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살고 싶은 나의 삶

20220630

by 언디 UnD

회사에서는 왜 아무도 왜를 외치지 않는 건지.

왜 why는 늘 negative로만 받아들여지는 건지.

그런 정의와 명제는 누가 만들고 전파하는 건지.

세상에 부조리한 상황은 골목골목 넘쳐나기만 하는 건지.


나는 왜 이곳에서, 저곳에서, 또 다른 곳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라벨링 되어야 하는 건지.

그게 왜 핑계나 전략이 되어야 하는 건지.

자아의 아이덴티티가 투명하고 일관되지 못한 데서 오는 균열과 불만족과 불안정은 왜 나에게만 이렇게 극심한 고통인지.

언젠가의 해방을 외치며 왜 인간은 자꾸만 스스로를 속박으로 내모는지.


잘 살기 위해 무언가를 희생했는데 그 가치는 왜 도살당하기만 한 건지.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착한 호의는 왜 늘 목졸라 죽임 당하는지.

내가 살고 싶어 하던 나는 왜 이 세계에서 실종된 건지.

질문과 답은 명확하고, 때로는 양쪽 모두 매캐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