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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Mar 17. 2022

하와이 마우이 여행 #5. 찰리영비치와 호아필리 트레일

이런 바다, 이런 트래킹은 처음이야

오늘의 하늘

잠에서 깨어 눈을  뜨지 않았는데도 피부로 햇살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바깥으로 나가보지 않아도 날씨가 화창하다는 것을 예측할  있는 . 이런 날은 몸이 정말 가볍다.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는 일이 가뿐하다.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아 여행할 맛이 난다. 이런 날엔 어디에서 무얼 해도 좋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와중에 하와이 여행 중에는 이동을 많이 하긴 했지만  차만 타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쯤 몸을 조금 움직여줘야   같은 기분.

"오늘은 어떻게든 좀 걸어야겠어."


원래 걷는  너무도 좋아해서 하루에  번씩 운동을 하고, 언제든 수키로  걷는  힘들지 않았던 나지만,    디스크가 터지고  뒤부터는 활동력이 많이 줄어든 터였다. 회사 생활을 열심히  결과는 병원비 지출뿐이라는 인생 선배들의 말씀이 틀린  없다. 그때 나는 그전까지는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던  삶의 부분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초중고 학창 시절과 대학 시절, 학위 과정,  이후의 직장 생활까지도  앉아 있는 시간이 90% 이상인 생활을 해왔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나는 무엇을 하느라고 그렇게 앉아 있어야만 했나.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그리도 오래도록 앉아 있기를 택한 것일까. 한동안 계단을 내려가지도 못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과 불편함을 겪었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몸을 다스리지 못하고 몸을 떠받드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힘들다면 쉬어주고, 아프다면 누워주고, 게으름에 복종한 지가  오래되었다. 20 초중반 시절 20kg 넘는 가방을 들고 무릎 갈리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힘들게 유럽 여행하던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캐리어 하나조차 애써  사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몸뚱아리가 되고 말았다. 나는 자연적으로 노화한 걸까, 자학의 결과를 맛보는 걸까.


어찌 되었던 인간은 걸어야 산다. 걸을 수 있을 때 걷기로 다짐해 본다. 오늘은 칙칙하고 답답한 마스크 속이 아니라 이 곳 하와이의 맑은 공기와 하늘과 바람, 바다를 맛보면서 숨 죽은 몸뚱이가 다시 소생할 수 있을 것 같다. 산과 바다의 하와이 답게 정말 많은 트레일 코스가 다양한 소스를 통해 소개되어 있다. 검색 검색을 하다 1,2시간 이내의 코스를 찾아 무작정 출발을 했다. 오늘은 하나로드 때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커피도 미리 사 마셨다.

마우이에서 생산된 재료로만 음료를 제조한다는 akamai 드라이브스루 커피

부릉부릉 신나게 달려  시간 정도 만에 구글 맵에 표시된 트레일 시작점 부근에 도착했는데, 이상한  도무지 주차장을 찾을 수가 없다. 산속으로 점점 접근하면서 약간의 비포장 도로와 하나로드에서 보았던  같은 좁은 2차선 도로 위에 올라서긴 했는데, 10, 15분을 달려도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계속 포인트가 바뀌고 있는 거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변화하는 경로를 따라 뱅글뱅글 돌고 있는 우리 차를 발견했다.  와중에 계속 똑같은 지점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는  느껴졌는데,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가 창문을 내려보라더니 어디에 가냐고 묻는다. 트레일 코스  거라니까,  안에 물건을 절대 두지 말고  문을 모두 열어놓고 출발하라는 말을 한다.

"차 문을 열어놓고 트레킹을 가라구요?"

"응. 여기 산에 thief가 있어서 잠가놓으면 창문 다 부술 거야."

 ......?

갑자기  말을 들으니 오싹해졌다.  짐승도 아니고,  도둑이 있다니. 근데  사람 말을 믿어도 되는 거야? 혼란스러운 가운구렁이 같은 도로를 운전하다 보니 조금씩 하나로드 때의  멀미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엉뚱하게 길을 요리조리 바꿔가며 우리를 인도하는 구글 맵은 조금씩 인터넷 신호가 약해지며 우리의 여정을  몰라라 하기 시작했다. 믿을   녀석밖에 없는데, 큰일이다. 아까 지나쳤던  애매하게   차가 주차되어있던 갓길 근처가 트래킹 포인트인가? 별별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있는 존재는 그곳에 없었다. 결단을 해야만 했다.

