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편'에만 생기는지 의문이라면
상지대신문 3월 19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민주당 지지자 일부는 야속할 거다. 촉망받고 인기 있는 당내 유력 정치인들이 잇따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공직 사퇴 의사를 밝히거나 수사를 앞두고 있으니. 공교롭게도 민주당과 함께 소위 진보성향으로 불리는 문화·예술계도 같은 처지 아닌가. 야당은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이번 일을 여당과 진보진영 공격에 활용하고 있다. 지방선거가 위태롭다는 말도 나온다. 왜 하필 지금 이 시기에 이런 일이 우리 편에서만 생길까. 이쯤 되니 지지자 일부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는 모양이다. ‘미투 운동’이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하고, 대북특사와 재벌기업 보도통제 의혹 등 더 중요한 이슈가 묻힌다는 우려를 표하는 건 그래서이리라.
말 나온 김에 한 번 얘기해보자. 미투 운동이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는 건 대체 무슨 말일까? 어렵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가해자를 고발한 이들이 폭로의 순수함과 결백함을 몸소 증명이라도 해야 한다는 걸까. 듣자 하니 저 되도 않는 헛소릴 한 당사자는 “미투 자체가 공작이란 게 아니라, 미투를 공작에 이용하려 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을 해명이랍시고 했단다. 뭔 소린지 더 모르겠다. 마치 피해자가 못 보는 걸 자기는 안다는 듯 으스대는 꼴 아닌가. 용기 내기까지 누구보다 고민을 거듭했을 피해자가 한낱 시사 라디오 진행자에게 ‘맨스플레인’ 당할 이유가 있을까. 금태섭 민주당 의원 말마따나 저 혼자 잘난 척 “피해자를 바보 취급”한 셈이다.
미투 운동이 더 중요한 이슈를 덮는다는 말도 마찬가지. 대체 뭐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이슈란 말인가.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 뿌리 깊은 강간문화와 성폭력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지지와 연대로 공감과 변화를 촉구하며 남성 중심 가부장제 체제에 균열을 내고 그 자체를 뒤집는 혁명이다. 한국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미투 운동을 일개 ‘섹스 스캔들’ 취급하고, 해일이 밀려오는 데 조개나 줍고 있다 비웃고, 하필 이 중차대한 시기에 터뜨리느냐 힐난하는 이들이야말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그런 이들은 정의를 부르짖으며 ‘사람 사는 세상’을 입 밖으로 꺼낼 자격 없다.
왜 하필 지금 이 시기에 이런 일이 우리 편에서만 생기는지 아직도 의문인가? 야속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처절하게 반성하고 철저히 쇄신할 기회가 생겼을 뿐이다. 답은 간단하다. 미투 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자. 공감하는 이들과 연대하자. 남성 중심 가부장제 체제를 성평등 사회로 혁명하자. 그것이야말로 진정 더 가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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