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꾼 내 얼굴

그동안 누구를 위한 화장이었나

by 언디 UnD

2주 만에 화장을 했다. 아니 어쩌면 3주, 혹은 그 이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세보지도 않을 정도로, 마지막 화장이 언제였는지 까먹었을 정도로 오래된 건 분명하다.


화장을 쉬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처음엔 아침에 깔끔히 화장을 하고 바로 마스크를 끼는 것이 부담스러워서였다. 마스크 소재와 상관없이 쓰기만 하면 바로 화장품이 묻어버리니, 잠깐 벗었다 다시 꼈을 때의 그 비주얼 찝찝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마스크를 끼면 일단 이마와 눈 쪽 영역만 보이게 되니, 코와 입 주변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싶을 정도로 비효율적인 행위였다. 하루 전체로 보면 의미 없이 얼굴에 뭔가를 바른 뒤에, 바른 것을 마스크에 묻히고, 거의 아무도 그 얼굴을 보지 않다가 돌아와서는 얼굴에 바른 것을 지워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좀 더 불편한 이유인데, 마스크 안에서 입김이 돌다가 그대로 갇힌 채 건조되다 보니 화장품이 피부 표면에서 굳고 건조되어서 모공이 막히고, 입 주변부에 피부 트러블이 심해졌다는 것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오랜 시간 마스크를 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남녀노소 무관 많은 사람들이 '여드름'과 '마스크'를 키워드로 언급하고 있는데, 나 또한 트러블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뭐라도 한 꺼풀 더 덮는 게 트러블을 더 악화시키는 것 같아서 어느 날인가부터 출근을 할 때에도 화장을 안 하게 되었고, 이내 피부의 평온함을 위해 안색의 칙칙함으로 대가를 치르는 것에 의연해졌다.


그렇게 내 본래의 민낯에 익숙-하게 살아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은 2주 자가격리를 끝난 남편이 오는 날이다. 남편이 오랜 기간 헤어져있다가 4개월 만에 볼 나의 첫 모습을 상상해본다. 음, 화장이란 걸 해야겠군.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이 씻고,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속 나를 근거리에서 오래 들여다보았다. 모든 게 새삼스럽게 새롭게 느껴졌다.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꼼꼼히 펴 바르는 행위도, 눈썹을 이상적인 모양으로 채워 넣는 일도, 눈 위에 여러 층의 색을 얹고 라인을 살리는 일도, 내가 이런 걸 매일 했었다니. 머리까지 바싹 말리고 낯설게 단정한 나를 보고 놀랐다. 일단 얼굴의 대비가 너무 강하다. 눈매는 너무 뚜렷하고, 선명하다. 입술은 지나치게 채도가 높다. 내 얼굴의 윤곽이 배경의 일부가 아닌, 독립적인 관찰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 내가 '잘 보이는' 기분이었다. 내가 봐오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처럼 느껴져서 이상했다. 한편으론 나 자신을 되찾은 기분이다. 화사하고 반짝거리는 얼굴. 기분이 나쁘지 않다.


화장은 누구에게 필요할까? 화장은 철저히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다. 사실 나 혼자만 평생 지낸다고 생각하면 말끔히 화장한 모습은 필요하지 않다. 무심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행위들이, 내 기준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20대 초반 대학 새내기 시절, 처음 화장을 배웠다. 돌이켜 보면, 화장을 시작한 때부터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의 디폴트 값을 '화장한 예쁨'으로 두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내 그 예쁨을 내 예쁨이라고 믿게 되었던 것 같다. 일상적으로, 매일매일 예쁜 내가 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비자발적인 습관을 득한 것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해내느라 늦어버린 밤 시간, 아, 화장 지우기 귀찮아, 매일 노래를 부르면서도 나는 나의 아름다운 자아를 보존하기 위해 노동을 자처해 왔다.


모든 걸 덮쳐버린 코로나는 온 사람들의 얼굴마저도 마스크로 덮었고, 내 얼굴을 바꿨다. 조금 덜 또렷하고, 꽤 밋밋하고, 까무잡잡하고, 피로감을 더 잘 반영하는 투명한 피붓 빛의 얼굴로 말이다. 코로나는 시지프스의 돌덩이 굴려올리기와 같은 화장 노동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너무 편하고 좋다. 회사에서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도 딱히 내 얼굴이 어떤지는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차라리 그냥 내 민낯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게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내 원래 얼굴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본연의 내 모습에 완전히 자유롭고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 그간 영상통화로 90% 이상은 나의 맨 얼굴을 봐온 남편이기에, 남편은 이상한 점을 눈치챌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남편은 오늘 나를 보고 "귀찮은데 화장은 왜 했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와의 공존을 위해 정답을 학습한 그는 "화장 안 한 맨 얼굴이 더 좋은데, "라고 정답을 말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당신을 만나는 나를 위해 화장해 봤어"라고 대답해야겠다. 다른 이를 위해 해야만 하는 화장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가끔 하게 되는 화장술이기를 바라면서.





이전 05화같이 밥 먹는 기분 좀 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