"우리 여기 포기하자."

"왜?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냐, 뭔가 느낌이 쎄해. 다른 트래킹 코스로 가자."


나름 여행을 좀 다녀본 자의 동물적인 느낌으로 이런 곳을 계속 헤매다가는 개고생만 하고 시간만 낭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산 도둑이 있는 트래킹 코스라니, 수상하기도 하고 위험하게 느껴졌다. 날은 여전히 좋았고 우리에게는 중도 포기할 시간도 넉넉했다. 차를 돌려 그 이상한 지역을 신속히 벗어났다.


아직 한 것도 마땅히 없는데 긴장한 탓인지(?) 배가 고파졌다. 밥부터 먹고 출발하는 게 좋겠다 싶어 미리 찾아두었던 푸드 트럭에 가기로 했다. 팟타이와 쉬림프를 파는 태국식 푸드 트럭. 푸드 트럭이 식당과 달리 팁이 없대서 가격적인 메리트가 있을 줄 알았는데 메뉴를 보니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타이 푸드 트럭. 좀 비싸지만 맛은 일품!

하와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먹어보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가 함박 스테이크처럼 생긴 로코모코(느끼함 주의)와 쉬림프 트럭이었다. 이게 맛있으면 뭐 얼마나 맛있겠냐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바다 근처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먹는 상상을 하는 건 언제나 배시시한 행복을 안겨주지 않는가! 테이크아웃한 음식을 들고 해변 근처 벤치로 향하는데, 박스에서 고소한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어떤 맛일지 견딜 수 없이 궁금해졌다.

얼른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삭하게 튀겨진 새우를 한입 왕 하고 베어 물었다. 음...  역시. 생각한 그대로의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바다를 바라보는 눈이 즐겁고, 맛보는 혀가 즐겁고, 슬슬 채워지는 배가 만족스러웠다. 하와이에서 이런저런 현지 음식과 여러 메뉴를 먹어보아도 우리네 입맛에 흡족한 건 아시안 푸드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한 톤 밝아진 얼굴로 근처 해변으로 향했다. 이름도 모른 채로 푸드 트럭 때문에 찾아간 이 해변이 반전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찰리 영 비치
눈이 맑아지는 풍경

이곳에 이렇게 오래 머물 생각이 아니었는데, 이곳의 아름다움에 혹해 한낮의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망중한을 즐겼다. 비치타월도 없이 촉촉한 모래 위에 엉덩이를 퍼질고 앉아 끝없이 몰려오는 파도와 바다의 선명한 빛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세게 내리쬐어 피부가 조금씩 익어가는 건조한 느낌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해가  때까지 이렇게 앉아있을  있을  같았다. 한국에서 절대로 할래야   없었던 ' 때리기' 맘껏 즐겼다. 아무도 나를 닦달하거나 쪼아대는 사람이 없었다. 해변에서   번의 자유감이 몰려왔다.


아쉬움이 한 조각도 남지 않을 정도로 눈과 마음을 가득히 채우고서야 차로 돌아가 원래의 목적인 트래킹 코스를 향할 수 있었다. 마우이의 오른쪽 섬 남쪽에 있는 호아필리 트레일이 해안선을 따라 걷는 코스로 괜찮아 보였다. 찰리영 비치에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쭉 내려갔다. 다행히 이번에는 공식적인(!) 주차장도 있고, 어엿하게 트레킹 코스에 대한 안내도 나와 있어 안심이 되었다.

호아필리 트레일 초입

호기롭게 트래킹을 시작했다. (드디어 걸을 수 있다!) 이 길 위를 걸으면서 비로소 하와이가 화산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는데, 발로 딛고 선 곳이 그냥 흙길이 아니라 현무암 같은 재질의 아주 딱딱한 돌들이 바닥에 가득 깔려있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부스럭부스럭거리며 발에 채이는 다양한 크기의 돌을 밀어내며 한발 한발 디뎌나가는 느낌이 새로웠다. 호아필리 트레일의 초입 부분은 왼쪽에 큰 산이, 오른쪽에는 해변이 보여서 고개만 돌리면 좋은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경관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1시간, 2시간을 걸어도 조금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다. 걸어 나가다 보면, 조금씩 해변으로 향하기도 하고, 조금 더 산 쪽으로 향하기도 하면서 해안선을 따라 코스가 형성되어 있었고, 최종 종착 포인트는 하얀 등대가 있는 곳이었다.

