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밥 먹는 기분 좀 내볼까?

그럴듯함을 위한 최소 조건, 두 사람

by 언디 UnD

오늘 아침, 갑자기 친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집 강아지를 보고 싶다고 며칠 전부터 조르더니, 결국 오늘 우리 집에 와도 되냔다. 거절하기에는 별 일정은 없지만, 연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에서 집안 대청소를 생각하고 있던 터라 계획이 흐트러지는 게 싫었다. 평소에도 즉흥적으로 뭔가를 하기보다는 미리 구상한 대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 이상한 철저함이 있는 나이기에, 개인적인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도 당일 날 잡게 되거나 갑자기 변경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편이다. 이렇게 나의 평온함을 깨뜨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크리스마스 기운이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자식새끼 이쁜 것 보러 오겠다는 사람을 말리지는 못하는지, 그러라고 승낙을 하고 말았다.


언니에게는 청소가 안된 상태라며 미리 떡밥을 깔아 두었지만, 역시 사람을 오라고 초대하고 나니 집안의 지저분함이 눈에 속속 들어와서 스트레스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급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재택근무며 집콕 휴일을 보내며 아무렇게나 널려 놓은 물건들을 집어넣고, 현관의 제멋대로 어질러진 신발들을 가지런히 하다 보니 허리가 지끈지끈 쑤셔왔다.

‘아, 혼자 있었으면 지금 이렇게 청소는 안 할 텐데!’


어쩌겠는가, 방문을 허락한 이상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은 애초에 명백하므로 핑계 댈 곳이 없었다. 어지른 사람도 나고, 치울 사람도 나인데, 그저 그 심판의 날이 오늘 지금 이 시간이 된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한바탕 언니의 방문으로 저녁식사도 준비해 대접했다. 어묵탕에 샤부샤부 야채와 고기를 넣어 뜨끈하게 속을 채웠다. 오래간만에 손님을 맞은 우리 집 갱얼쥐님도 숨이 헥헥 넘어갈 정도로 신나게 놀고, 겨울의 중간점에서 점점 창밖은 깜깜해져 간다. 왁자지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떠들던 언니가 가고 나서야 소파에 몸을 누인다. 갑자기 인식된 집안이 조용하게 느껴지고, 시기가 이른 청결함만 집안에 남아 공간이 텅텅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멍하니 앉아 돌이켜보니 2020년 하반기에는 사람들을 집으로 자주 초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결혼 전 자취 10년 차가 넘었던 나는 원래 혼밥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고, 불판에 고기 구워 먹는 식당만 아니면 혼자 먹는 게 거의 아무렇지 않은 정도였다. 올해는 코로나 유행이 길어지면서 꼭 만나야 하는, 만나고픈 사람들을 조금씩 초대했었는데, 평소 나의 혼자된 습관과는 반대로 제대로 식사를 준비해서 함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람을 집으로 데려와서 극진히 대접하는 것에 서툴기도 하고, 개인적인 공간을 중시하는 편이라 아무리 친밀하다고 하더라도 외부인의 방문은 나를 조금 더 신경 쓰게, 긴장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경험해보니, 누군가가 집에 와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떠나간 뒤의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따듯함의 여운이 몽롱하게 좋았다. 피곤하지만 좋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20살 이후에 부모님과 떨어져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한 것과 남자 친구(남편)와의 오랜 롱디 생활이 “혼자여도 괜찮아”, “혼자인 것도 좋아”, 혹은 “혼자여도 괜찮아야 해, 별 일 아냐.” 같은 생각을 반복하게 하고 나의 ‘혼자를 받아들이는 습관’을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면, 혼자임을 비관하면 외로운 사람으로 단순하게 환원이 될까 봐 싫었다. 아마도 조금은 방어적인 씩씩함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나를 혼자 두지 말아 달라고 무조건적으로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그리고 사실 같이 먹어도 떠먹는 건 나 혼자다.


이렇게 혼자를 기르는 일에 익숙했던 나인데, 최근에는 남편과 주말 부부 생활을 하게 된 친구에게 그림 그리기 수업을 받게 되어 매주 수요일마다 저녁을 함께 먹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업 시간이 저녁 무렵이기도 하고 배우는 값을 지불한다는 취지에서 식사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친구와 함께하는 날에는 유난히도 그럴듯한 식사를 하려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는 대충 밥 한 공기에, 적당히 짭짤한 반찬 혹은 국 한 가지만 있으면 10분, 15분 만에도 식사(a.k.a. 연료 충전)를 마칠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는 건 전혀 다른 의미로 나에게 적용되고 있었다. 밥 다운 밥, 식사 다운 식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이 있었고, 밥 먹은 기분이 나게 해주고 싶었다.


하루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친구에게 미리 알리지 못한 채로 수업을 미루자고 부탁을 하게 되었는데, 그날도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내가 밥만 먹고 가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고, 어차피 혼자 밥을 먹어야 하니 그러자며 친구가 수락한 것이었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뜨끈한 전골을 앞에 두고 앉아 평소처럼 맛있게 냠냠 쩝쩝 식사를 했다.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도 혼자 있으면 밥도 무심히 대충 때우게 되는데, 너랑 수업하면서 매주 한 번은 누군가와 밥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참 좋더라.”

놀랍게도 우리 둘은 같은 마음이었고, 그것이 별것 아닌 밥 한 끼임에도 굉장한 특별한 것임을 말하지 않아도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 외에도 다른 몇 명의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요리를 대접할 계획을 세우면서, 재료를 위한 장을 보고, 시간 맞춰 물을 올리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내 손으로 바삐 움직이며 준비하며 사람들을 집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고 뿌듯했다. 그 결과물이 그들에게 어떤 맛으로 느껴질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건 먹을 수 있는 무언가에 오롯한 애정을 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을 겪어가면서 나는 내가 투자한 시간과, 그들이 오고 있는 시간 모두를 소중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누어서 불편한 시간이 아니라, 함께해서 더 풍성해지는 시간임에 틀림없었다.


'개인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여도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둘 이상은 더 이상 개인적인 편함에만 머무를 수 없는 공동의 경험에 대한 기대감을 형성한다. 식사 인원의 2진법 공식이랄까, 2 이상의 숫자가 되면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변환된다. 코로나 덕분에, 남편과 떨어져 지낸 2020년 덕분에 나는 같이 밥 먹는 기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건 정말 좋은 것이고, 또 조금 귀찮은 일이고, 하지만 결국 흐뭇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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