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에 대한 생각
브런치를 하다 보면, 다양한 소재와 스타일의 글을 만나게 된다.
남들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도 있고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흔한 일을 글감으로 두고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을 녹여내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도 있다.
전자의 글쓰기는 어려운 듯 하나 글로 쓰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쓰는 일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흔치 않는 경험이 갖는 기본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독자로서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부지런히 살아내면서도 다른 이의 또 다른 삶을 궁금해하고, 엿보고 싶어하며, 그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경험에 몰입하고 싶어 한다. 그게 자신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잠깐 개인의 삶으로부터 옮겨가 도피할 수 있는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글을 쓰면서 동시에 독자의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희소한 간접경험의 매력을 잘 알고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글쓰기는 매우 흔하고 쉬워 보이나 막상 잘 쓰려고 하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을 써 보자니 괜히 뭔가 덧붙여야 할 것 같고, 이런 걸 글로 써 내려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가 이런 이야기를 재미있어나 할까?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독자의 관점에서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글이 될 수도 있다. 근데 작가로서는 이런 글감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한 사람도 읽어주지 않는다 해도 쓰고 싶은 날,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후자의 글쓰기 '흔한 글쓰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점차 실감하게 된다. 전자의 글쓰기를 하려면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경험을 얻기 위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혹은 특정한 경험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꺼내게 될 수도 있다. 경험에서 오는 감각이나 감정은 행복하고 편안한 것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리스크테이킹이기에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글쓰기에 부담이 생기면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 진다. 작가의 벽(Writer's block)이다. 이렇게 되면 꽤 오랫동안 글을 시작조차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대부분 글감의 부족, 혹은 머릿속에 떠오른 소재에 대한 불만에서 이런 지지부진한 회피가 시작되는 것 같다.
때때로 내 글이 부끄럽고, 떨어져 나가는 구독자로 마음이 서글퍼질 때, 나는 특별한 경험을 흥미롭게 써내는 작가들의 글을 한동안 읽지 않고, 사소한 것을 쓰는 글들을 통해 용기를 전달받곤 한다. 아, 이들도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하는구나 위로를 받기도 하고, 그들은 어떻게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자극받고 동기부여를 얻기도 한다. 비결은 바라보는 장면이 아니라 그들의 눈이 예뻐서이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의 동굴이 남들보다 깊어서이다. 그래서 그런 글들은 작가의 '팬'을 만든다. 그들의 시선과 마음의 움직임을 닮아가고 싶어 지는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브런치는 나에게 정말 새로운 감각을 깨워주는데, 바로 글쓰기를 꾸준히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다. 동시에 브런치의 통계나 구독자 수 라이킷 같은 수치는 나를 기쁘게도 서운하게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다른 모든 브런치 작가들처럼 알게 되었다. 숫자는 정말,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구독자가 0에서 1이 되는 순간 만이 유효하게 의미 있는 순간이었음을..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수치들이 요동하게 하지만, 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한 단어, 한 구절이라도 새길 수 있다면, 그것이 기적이라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고 싶다. 오늘도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잘 쓸 수 있도록 한 스푼 더 용기를 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