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타인과 거주 공간을 공유하는 삶의 단면
그녀와의 동거는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
뮌헨을 본거지로 두고 한 달 정도 머물려니 머물 곳이 당장 필요했다. 호텔은 언감생심이고, 단기도 장기도 아닌 기간을 머물 적당한 가격의 좋은 퀄리티의 집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몇 날 며칠 에어비앤비를 검색, 또 검색하다가 맘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이 집은 거실까지 있었다. 한 달을 머물면 약간의 할인도 해주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빨리 집을 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주인과 부드러운 대화가 오가고, 결정을 내린 뒤 에어비앤비 결제를 진행했다. 숙소로 가는 길이 약간 외져 보이고 Bahn역에서 가까운 곳은 아니었지만, 조금 여유를 가지고 걷거나 트램 한 번으로 역에 갈 수 있었고 중앙역도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기 때문에 약간의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숙소로 들어가는 날! 그때까지도 나는 집주인이 내가 머물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기에 집이 여러 채 있는 사람이라 근처에 살고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집은 독일에서 쉽게 보기는 어려운 신식 건물이다. 엘리베이터부터 구식이 아니라 한국 주상복합 건물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종류였기 때문에 내부도 좋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예측이 되었다. 다만 엘리베이터 안에 충전 보호재(?) 같은 것이 그대로 깔려있는 상태라는 게 지나치게 새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집주인이 열쇠를 열고 안내해준 집은 사진에서 봤던 대로였고, 내 예상과 일치했다.
단 한 가지, 그녀가 숙소의 다른 방에서 함께 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는 이곳에 도착하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고 적잖이 당황했는데, 그녀는 에어비앤비 숙소 정보에 자신이 숙소에 같이 머문다는 내용을 명시하지 않았었다. 생각해보니 약간은 사기성이 있기도 했는데, 집 상태도 그렇고 가격도 그 정도의 집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던 지라, 한편으로는 또 그럴만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나와 남편의 당황스러움을 감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남편과 함께 지낸다고 했으니 1인용이던 침대도 2인용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했고, 욕실은 2개라 따로 사용할 수 있으며, 자신은 거의 하루 종일 바깥에 나가 있으니 그렇게 불편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주방과 거실은 자신이 있든 없든 자유롭게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자유롭게 사용하란다고 사용할 수 있겠는가 싶었는데, 그녀의 말이 또 빈말은 아니었던 것이 이후에 밝혀진다.)
나에게 이 집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집에 오기까지의 집주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너무나 바람직했던 터라 깽판을 치고 나가거나 불쾌감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외국에서 머물 곳을 찾아 헤매는 두려움과 피로감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고, 짧으면 짧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선한 인상의 친절한 그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므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첫날 밤 잠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독일의 은수저 전문직 여자, 수잔느
수잔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독일 여자에 대한 외모상과는 조금 다르게 키가 작고 통통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1년 전쯤 LMU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신생 의료 IT기업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취직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생각 이상의 긴 가방끈에 놀랐고, 직장과 직무를 보아하니 일단 돈을 엄청 많이 받겠군, 이라고 생각하는 난 때 묻은 사람이겠지...)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니 집은 부모님이 분양받아(?) 구입했고, 수잔느가 세를 내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독일 사람들답게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집세를 시세에 맞게 상당히 많이 내야 하는지, 본인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꽤 길다 보니 공간을 비워두는 것이 아깝기도 하고 재정적인 부담을 덜기 위해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서브로 테니스 코치 일을 겸하고 있었다. 그녀는 보통 퇴근 후에도 잠깐 저녁을 먹으러 집에 들렀다가 나가서는 2-3시간씩 코치 일을 하고 밤 10시 혹은 11시가 넘어서 귀가하곤 했다. 재벌 2세나 3세 같은 금수저는 아니지만 금도금 은수저 정도 되는 위치라고 해야 할까. 뭐 어쨌든 상당한 엘리트에, 부족함 없는 재정 상태의 30대 중반의 독일 여성을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그녀는 술을 퍼마시는 스타일이라거나, 이성관계가 복잡한 것도 아니었고 지극히 바람직한 생활을 해 나가는 건강하고 소박한 품성의 집주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감기를 예방할 수 있는 차의 레시피를 알려주었는데, 왠지 가족 전통으로 이어져 왔을 것 같은 느낌의 그 문화에 참여하는 느낌으로 그녀를 따라 참 많이도 차를 마셨다.
그녀의 집에 없었던 한 가지
숙소이자 그녀의 집에는 대부분의 필요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LG 드럼 세탁기까지도 있어서 언제든 세탁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런 그녀의 집에는 '전자레인지'가 없었다. 나는 처음에 내가 발견을 못한 줄 알고 수잔느에게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
"아, 나는 전자레인지 안 써."
"아, 그래...? 왜지? 엄청 편한데.."
"나는 태어나서 집에서 전자레인지를 한 번도 쓴 적 없어."
