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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랑 May 27. 2018

방콕한달살기 #02 "네? 한달이나요?"

본격적인 파견이 시작되기 3주 전.

같이 포럼 팀으로 파견 발령을 받은 B선배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안녕? 나 B선배야. 혹시 내일 점심... 분명 선약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같이 먹을 수 있어? 태국 사람이랑 먹는 자리인데, 장소는 가로수길.”


정말 우연히도 그 날 점심시간이 비어있었다. 오후에 일정이 하나 있어서 이동하기 편하게 일부러 비워뒀던 탓이다. 처음에 약속이 있다고 말할까 하다가, 태국 포럼 업무도 공유할 겸 알겠다고 했다.


“오!!!!! 이럴수가! 로또에 당첨된 기분” 이라며 B선배는 기뻐했다.


우리가 행사 준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B선배의 전언이었다. 하지만 난 맛있는 점심식사를 외국인(?)과 함께 한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다음 날, B선배에게서 급하게 카톡이 왔다.


“정말 미안한데, 내가 지금 가고 있는데 차가 너무 막혀서 그러는데, 네가 그 사람 좀 데리고 같이 식당까지 가줄 수 있겠니?”


이번에도 난 망설였지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다. 인사도 한 적 없는 사이라서 처음 만나면 어색하겠지만, 같이 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B선배는 태국인 명함과 함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내줬다.


뭔가 투박해 보이는 이미지다. 이런 편견을 가지면 안 되지만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인상이 참 순해 보인다. 아, 아니다. 국적과 첫인상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이런 몹쓸 편견은 빨리 버려야 한다. 이 세상 어디에나 날카로운 지성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도 있고, 성격이 온순하고 선한 사람도 있으며, 반대로 죄질이 나쁜 악질 범죄자도 있는 법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어디나 똑같을 텐데, 이런 편견은 옳지 않다. 사람은 직접 만나보고 판단해야 한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빨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찰나, B선배가 태국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 휴 다행이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도 됐기 때문이다. 곧바로 우리의 손님이 도착했다.


사진처럼 선해 보이는 인상이다.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영어를 잘 하는데, 태국식 억양이 묻어난다. 약간 알아듣기 어렵지만, 정신력을 듣는데 집중하면 캐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날 먹은 점심은 깔끔한 한식이었다. 다행히도 우리가 만난 태국 사람도 맛있게 잘 먹었다.(휴)


같이 밥을 먹는 동안 B선배와 그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때까지 나는 태국에서 포럼을 우리가 한다는 것 빼고는 아무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B선배는 BOI가 어쩌고 저쩌고, EEC가 어쩌고 저쩌고, DPM이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BOI는 또 뭐고, EEC는 또 뭐고, DPM은 누구지?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열심히 경청을 했다. 중간 중간에 맞장구를 치고 싶었지만 어떤 식으로 맞장구를 쳐야할지 몰라서 고개만 끄덕였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하러 카페로 이동했다. 기왕이면 가로수길이니 힙한 카페를 데려가고 싶었다. 열심히 검색해 데려간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 장소를 옮기면서 대화의 주제도 좀 더 가벼워졌다.


이 카페 이름은 까먹었는데 분위기가 제법 괜찮았다.

“제 태국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가 무슨 왕립 대학교? 쭐...어쩌고 학교를 나왔더라고요~”


“아 쭐라롱꼰대학교요? 저도 거기 나왔어요.”


“와~ 거기 명문 대학교라던데! 역시 엄청 똑똑하신 분이셨군요.”


새로운 사실을 발견. B선배는 업무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일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던 모양이다. 내가 아이스 브레이킹 차원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꺼내자 개인적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대화는 출신 대학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식사하면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는 한결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태국 사람과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B선배와 잠깐 대화를 나눴다. 사실 가장 궁금한 건 언제 방콕으로 떠나느냐 였다. 끝나고 나는 혼자서 휴가를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선배 저희는 근데 방콕에 언제가요?”


“응 아마, 일찍 가게될 거 같아. 4월 말이 될 거야. 빠르면 4월 23일주에 떠날 수도 있어.”


“네? 행사가 5월 16~17일이잖아요. 그럼 한 달이나 있게 되는 거네요?”


“응 맞아. 먼저 가서 현지에서 인터뷰도 해야 하고, 인비테이션 레터도 보내야하고 해야 할 일이 많거든. 아마 너랑 나랑 선발대로 먼저 나갈 것 같아.”


“아... 그렇군요. 선배 근데 태국은 그 시기에 우기라면서요. 그리고 많이 더울텐데 여름 옷 많이 챙겨가야 할까요?”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넌 아마 비 맞을 일이 없을 거야. 그리고 긴팔 긴바지 꼭꼭 챙겨와. 반팔 반바지만 가져오면 감기 걸리게 될 걸. 가디건이랑 긴바지 꼭 챙겨와.”


머라그....여????


긴바지...? 긴팔...?

태국은 ‘Everyday Summer’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었나.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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