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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랑 Sep 04. 2020

[책리뷰] 상상력이 필요한 도시, 아테네와 로마

유럽도시기행 1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유시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직접 여행을 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어떤 여행을 갔는지도 궁금할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유명한 사람이라면 더욱 궁금해진다. 내가 가봤던 여행지를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눈으로 바라봤는지 따라가는 일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이 책 <유럽 도시 기행1>은 유럽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 여행을 다녀오고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유럽을 묘사한 에세이라 볼 수 있다.


작년 가을 책이 나왔을 때 아저씨한테 직접 싸인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여행 다니시면서 집필을 준비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몇년만에 책이 나온 것이었다.



출간 당시 곧바로 읽고 싶었지만, 다른 가족구성원이 먼저 읽는 바람에 이제서야 읽게 됐다. 오히려 요즘 코로나19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니 이런 대리만족도 좋은 것 같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은 정보전달과 이해를 도와주지만, 가본 곳은 내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 또는 같은 공간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그리고 더 많은 정보를 준다. 또, 여행 가이드가 주지 못하는 인사이트와 연관되는 이야기를 풀어준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다.


특히, 아저씨 아줌마의 여행 스타일을 알다보니, 대략 어떤 식으로 여행을 하셨겠구나... 싶었다. 여행의 경로도 그려지면서 이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여행하셨을지 상상이 갔다. 수다스러운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책이 술술 읽혔다.




부모님을 포함한 여행 깨나 가봤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유럽 역사의 근본이 되는 그리스, 아테네에 가고 싶어!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이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거기 가면 볼게 별로 없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매번 그런 식으로 그리스 여행은 좌절을 겪었다. 그래서 그리스 문화/역사/신화의 중심지인 아테네는 어떤 곳인지 참 궁금했다. 엄청난 채무로 경제 위기를 맞이했다는 소식은 익히 일고 있었지만, 그 곳의 공기가 궁금했다.그런데 이 책의 아테네편을 읽고나니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남부러울 것 없었던 어제의 미소년이 세싱의 모진 풍파를 겪은 끝에 주름진 얼굴을 가진 철학자가 되었다고 할까. 그 철학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큰 소리로 말하지 않고 오랜 양복에 가려진 기품을 알아볼 책임을 온전히 여행자에게 맡겨두고 있었다. "


민주주의의 근간을 만들고, 수많은 역사, 철학, 과학, 문화가 융성한 곳이었지만 이렇게 사라지다니. 뿌연 콘크리트로 가득한 밋밋한 현재의 아테네는, 과거의 영광을 알기 위해선 많은 공부와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나마 남아있는 파르테논 신전도 절반은 부서졌고, 제우스신전 아크로폴리스 등은 거의 폐허나 다름없다.


아마 나의 지인들이 나보고 아테네를 가지 말라는 건, '그리스(아테네)에 대한 공부 없이'는 가지 말라는 의미었을까.




로마는 작년 GRP로 잠깐 다녀온 게 전부였다. 사실 나는 로마에 다녀오고 정말 실망했다. 치안도 좋지않고, 교통은 혼잡하며, 사람은 너무 많아 정신없고, 잠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눈 깜짝할 새에 관광객 가방을 훔쳐갈 정도로 관광객에게 불친절했다.

 


그래서인지 로마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관광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카이사르Caesar에 대한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이태리 편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카이사르였다. 삼두정치, 루비콘강, 제정 로마, 클레오파트라 등 다양한 에피소드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황제가 된 적이 없는 '황제'인 사람이었다. 아저씨의 표현대로 "황제가 된 적이 없는 황제'인 사람이었다.


"귀족이었지만 평민파에 가담했고, 어떤 술수도 마다하지 않고 권력투쟁을 벌였지만 이긴 후에는 정적을 너그럽게 포용했다. 군사 쿠테타로 집권해 공화정을 사실상 폐지했지만 민중의 소망과 요구를 존중했다. 원로원의 부패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고 시민의 권리를 확장했으며 빈민과 해방 노예, 속주의 민중을 돕는 개혁조처를 밀어붙였다. 보기 드문 정치적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도 카이사르를 떠올릴만한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로마를 여행한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듣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로마의 유적지 곳곳은 로마의 공화정 또는 황제들의 권력을 과시하고 뽐내기 위한 공간들만 남아있었지, 카이사르의 흔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스탄불 또한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도시다. 터키는 동로마제국의 영광을 간직하면서도 카톨릭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교차하는 문화의 교충지다. 중서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배운 한국인들에게 터키는 이색적이면서도 허를 찌르는 문화적 깊이와 아름다움,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라는 생각이다. (아직 방문 안해봤는데도 이정도 호감을 가진 곳이라니...!!! 꼭 가고싶다 ㅠㅠ)


