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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Mar 19. 2022

하와이 마우이 여행 #6. 무지개 같은 날

마우이를 떠나며

하와이의 아침은 순식간에 밝아온다.

어둑어둑한 시간은 잠시 뿐, 약간의 게으름을 피워도 하늘이 환해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면 한 발 늦은 듯한 타이밍이 아쉬워 나는 늘 오전부터 부산하게 일정을 시작하려고 꿈지럭대곤 했다.


마우이의 마지막 날 아침, 마지막으로 수영을 하겠다며 혼자 바다로 나간 내 동행인. 나는 바다에 들어갔다간 또다시 수영복을 말려야 할 테니 귀찮다며 테라스에서 아침의 빛을 홀로 즐기고 있었다. 내내 화창한 날씨였지만 이날만큼은 오전에 구름이 크게 끼어있더니 갑자기 후드득 하고 얇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루 같은 비를 맞으며 수영하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던 찰나, 조용히 옆방 청년이 사진을 찍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저건?!

하와이에서 처음 만난 무지개

무지개였다. 내 하와이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그것, 바로 이곳에서 무지개를 보는 일이었다. 무지개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행운을 뜻하기도 하며, 성경에서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 다시는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뜻하는 상징물이다. 무엇보다 무지개는 하와이 주의 상징이다. 자동차 번호판에도 깜찍한 무지개가 그려져 있다. 햇빛,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산, 깨끗한 공기, 바다의 습기 같은 조건들이 하와이를 무지개로 유명한 곳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사실 무지개를 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웠던 게, 무지개를 보려면 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여행에 있어서 비는 너무 치명적인 요인이기에 좋은 날씨에 감사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여행이 끝나가려는 무렵까지 아무래도 보기 어렵겠다고 마음을 내려놨던 그 무지개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무지개는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면서도 시시각각 햇빛의 각도에 따라 짙어지고 옅어지고를 반복하기도 했다. 실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허상 같기도 한 이 오묘한 빛이란. 누군가 나를 위해 연출해 준 특별한 선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떤 소리도,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 광경 속에 푹 젖어들었다. 부디 내 눈앞의 이 신비로운 어떤 것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머물기만을 속으로 간절히 바라면서.


수영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대뜸 묻는다.

"봤어?"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하자 자기는 바닷속에서 그 무지개를 봤단다. 어머나! 속으로는 샘이 났지만 덤덤한 척했다. 수영은 어땠냐니 바닷속에 파도가 은근히 일어 시야가 거품과 모래로 잘 보이지 않았단다. 신나게 헤엄을 치는데 배 아래쪽에 뭔가(?)가 있는 것 같더란다. 뭔가 하고 봤더니 엄청난 크기의 바다거북이었다고. 아니, 바다 거북이랑 같이 수영을 했다고? 이제는 시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와, 부럽다..."

마우이 마지막 날의 축복은 나한테만 주어진 게 아니었나 보다.

까페 간판에도 무지개가 그려져 있다!

각종 미디어 매체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간접 경험을 통해서 실제와 동일하게 누릴 수 있는 감각들이 많다. 한편, 여전히 어떤 것들은 그 장소, 그 시간, 그 상황 속에서만 느끼고 인지할 수 있는 경험들이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또 어디선가 어쩌면 기억도 못할 만큼 내 인생에서 무지개를 많이 봐왔겠지만, 이 날의 무지개만이 나의 무지개로 오롯이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잊지 못할 장면을 영혼에 새긴다는 것은 평생 가지고 갈 닳지 않는 자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하와이 와서 돈을 펑펑 쓰면서 진짜 부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걸까?


구름이 가득하긴 했지만 마우이의 하늘은 이내 환해졌다. 세상의 모든 색은 아까 그 무지개의 색을 부분 부분 나눠 가진 듯 색감 있게 반짝거렸다. 오늘의 목적지는 공항이었지만,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다는 것처럼 바다를 옆에 끼고 창문을 열고 달렸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모든 장면이 애틋하고 아리게 느껴졌다. 수식어를 붙여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이 끄덕여지는 풍경들에 우리 차의 속도는 자꾸 낮아지곤 했다.

그림 속 산 처럼 생긴 산과 윤슬의 바다

삶 가까이에 이렇게 반짝이는 것들이 많다면, 더 많이 웃음 짓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나라는 존재 외부에서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들을 보다 보니 이곳을 떠나면 모든 게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슬금슬금 생겨난다. 내 안에 조금이나마 이 아름다움이 스밀 수 있을까. 값지고 희귀한 것은 캐리어에 담아 갈 수 없는 것처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 마음에 담아놓은 것들까지 다 뺏겨버리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아주 잠깐 강렬한 행복이 무지개처럼 왔다 사라지면, 그 뒤는 더욱 허무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괜한 행복을 갉아먹기 전에 아직은 조금 더 오늘의 선물을 충분히 누리고 싶다며 도리질을 해본다. 행복한 상황이 끝나도 행복한 나를 기억하고 또 그대로 살아낸다면 내 마음속 무지개는 영원히 그곳에 있을 테니.


하와이의 무궁화와 지금도 먹고싶은 아사이 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무지개 같은 날, 나는 마우이를 떠나 마지막 목적지인 오아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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