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로 새 국면 맞은 상지대 사태
20여 년 만에 복귀해 상지대를 암흑으로 뒤덮고 있는 ‘사학비리 철옹성’ 김문기 체제가 마침내 무너질까? 불과 반 년 전까지 이런 암울한 글(‘우리는 김문기를 반대한다’) 써 놓고서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그땐 그랬다. 아니,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정말 안 좋았다.
법원과 소청위, 노동청 등에서 줄곧 부당함이 입증되고 있음에도 학생·교수·직원에 대한 무차별 징계가 이어졌고, 검증되지 않은 (김문기 씨 측근이란 소문이 파다한) 사람들이 이런저런 직함을 달아 교수와 직원으로 특별 채용됐다. 학생회와 학내 언론 등 학생 자치 기구를 향한 탄압도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구성원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학과 통·폐합을 결정하는 ‘일방통행’ 구조조정이 단행되는가 하면, 인성교육을 빙자한 ‘최고 존엄’ 김문기 씨 우상화 작업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공공연히 행해졌다. 급기야 김 씨와 그 측근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짜고 치는 고스톱’을 펼쳐 김 씨 총장 복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러다 김 씨가 다시 총장이 돼 ‘김문기 체제’가 더 공고해지는 것 아니냔 걱정이 컸다.
하지만 지난 23일 모든 게 뒤집혔다. 상지대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이사 선임처분 취소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이 이날 원고인 교협·총학 손을 들어 “교육부 장관이 2010년과 2011년 김 모 씨 등 8명을 상지학원에 이사로 선임한 처분을 모두 취소한다”고 판결한 것. 김문기 씨 상지대 복귀의 결정적 계기가 된 2010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이다.
이로써 임원 9명 모두 김문기 씨가 임명한 현 상지학원 이사회도 더는 정당성을 갖기 어려워졌다. 교육부가 모든 상지학원 임원 승인을 취소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십 년간 안팎에서 상지대를 영향력을 행사해온 김 씨가 쫓겨날 날도 머지않을 전망이다. 그야말로 극적인 전세 역전이다.
■ 길고 긴 법정 싸움 끝에 승리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010년으로 돌아가 보자.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는 2007년 대법원 판결로 ‘정상화’ 기회를 놓친 상지대는 당시 김문기 씨 복귀 야욕으로 학내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 산하 사분위는 상지대 분규를 해결하겠다며 상지학원 이사 9명을 김문기 측 이사 4명, 구성원·교육부 측 이사 4명, 임시이사 1명으로 구성하도록 결정했다. 사분위는 “옛 재단 이사 과반 추천권 보장” 원칙을 앞세워 학생·교수·직원 요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김문기 세력 복귀를 주도하고 정당화했다.
학내 구성원이 수업거부·삭발·단식·상경집회 등으로 맞섰지만 소용없었다. 김문기 측 이사가 학교에 들어온 후, 상지대는 말 그대로 악몽의 나날을 보냈다. 교육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상지대 교협·총학·노조는 즉각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법원에 이사 선임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개방이사 임명 절차를 누락하는 등 사분위와 교육부가 학내 구성원 참여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정이사를 선임한 건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1심과 2심은 이를 모두 각하했다. 교협·총학·노조가 “상지대 운영에 관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며 소송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립학교법과 상지학원 정관상 교협·총학은 학교 운영에 참여권이 있다”고 인정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입장대로 소송 자격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은 23일 “개방이사 추천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정이사 9명을 일괄 선임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구성원 주장을 받아들여 2010년, 2011년 교육부의 상지학원 정이사 선임을 모두 취소했다.
상지대 구성원이 6년 만에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순간이었다.
■ 교육부, 이번에도 밥상 걷어찰까?
물론, 지나친 설레발은 금물이다. 갈 길이 더 남았다. 법원이 물꼬를 터준 상황에서 이젠 교육부와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상지대 민주화에 앞장 서온 정대화 교수는 27일 경향신문 기고에서 교육부에 ▲대법원 상고 포기 ▲상지학원 이사 직무정지 및 해임 ▲상지대 특별감사 ▲상지학원 임시이사 파견을 요구했다. 교육부가 사분위 결정의 부당함을 밝힌 법원 결정을 인정해 상고를 포기하고, 임원으로서 정당성을 잃은 현 상지학원 이사 9명을 마땅히 직무정지·해임한 뒤, 특별감사를 벌여 김문기 체제의 파행을 파헤치고, 대학 정상화의 밑거름이 될 임시이사를 선임하라는 것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김문기 체제에서 상지대는 계속 고통받고 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그럴 깜냥과 자격도 없는 자가 ‘인성교육’ 교수 행세를 하고, 이미 해임된 김문기 씨가 학교 운영을 사실상 쥐락펴락하고, 학교 자산이자 학생 실습에 필요한 한우 70여 마리를 수상한 방식으로 헐값에 매각하는 기막힌 일들이 여전히 펼쳐지고 있다. 이 와중에 김 씨는 상호저축은행법 위반으로 지난 9일 1심에서 벌금 2천 만 원을 선고받아 “비리는 다 옛 말”이라 옹호해온 측근들을 머쓱하게 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상지대를 방문한 뒤, “상지대는 어떤 법도 통하지 않는 ‘김문기 독재체제’의 아성이 남아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사학비리를 척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근데, 그걸 이제 아셨어요?) 교육부와 정치권이 사학비리를 비호한다는 오명을 씻길 원한다면 지금이야말로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상지대 구성원은 모처럼 한껏 들떠 있다. 길고 길었던 싸움이 곧 막을 내릴 거란 기대가 크다.
총학·교협·노조 등으로 구성된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번 판결로 김문기 씨 중심의 정이사 체제는 정당성을 상실하고 존립 근거를 잃었다”며 “상지대 분규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SNS에서도 승리를 축하하는 메시지들이 타임라인을 수놓고 있다.
무능하고 불통인 사학비리 전력자는 학교에서 물러나라는 상식적인 바람, 그걸 이루고자 수십 년간 지치지 않고 싸워온 이들이 있었기에 먼 얘기 같던 상지대 민주화도 조금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곰 동상을 부수며 다 함께 축배를 들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상지대 구성원은 왜 김문기 씨를 반대할까, 궁금한 분들은 아래 글을 읽어주세요.
우리는 김문기를 반대한다 | 총장 해임에도 끝나지 않은 상지대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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