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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카니발에 일본은 없다

반일을 강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게 옳은가

by 전우재

궂은 날씨에도 성황리에 막 내린 원주 대표 축제 다이내믹댄싱카니발 공식 무대에서 일본 팀을 끝내 볼 수 없었다. 주최 측은 범국민적 반일 정서와 일본 참가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일본 팀 참가를 취소했다. 일본 6개 공연팀 285명이 축제에 참여하지 못했다. 일부는 이미 항공권까지 끊었는데,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수수료 등 비용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이런 가운데, 축제 마지막 날 일본 재즈댄스팀 수가재즈댄스 스튜디오가 자비로 한국에 와 댄싱카니발 현장을 찾았다. 수가재즈댄스 스튜디오는 2012년부터 줄곧 댄싱카니발에 참가해온 팀이다. 이들은 한글로 쓴 손팻말을 들고 축제장 곳곳을 누비며 프리허그를 제안했다.


“현재 일본은 한국 여러분에게 나쁜 감정을 갖게 하고 잘못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여러분, 원주 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희는 한국과 일본의 우호 관계를 되돌리고 싶어 왔습니다. 저희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언제까지나 무슨 일이 있어도 친구로 남고 싶습니다. 저희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안아주세요.”
“모든 일본인이 한국에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두 나라의 관계가 좋아져서 교류가 계속 유지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어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왜 한국에 반감이 없음을 호소하며 우리에게 사과해야 하는가.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나. <강원일보> 같은 지역지부터 <한겨레> 같은 진보 언론까지, 냉랭한 한일 관계에서 어쩔 수 없는 일쯤으로 보도하던데, 정말 이게 불가피한 일이었나. 민간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 시민 간 우정을 확인한 훈훈한 일화로 소비하면 될 일인가. 어떤 반성과 부끄러움도 없이?


일본 팀 참가 취소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반일 국민 정서와 일본팀 참가가 대체 어떤 관련이 있나. 지금 반일 국민 정서가 일본인 그 자체를 향하고 있나. 참가자 안전은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축제 참가자나 시민들이 일본 팀에 야유를 퍼붓고 달려들고 그럴 리도 만무한데. 합리적 이유라고 볼 구석이 조금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일방적으로 참가 취소를 요구한 주최 측이 아닌, 일본 팀이 시민에게 사과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나는 이 상황이 참 이상하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누가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 걸까.


주최 측은 사실상 일본 팀을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참가 취소 요청한 거 아닌가. 차별적이고 정치적인 결정을 내린 건 다름 아닌 주최 측이다. 댄싱카니발은 원주와 전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축제가 되겠다고 늘 강조한다. 올해도 러시아, 대만, 싱가포르 등 12개국 34팀 1,609명이 참가했음을 자랑스레 밝힌다. 그렇게 세계 각국의 자발적 참여를 자화자찬하면서, 정작 일본 팀 참가 취소에는 별 부끄러움을 못 느끼고 반성도 없는 모양이다. “일본 수가재즈댄스 스튜디오의 깊은 우정과 참가에 감사를 전한다. 댄싱카니발은 이번 일을 계기로 올바른 예술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주최 측 입장은 얼마나 공허한가.


최근 정세와 관계없이 일본 팀을 초청했다면 개방과 포용, 다양성을 중요시해온 원주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살릴 수 있었을 거다. 국제주의적 시민의식이 건재함을 원주시가 앞장서 보여줄 수 있었을 거다. 둘 다 놓치고, 남은 건 부끄러움뿐이다. 얼마 전 끝난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선 일본인 선수가 금메달을 따자 한국 관중들이 다 같이 축하 박수를 보내 잔잔한 감동을 주지 않았던가. 댄싱카니발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차버렸다. 한일 시민들이 감동을 나눌 기회를 박탈했다. 이래서야 댄싱카니발은 세계로 나아갈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거다. 반일을 강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한 주최 측 결정이 유감인 이유다.


문화교류마저 정세를 이유로 해체되는 건 명분과 실효성에서 공히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 관계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평화를 열망하는 한일 시민의 연대다. 일본 정치가 자민당 중심의 닫힌 역사관에서 벗어나, 진보·개혁 진영의 열린 역사관이 주류를 이루도록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나서서 반일 국민 정서를 이용하는 건 그래서 문제다. 잘못된 시그널을 줄 뿐이다. 일본이 먼저 잘못했으니 우리도 불합리하고 무제한적인 보복 조처를 하는 게 정당하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퍼뜨리고, 궁극적으로 한일 시민의 연대를 방해한다. 일본 내 진보·개혁 진영의 운신 폭을 좁혀 자민당 중심 정치세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비단 댄싱카니발 뿐만 아니라, 일본산 제품 불매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시청 주변에 일본 불매 현수막을 거는 등 반일 애국주의 드라이브를 거는 원주시가 그래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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