트래킹은 그냥 땅을 느끼며 걷는 것 말고는 할 일이 별로 없는 활동이다. 그래서 걷는 게 좋기도 했었다. 맘 놓고 생각하고 성찰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니까. 또 너무 깊이 생각에만 빠지기도 힘든데, 길을 잘 보고 걷지 않으면 발에 걸려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어 적당히 현실 세계에도 집중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균형감이 좋은 액티비티다. 시선만 살짝 돌려도 윤슬이 가득 올려져 있는 바다의 매끈한 표면이 보인다. 한 발짝 옮겨놓을 때마다 다른 각도로 보이는 자연의 풍경이 지루할 틈이 없다. 이런 자연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운아들일까. 뉴질랜드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드넓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자란 이들은 그마만큼의 내적 용량을 가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디서든 하와이 출신인 사람들이 꼬장꼬장하게 굴면 한껏 욕을 해주리라 맘먹었다. (물론 그들이 그럴 리도 없겠지만!) 여행을 통해 우주의 일부를 느끼다 보면 내가 발 딛고 서있었던 일상은 얼마나 좁고, 제약이 많은 환경이었는지 한스러운 심정이 든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내가 얼마나 더 좁게만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했었는지 부끄러운 심정으로 반성하게 된다.


그늘이 없는 길을 계속 걷다 보니, 더위에 약한 동행인이 정신줄을 놓고 있는 게 보였다. 나도 약간 몸이 지쳐가긴 했지만, 풍경이 너무 좋아 힘든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다. 점차 바다와 산이 시야에서 자그마해지고 돌만 보이는 길에 들어서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돌짝밭만 이어졌다. 지금까지 발치에 닿던 돌들은 꽤 작은 자갈들이었는데, 걷다 보니 커다란 암석 같은 바위들도 언덕배기에 아무렇지 않게 줄지어 놓여 있었다. 주변에 지나는 사람들도 없는 조용한 공간을 숨죽이고 걷다 보니, 한순간 큰 돌들이 공룡이나 영화 속 괴물들로 되살아나 움직일 것 같은 아득하고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가다 보니 지도 없는 여정에 한 번쯤 닥쳐오는 현타가 찾아왔다. 등대는 어디 있나, 계속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조금 앞쪽 멀리서 일가족이 헥헥거리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 트레일 최종 도착지점까지 갔다 오는 길인 가요?"

"아뇨, 저희 힘들어서 포기했어여...힘내세여!"

"아..."


역시 만만치 않은 트레일 코스다. 뜨거운 볕에 사람들은 대부분 일찌감치 되돌아서 시작 지점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왕년의 나였다면 다리가 부서져라 하얀 등대까지 가서 뿌듯한 마음으로 인증샷을 찍었겠지만, 노쇠한 나는 이제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올 길이 두려웠다. 갔다 오면 다리 엄청 아프겠지. 라며 정신을 잃어가는 동행인의 눈치를 보며 그만 돌아가자고 타협했다. 융통성이 좋아진 건지, 어째 포기가 쉬워진 여행자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지금 돌아가도 지금까지 본 만큼의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으니 잃을 것도 없는 선택이다.

어느 옛 노래의 가사처럼 집에 돌아가는 길은 항상 멀게만 느껴진다. 등줄기와 겨드랑이, 온몸 곳곳에 난 땀은 더운 볕에 말라 끈적해지고, 땀을 닦아 내는 것도 귀찮다. 코스 중간중간에 있는 작은 해변에 그냥 몸을 던지고 싶은 몸의 온도와 감각. 마침 손바닥만 한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즐기는 소녀 두 명이 해맑게 웃는 게 보인다. 아, 얼마나 시원할까. 오늘의 완벽한 날씨와 더불어 완벽한 모든 것들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방점을 찍기로 동행인과 약속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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