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직업인 자가 취미로 글을 쓰다
글쓰기가 직업인 자,
취미로 글을 쓰다
내 소개에도 간단하게 썼지만, 저는
입니다.
(~녀라는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저에 대해 쉽게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저 스스로가 타자화가 되는 건 용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문송문송한지 설명을 하자면,
숫자보다 글자가 좋아 고등학교 때 문과를 택했으며,
초등학교 때 가장 싫어하던 방학 숙제가 곤충채집과 실험과 관련된 일기였으며,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물리,
가장 싫어하던 시간은 과학 실험 시간,
수학 공식을 이해하기 보다는 답을 줄줄이 외워서 수리영역을 보고 처참히 망했으며,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도 숫자와 과학이 싫어 숫자와 관련된 수업이 있는 전공은 모두 배제했고,
남들은 스스로 조립하고 연구한다며 흥미를 붙여보라고 부모님이 사다준 컴퓨터로 프린세스 메이커만 주구장창 했으며,
화학 원소기호 주기율표를 다 외우지 못해 화학 성적은 언제나 하위권에 머물던 사람입니다.
때문에 경제지에서 삶은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경제 성장률이 몇 퍼센트, 기초노령연금 계산법이 어떻고, 매달 얼마씩 국민연금을 내면 65세 때 돌려받는 금액이 어쩌구 저쩌구....
이런 사실은 브런치를 운영하는데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이 제가 바라보는 세상, 세상에 이치에 대해 고민하는 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주절주절 적어봤습니다.
문송문송하다고 철학 인문학적 이해가 깊냐고 물으신다면, 그에 대해선 할 말이 없습니다.
고백컨데, 저는 똑똑한 사람은 아닙니다.
칸트가 어쩌느니 마르크스가 어쩌느니. 한 때 저도 열심히 그들의 책을 읽고 이론을 공부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신 제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고 밍기뉴, 뽀르뚜까와 교감하던 5살 제제에게 공감하는 감성을 지녔고,
아프리카 문학의 대부인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다(Things fall apart)'를 읽고 제국주의와 기독교로 몰락하는 전통 문화에 가슴 아파할 줄 알고,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을 읽으면서 신데렐라 스토리를 꿈꾸면서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기도 하며,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눈을 뜨자마자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가 느끼는 고립과 불안함을 느끼며 흐느끼기도 했고,
제목도 모른 채 뜨거운 형제애와 멋진 액션에 감동해 봤던 영화가 '영웅본색'이라는 걸 깨닫고 홍콩 영화의 매력에 푸욱 빠지기도 했으며,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읽으며 스릴감과 함께 인간 본성에 내재된 악한 모습을 보며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멋진 글을 쓰는데 방대한 과학적 지식, 논리적인 이해, 철학적 인용 등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세상은 저처럼 쉬운말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모두가 다 똑똑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의 직업적 글쓰기와 개인적 글쓰기의 목적과 방식은 어쩌면 유사할지도 모릅니다.
보통 사람의 감성에서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 보통 사람의 언어로 세상 일을 표현하기.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제가 하고 싶은 글쓰기 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아는 체' 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누구나 다 알것이라고 생각하고 글 쓰는 건 어렵지 않아요. 뭐든 잘 안다고 다 지껄이면 되거든요.
하지만, 제가 쓰고 싶은 글은 그런 글은 아니에요.
내 글을 읽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세대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읽고 공감하고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랍니다.
저의 생각이 잘못됐다면 저를 바로잡아주셔도 좋고, 저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맞장구 쳐주셔도 좋아요.
그렇게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해볼까 합니다.
20대, 베이비붐 세대들의 자녀, IT와 글로벌화가 익숙한 민주화 이후 세대.
이게 저를 대표하는 몇 가지 키워드들입니다.
간단하게 저의 소개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엔 왜 제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됐는지 적어보겠습니다.
Nov, 2nd,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