보셨다. 그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비닐백 안에 맥주값보다 조금 더 큰 금액의 돈과 천 조각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이모가 직접 만든 냄비 받침이란다. 부엌으로 향하는 복도에 있던 작업방이 떠올랐다. 브라더 미싱과 각종 천이 즐비해있던 어느 예술가의 작업실 같던 그 공간에서 이모는 이 작품을 언젠가 만들어두었나 보다.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나 주셨다. 쑥스러운 듯이 용도를 설명해주시는 이모의 얼굴을 보며 내 마음의 온도는 조금 더 높게 데워졌다.
토지 측량사로 일하신다는 이모부에게 언젠가 질문을 던졌다.
“하와이 섬들 중에서 마우이의 숙박비는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가요?”
이모부는 위풍당당하게 대답하셨다.
“Because, Maui is the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