여러 문명의 영광과 수치를, 이스탄불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끌어안고 있는 <아야 소피아>, 오스만 제국의 아이콘 건물인 <블루 모스크>와 약탈 문화재 천국이자 돌기둥 물 조명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지하 궁전>, 제국의 심장부였으면서 술탄의 거처였던 <토프카프 궁전> 까지. 우리가 이슬람 문화에 얼마나 무지했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곳들이 다 내가 터키를 가고 싶어하는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터키를 가는게 최근 망설여졌던 이유이면서 아쉬웠던 점도 아저씨의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경제적 문화적 번영을 누렸던 이 도시는 20세기에 터키공화국의 영토가 된 후 국제도시의 면모를 거의 다 잃고 말았다.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비잔틴제국의 역사와 문화는 실종되었고, 그 때 만든 몇몇 건축물만 박제당한 공룡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다. (중략...) 예전의 이스탄불이 지녔던 문화적 종교적 민족적 다양성은 거의 다 사라졌다. 터키공화국이라는 그릇은 1500년 이어진 국제도시 이스탄불의 문화 자산을 담아낼만큼 크지 않았던 듯하다."


이스탄불 여행기를 다 읽고 나니, 아테네 편을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씁쓸함이 마음 속 한 구석을 자극했다. 잃어버린 문화 유산, 아니 잊혀져가는 문화 유산. 그렇다고 지금의 모습이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것도 아닌 이 도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매혹적이지만, 가슴 한구석이 시큰한 느낌이다. 과거의 영광을 다 살려내지 못하는 건 운명인지 필연인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파리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내가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간 도시가 파리였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교환학생으로 약 3개월간 머물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여행기에서 나는 새로운 깨달음과 큰 공감을 느꼈다.

새로운 깨달음은, 내가 여행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한채 지나쳤던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무장 독립 투쟁. 프랑스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나치로부터 벗어났으면서, 본인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는 놓아주지 않았다는 거다.


큰 공감은, 루브르에서 느낀 감정이라는 것. 루브르 박물관은 꼭 가봐야 할 곳이면서도 가도 별 의미가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전시품이 남의 나라에서 훔쳐오거나 약탈해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외규장각 의궤와 서적을 약탈해간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프랑스인들의 문화적 융성함과 오만함 그 양면적인 모습을 지닌 '위선'이라는 것. 내가 프랑스라는 나라를 싫어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위선자.

겉으로는 우아한척 뒤에서는 더러운짓 다하는 그런 위선. 직접 가보고 나서는 겉의 우아하고 화려한 모습이 정말 반할만큼 매력적이었지만, 머릿속 어딘가에선 항상 그 위선이 생각나는 나라였다.


우리가 패배자라서 이렇게 보이는 것일지, 아니면 모든 승리자들 또는 선진국이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는 알수 없다. (둘다일수도)


또, 흥미로운 건 아저씨는 나폴레옹카이사르와 비슷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나폴레옹은 여러 면에서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다. 제위에 올랐다는 점은 달랐지만, 그도 카이사르처럼 민중의 열망과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조세제도와 행정조직을 정비했고 제조업과 금융업을 진흥했으며, 공공교육법을 제정하고 법 앞에서의 평등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기본정신으로 하는 민법 체계를 세웠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으며 파벌을 가리지 않고 능력을 중심으로 인재를 중용하는 인사제도를 확립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두 사람 모두 기존에 있던 제도와 정치세력을 밀어내고 새롭게 권력을 잡는 인물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는 요소였을 것 같다.


기존 세력을 밀어내고 새롭게 권력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기득권에 불만을 가진 다른 계층의 능력있는 인물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재를 중요하는 제도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또, 귀족이 아닌 새로운 세력의 힘을 얻기 위해서 제조업이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신흥 부르주아 세력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을 것이다.


기득권 이외에 대다수 시민이나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것은, 그들의 지지라는 명분이 있어야 그들의 쿠테타가 쿠테타가 아닌 혁명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나폴레옹은 살아 생전에 개선문이라는 거대한 흔적을 파리에 남겼고 현재까지도 존재하지만, 카이사르가 남긴 흔적은 현대의 로마에선 찾을수가 없다는 점? 이랄까.



내가 가보지 않은 여행지, 내가 가본 여행지 각각 읽으면서 느낀 점이 달랐다.

특히 그 장소와 관련된 인물과 역사적 이야기를 잘 풀어내준 점이 역시나, 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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