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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랑 Oct 28. 2019

[퇴사일기#01] "부장님, 저 퇴사하려고요..."

[작심삼일:] 하루만 더 브런치에서 버텨보자

나의 성격에 대해 나 스스로가 뭐라 말하기 참 어렵다.


남들은 나는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고,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 명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자신은 아직까지도 내 성격을 모르겠다.


털털한 사람 같지만, 작은 면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 같기도 하고. 사교적이고 밝은 사람 같지만, 혼자 밥먹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여행하는걸 즐기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사람 같지만, 정말 죽도록 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한 말들도 많다.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퇴사를 하겠다고 마음먹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직접 회사사람들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려고 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퇴사를 결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건 그 사실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라면 분명 시원하게 부장님께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당차게 말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다. 대학원 합격 통보를 받고 무려 5일을 고민한 끝에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그것도 갑자기 부장님이 부서 내 팀 구성을 바꾼다고 발표하면서, 지금쯤은 말을 해야겠다 싶었다.


모두가 놀라는 눈치였다. 왜냐면 나 말고도 최근에 퇴사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일이 적성에 안 맞는 편도 아니었다. 회사 사람들과 큰 인간적인 관계에서 문제도 없는 편이었다. 회사 구성원의 80% 이상이 나를 알고 있었고, 절반 정도는 나랑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퇴사하겠습니다."


이렇게 시원하게 한마디로 끝냈으면 좋으련만... 내 성격이 절대 털털한 게 아니라는 걸 퇴사 선언 날 느꼈다. 나는 구차하게 퇴사 이유를 구구절절 붙여넣었다. 그리고 절대 회사가 싫어서라는 말도,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뉘앙스는 살려두었다.


"제가 벌써 입사한지 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부족함도 느끼고 한계도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아직 만으로 20대라서... 잠시 쉬면서 더 늦기 전에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대학원에 가려고 준비했는데, 최근 합격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풀타임이라 회사랑 병행하기 힘들 것 같아서..."


시원하게 당장 그 다음날부터 그만두고 싶었지만, 내가 빠지면 나 이외의 구성원들이 힘들어질 걸 알기 때문에 2주 정도 더 다니겠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미련이 남았던 것일까.


그동안 회사의 다른 선배 및 동료 후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그만두는 날짜며 이유 향후 계획까지. 사실 대학원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그만두는 이유를 말할 때마다 그 이유가 달라졌다.


난 그냥 더 이상 이 일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회사가 싫어졌고, 쉬고 싶다는 이유가 더 컸다. 미래에 할 일은 퇴사를 하고난 뒤에 생각하겠다고 미뤘다. 당장은 쉬고 6월 말에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 뒤로 벌써 퇴사하고 4개월 반이 지났다.


처음에는 불안감과 두려움, 후련함이 공존했다면, 지금은 잘 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한 회사에 오래 머물면 회사의 평판이나 충성도도 높아지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미 형성이 됐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그만큼 '고인물'이 되기 쉽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닌사람이 모두 고인물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익숙한 것에 자꾸 스스로 나태해지고 놓치게 되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퇴사'는 의미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퇴사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다.


퇴사 후 뚜렷한 계획없는 상황에서 절대 무작정 퇴사하지 말라고.

나는 돈을 버는 직장은 아니지만,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소속이 정해진 뒤에 회사를 그만뒀다. 일정기간 휴식 뒤 내가 갈 곳이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하면서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퇴사한 게 맞는 것일까, 대학원에 가는 것이 잘 한 선택일까, 다시 원래 다니던 회사로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 하지, 대학원 졸업 후 취직이 안되면 어떻게 하지 등등 온갖 생각과 고민이 들었다.


이렇게 갈 곳을 정한 사람인 나조차도 이런데, plan B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방황은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운이 나빠서 원하는 타이밍이 이직이나 재취업이 잘 안 되고 길어지게 된다면 그 공백은 자신에게 Loss로 남을 수 있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퇴사는 옳지만, 계획없는 무작정 퇴사는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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