"?!?!"
전자레인지에 의존해 온 인생, 자취 10년 차가 훨씬 넘었던 나는 이 이야기가 의아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우리 엄마가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거든. 몸에 안 좋다고 생각해서."
아하, 의문이 풀렸다. 생각해보니, 나라가 어디이든 어머니들은 전자레인지의 악영향에 대해 민감하구나, 나도 어릴 때 엄마가 전자레인지 앞에 서있지 말라고 잔소리하셨던 게 순간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그래도 너무 불편하지 않아? 음식 데울 때마다 늘 팬이나 냄비를 사용해야 하잖아."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 그리고 회사에서는 가끔 쓰기도 해 ^^."
아무튼 나는 그렇게 강제로 전자레인지로 요리할 수 있는 간편식은 먹지 못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매 끼를 요리해서 먹거나 바깥으로 나가야만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또 다른 의미로 매우 건강했다. 그녀는 채식주의자였고, 음식은 본연의 상태 그대로 최대한 먹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독일에서 소시지를 안 먹는 사람을 만난 것도 새삼 신기했다.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삶을 엿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주말은 본가에 다녀왔다고 하면서 배가 너무 부르다는 거다. 왜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파스타를 직접 해주셔서 안 먹을 수가 없었다는데, 더 자세히 들어보니 이 파스타가 시판 파스타를 끓여서 소스를 붓는 게 아니라 가끔 우리가 수제비나 칼국수를 직접 반죽해 먹듯이 a부터 z까지 손수 해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아, 어머니들이란.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다
집에 들어온 날부터 조금 이상한 것이 있었다. 날씨가 영하로 왔다 갔다 하려는 계절이었는데, 자랑스럽게 수잔느가 소개했던 다른 집에서 구경하기 어려운 '바닥 보일러'를 아무리 켜놔도 방이 따뜻해지지가 않는 거였다. 하루, 이틀, 삼일을 참고 나니 감기 기운이 돌아서 수잔느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하루 종일 보일러를 켜 두었는데도 방이 따뜻해지지 않는다고. 수잔느는 당황한 기색이더니, 부모님께 한번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뭔가 그 방에 겨울이 된 이후에 아무도 묵지 않아서 확인할 일이 없었는데 고장이 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같이 사는 것을 숨긴 것 이후로 또다시 한 방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알겠다고 하고 그날로 당장 전기장판을 사 왔다. 저녁에 돌아오니, 그녀는 아버지가 직접 주말에 보일러를 보러 와주시겠다고 했다. '흠, 특별히 외출할 일도 없는데..' 갑자기 수잔느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미리 쑥스러워졌다.
그렇게 만나게 된 수잔느의 아버지, 딱 봐도 반듯한 느낌의 중노년의 맘 좋아 보이는 아저씨였다. 보일러를 거의 다 수리 해갈 때쯤 갑자기 수잔느의 어머니까지 깜짝 방문. 난 이런 공동생활에 익숙지 않은 성격인데 하며 곤란해했지만, 그녀의 부모님과 대화하다 보니 수잔느의 부드러운 품성이 어디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와 수긍이 갔다.
그녀와 나는 아직도 타인일까, 이젠 지인일까
그녀와 차 한잔, 식사 한번 제대로 한적은 없었다. 너무 친해지기엔 금방 떠날 사람이고, 모른 척 하기에는 늘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린 애매한 스탠스였다. 나는 가끔 그녀와 독일 사람들이나 독일 문화, 수잔느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 내가 왜 여기 와있는지와 왜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프로젝트 진행을 하다가 퇴사하게 되어 마음이 불편하다고 갑자기 고민 상담 같은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상황과 내 마음 상태를 쭉 들은 그녀는 나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아마 너희 회사의 다른 사람들이 너와 같은 상황이라면, 분명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선택을 할 거야, 너처럼. 그리고 그 사람들 그렇게 너에 대해 신경 안 쓸 거야. 그 사람들이 너의 인생을 책임져주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 걱정하지 마."
갑자기 낯선 독일 여자 수잔느가 언니처럼 느껴졌다. 같은 이야기인데도, 서로에게 모국어 아닌 언어로 주고받아서일까,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개인주의와 합리성이 주된 가치인 독일 사람들이라지만, 그녀는 낯선 세입자인 나를 배려하고 마음 다해 잘 챙겨주었다. 그게 좀 충격적이고 이상했다.
어쩌면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 국경과 인종과 언어와 학력과 직업이 만드는 구분선 같은 것은 우리의 인식이 만들어 놓은 인공물이 아닐까. 한국에서 내가 살아오면서 인식한 거주 공간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이라는 개념이 큰 것 같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가치를 높게 매기고 독점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완전한 타인과 살을 맞대는 삶을 공유한다는 것, 공간을 향유한다는 것, 어색하고 처음이었지만 나쁘지 않은 공존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