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걷기다.
"매일 기사 쓰는데 집에 가서 또 글 쓰는게 지겹지도 않니?"
브런치를 시작했다고 하니, 한 지인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소속된 부서나 취재 분야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매일 한 건 이상의 기사를 작성해 지면이나 온라인에 송고해 내보내는 게 일상입니다. 현재는 조금 다른 업무를 하고 있긴 하지만,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쓰기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이 지인의 눈에는 글쓰기는 업무의 연장선으로 보였나 봅니다.
제가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글쓰기는 걷기다.
우리는 매일 걷지요.
아니,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어딘가 이동하기 위해 걷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화장실을 갈 때도 걸어가고,
출근 또는 등교하기 위해 (교통수단을 타러 가려고) 걷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또는 식사를 하러 가기 위해 걷습니다.
(물론 몸이 불편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 '걷는다'는 행위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걷기보다는 '이동한다'는 표현이 적합하겠네요)
그만큼 걷기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즉, 필수불가결하지요.
저는 걷기만큼이나 글쓰기 또한 기본적이면서도 필수불가결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글쓰기 만큼 자신의 생각을 깊이 있게, 논리정연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말하기는 아무리 달변가라도 말하면서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목소리의 크기나 톤, 억양 등에 따라 전달하려는 의도가 왜곡되는 경우도 있고요.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지요. 우리가 끊임없이 카톡으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역사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글쓰기, 즉 기록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겁니다.
문자가 생기기 이전의 역사와 생긴 이후의 역사. 그 기록된 내용의 분량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실제 인간이 살아온 세월의 95%를 차지하는 게 문자가 생기기 전인 선사시대입니다. 문자가 생기고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겨우 5% 세월의 역사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길고 방대하죠. 그만큼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올바르게 역사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니 생략하도록 할게요)
자아성찰, 자아실현, 자아표현 등 개인적 차원에서도 글쓰기는 필수불가결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도 글쓰기는 걷기 만큼이나 필수불가결한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러므로 저는 걷기만큼이나 당연한 행위를 개인적 차원에서 실행에 옮기려는 것 뿐이랍니다.
글을 쓰는 첫번째 이유가 조금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이었다면, 두번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언론사에 들어가면 수습 과정을 거칩니다.
修닦을 수, 習익힐 습. 학업이나 실무 따위를 배워 익히는 과정을 뜻합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배워 익히는 과정이라지만, 쉽게 말하면 '바닥에서 구르는 시기'이죠.
제가 아직은 멋모르는 수습 기자 시절,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기자는 기사가 전부야. 네가 쓴 기사가 너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그러니까 무조건 기사 열심히 써라."
선배가 말한 의미는 아마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보도되는 내용이니 스스로 책임지고 열심히 하라는 의미였을 겁니다.
선배가 해준 말을 곰곰히 생각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자 본인의 생각과는 다른 관점으로 기사를 써야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기사를 열심히 쓸 경우 일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기사였습니다. 다수의 독자들은 관심이 없거나 일부는 기레기라며 대중들에게 손가락질 받거나, 혹은 철저하게 무시 받았습니다.
(저는 악플모다 무서운게 무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무플인 상황을 너무도 많이 접해왔어요)
땅판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기자도 월급쟁이인지라 윗사람들의 명령에 거부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 사사건건 반항해도 찍혀서 정말 중요할 때 반항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개인적 가치관에 반하는 내용을 쓰기도 했어요. 기사의 경중을 따져가며 일부 기사들은 휘갈겨 쓰기도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제 이름으로 나간 기사가 저란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고백컨데, 제 생각 또는 가치관과는 배치되는 기사들도 써왔습니다.
일부 기사 내용은 동의하지만 일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보도된 내용이기 때문에 제 스스로 책임을 져야합니다.
이것이 자발적이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작은 '변명'의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회사의 논조, 데스크의 성향에 좌우되지 않는 공간이요.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은 지금 이 공간에서 저의 온전한 생각을 펼치고 싶어요.
그리고 온전한 저의 생각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두번째 이유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신문에, 온라인에 전부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지면상의 이유로, 지면에 공간이 부족해 빠진 내용들,
회사의 논조나 데스크의 성향과 많이 달라 '킬'된 아이템들.
기사화될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들.
이런 썰을 풀어낼 공간이 필요했어요.
저만 알고 있기에는, 제 스마트폰 메모장과 노트북에 썩혀두기에는 아까운 이야기들을 다 꺼내고 싶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와 항상 소통하고 싶어요.
제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어요.
솔직해지자구요, 우리.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서 제 글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공감하고 싶어서 브런치에서 글을 읽는게 아닌가요?
장황하게 적었지만, 결국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리고 당신 생각을 들려주세요.
Nov. 3rd,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