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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성 Dec 20. 2020

2.

흔들리는 엄마, 이상한 것은 아닐까?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 안의 모성은 끊임없이 이 시간을 거부하기에 이따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 자다 깨어 찾는 목소리에 버선발로 달려가 잠이 든 아이를 눕혀 놓고 다시 서재로 오가기를 여러 번. 그렇게 그 시절 우리의 새벽은 바통을 주고받는 이어달리기 같았다. 지나고 나서 지난 시간을 떠올려보면, 자다 깨어 곁에 없는 나를 찾던 아들을 더 많이 안아줄걸. 그리고 놀라지 않도록 밤새 곁에 있어 줄걸 싶다. 하지만 만약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혼자 있는 새벽 시간을 포기하진 못했을 거 같긴 하지만. 



'이제 인생에 나는 없고 엄마, 아내 등의.. 무수한 역할들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

 흔들린다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이란 존재로 인해 급변화는 현실에 적응해가는 인고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우주의 중심이 나에게서 아이로 바뀌며 겪는 여러 변화 중 이따금 올라오는 막막함과 공허함은 '혹시 내가 엄마 같지 않은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지만 괜찮다. 마음의 격동을 겪는 경우는 허다하니깐. 잘 지내는 것 같아 비교하고 움츠려 들었던 '다른 엄마'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흔들림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임신과 육아로 몸도 추스리기조차 버거운 우리에게 신은 왜 이런 시련을 줄까. 



 '엄마 같지 않은 엄마입니다.'

 지금의 삶을 가급적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나는 도저히 육아와 가사에 집중할 수 있는 '엄마'가 되지 못함을 인정하였다. 도덕적 신념 안에서 적절히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아야 스스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 점에서 아이가 커가는 지금 이 시간이, 서로 함께 건강하고 성숙하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화가 나는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음속 깊숙이 숨어있는 욕구를 찾을 수가 있는데, 근원적인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가장 안전하고 힘없는 자녀에게 분노와 공격성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그렇기에 내 안의 불안정함을 안전하게 표출하기 위해선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자랄 수는 없을까?'

마음속 나를 마주하니, 다시 나로 자립하고 싶다는 것. 이제 엄마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나로 존재하고 싶다니 좀 어이가 없지만 말이다. 여하튼, 먼 훗날 '내가 널 위해 이렇게 희생했는데'란 래페토리를 내뱉으며 사랑하는 널 억압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스스로를 세우며 다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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