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성 속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봉준호식 SF
러닝타임 137분
국가 미국
감독 봉준호
** 스포일링을 지양하지만, 영화의 줄거리가 담겨 있으니 읽기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1. [간단한 총평]
봉준호의 영화다. 해석이 어렵거나, 결말이 헷갈리거나 아리송하지 않다. 반전도 자극적이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솔직 담백한 대중 영화라고 해야할까. (이런 점에서 혹평을 하는 관객도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장면장면의 볼거리는 넘쳐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진중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갖고 있는 고민은 무겁지만 피식 웃게 만드는 장면들로 빼곡히 채웠다.
뻔하고 쉬운 듯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건네는 그의 엉뚱한 상상력이 꽤 좋았다. 그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낭만이 어떤 모양일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2시간 반 가량 상영되는 한 편을 보고 나니 영화 속 인물들이 아는 사람들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2. [영화를 본 후 반응]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보다 본 후의 관객의 반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영화를 본 60대의 엄마와 30대인 남동생 모두 한참 동안 여운이 남는 듯 했다. 각자 영화에서 느낀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런 장치는 이런 의미 아닐까? 하며 토론을 하기도 했다. 나로서는 굉장히 낯선 장면이었는데, 지금껏 SF 영화를 보고 가족들과 함께 영화의 메시지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할 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인터뷰 내용을 몇 개 찾아보는데, 놀랍게도 감독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기대하는 바가 딱 그런 것이었다는 말을 하더라. 재미있게 보고, 돌아오는 길에 한번 더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그래서 또 한번 놀랐다.
#3. [인상깊었던 몇 가지 포인트]
■ 주인공의 과거사 설명은 딱 30분
영화의 처음은 미키17이 눈 구덩이 속에 조난되어 죽은 줄 알았는데 죽지 않았고, 점차 의식이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때로부터 과거로 돌아가 미키가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의 분량은 딱 30분. 개인적으로 30분이 관객이 상황 설명에 관대하게 자신의 집중력을 할애하는 최대치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노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봉준호 감독도 과욕을 부리지 않고 깔끔하게 시간 안배를 했다. 박수 드립니다. 짝짝.
■ 1인2역의 로버트 패틴슨, 미키들
조난 당한 후 죽은 줄 알았던 미키17 대신 미키18이 프린팅된 뒤로부터 미키17, 18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별들에게 물어봐>에서도 1인 2역을 한 화면에서 연출하는 장면을 봤었는데, 미키에서는 정말 극단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한 기술처리였다. 미키17과 미키18이 뒹굴면서 싸우기까지 하는데 이질감이 없을 정도. 두 인물처럼 연기한 배우의 연기 자체도 대단하지만 이젠 화면으로 뭐든지 제작이 가능한 시대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극중 재미있는 설정은, 모든 미키가 조금씩은 다른 성품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어눌하고 소심하고 덜떨어진 17과 거칠 것이 없는 무대뽀에 열혈인 18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취하고자 하는 액션이 극반대로 나타난다는 점. 배신자 티모를 죽이지 않으려는 17과 무조건 죽여야한다는 18의 상반된 태도는 한 사람의 내면에 있는 천사의 목소리와 악마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여러번 프린팅되어 나오는 미키를 보여주는 시퀀스에서 놀랐던 건, MRI 기계처럼 생긴 프린터 속에서 찍혀져 나오는 미키를 받쳐줄 받침대가 놓여져 있지 않아서 미키가 그대로 거꾸로 떨어져서 바닥에 처박히는 장면. 심지어 이 장면은 로버트 패틴슨이 제안한 실험적 장면이었다고 한다. OMG.
■ 캐릭터의 성품이 가지는 일관성
등장 인물들 중 어느 누구도 본래의 가치를 버리고 배신하거나, 회개랄지 돌이킴이 없다. 선이든 악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각자의 욕구와 동기가 일관되게 선명하다. 설사 그것이 맹목적이거나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모습일지라도. 그 부분이 굉장히 인간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물들은 각자의 일관된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캐릭터의 가치관과 추구하는 목표의 일관성은 극중 몰입도를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 생존과 죽음, 존재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의 대비
익스펜더블이라는 계약 하에 건조한 태도로 수없이 많은 미키를 죽이고 또 다시 찍어내는 인간 집단. 그리고 조난되어 버려진 미키를 살려주는 외계 생물체 크리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극중 사이비 교주 마샬 역할의 마크 러팔로는 한 탐험대원이 크리퍼가 살던 동굴 붕괴로 깔려 죽자, 비디오를 보며 크리퍼에게 사람의 살을 먹는 끔찍한 생물체라고 프레이밍을 씌운다. 그리고 즉각 크리퍼를 말살시켜야하는 적으로 상정한다. 마샬에게 있어서 정체를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는 곧 위험을 의미하고, 또 제거해야할 대상이다. 또 외부의 적은 정치적으로는 내부를 단결시키고 스스로의 권력을 합리화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극중 마샬 일당은 인류의 번영을 외치며 우주 행성을 탐험하지만, 사실은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로 미키를 사용하고, 인간 존재의 존엄을 떨어뜨리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삶과 안위는 절대 놓쳐서는 안될 최상의 가치이지만, 그걸 위해 희생되는 다른 인간 존재의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버린 시대에 던지는 서늘한 경고 같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 그 가운데에서도 '인간다움'을 열망하는 감독의 낭만이 느껴지는 결말로 이어진다.
■ 사후 세계, 죽음 이후에 대한 믿음
극중 미키는 익스펜더블 계약 내용에 따라, 사람들을 대신해 위험한 실험의 실험 도구가 되어준다. (극중 '미키'의 이름이 실험쥐에 빗댄 것은 아닐까 하는 동생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각종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체 개발을 위해 스스로 감염되어 죽기도 하고, 우주에서 보호 장비 없이 방사능에 노출시켜 인체 실험을 돕는다든지, 새 행성에 도착했을 때에도 마스크 없이 대기에 적응하기 위해 숱하게 죽는다. 그런 미키에게 사람들은 죽음이 어떤 느낌인지를 재차 물어본다. 죽음의 순간에도 순응적이고 덤덤하던 미키는 마치 스스로가 희생양이 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사람 같아 보인다. 그가 그토록 잔인한 멀티플 죽음을 견딜 수 있는 건 이후에 다시 프린팅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언급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죽음 이후에 부활에 대한 믿음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 준다는 기독교 신앙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쩌면 미키는 인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초월적 구세주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 게 아닐까. 신이자 인간이었던 예수가 다른 인간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부활한 것처럼, 하지만 그도 여전히 인간이었기에 마지막 순간 죽음을 거두어달라고 부르짖었던 것처럼. 가장 비인간적인 기술의 산물로 고난받던 미키가 이 세계에서 실은 가장 고귀한 존재로 설정된 것은 아닐까 하는 나만의 해석과 상상을 해본다.
한줄 평
죽음은 그 누구에게도 당연하지도, 괜찮지도 않다.
무한히 부활할 수 있는 불멸의 존재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